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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를 본 시리즈와 비교하다니

제이슨 본과 이병헌의 결정적 차이 [TV리뷰] 개연성 떨어지는, 불친절한 드라마 KBS2 출처 : 제이슨 본과 이병헌의 결정적 차이 - 오마이뉴스 ->위의 기사는 제이슨 본을 벤치마킹했다는 드라마 아이리스를 까는 내용을 잔뜩 담고 있다. 아이리스가 어설픈 점이 많기 때문에 옹호할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거대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 화가 나기도 한다. 본 시리즈 3편인 본 얼티메이텀의 제작비가 얼마이든가. 1억1천만 달러(한화 약 1천400억원)였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제작비는 200억이다. 20부작이다. 본 얼티메이텀은 2시간여의 영화이다. 만약 천 400억을 준다면 아이리스는 어떻게 될까? 기본적으로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영화를 보고 와서는 드라마를 비난 할 수는 없다. 영..

드라마 2009.12.03

미물들도 자신의 공은 내세우지 않는다

-를 읽고 하찮은 사물에서도 수기치인의 철학을 읽어내는 조선 선비의 맑은 신독의 정신과 행동 양식이 돋보인다. 하찮은 사물이란 정말 하찮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여길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울타리, 부엌, 방, 온돌. 선반, 마루, 섬돌, 지게문, 바라지창, 벽, 창문, 서가, 문, 길, 평상, 삿자리, 처마, 굴뚝 등등. 가시나무 울타리를 보고는 절망 속에 심는 희망을 생각하고, 온돌에서는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선반에서는 겸손의 철학을 모색하며 대야 에서도 가득 차면 넘치리라는 지혜를 읽어 들인다. 마루는 하늘의 이치를 즐기는 공간임을 각인시킨다. 그래서 낙천당이다. 바라지창 에서는 비움과 채움을, 창에서는 소통과 균형의 미학을 느끼려 한다. 허리띠를 통해 긴장과 해이의 중요성을, 빗을 ..

책 리뷰 2009.12.03

짬뽕은 중국 음식인가?

음식에도 족보가 있다 ‘생명은 끊임없이 움직여야 생명이다. 움직임은 생명의 징표이다. 그러나 생명체만이 움직일까. 움직이면 생명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할 때는 더욱 연원과 계보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지구상에 어느 날 갑자기 현재의 모습으로 떨어진 존재는 없겠다. 진화론을 따르든 그렇지 않든 현존재 이전의 존재를 인간은 조상이라고 부르며 조상의 계보를 기록한 것을 족보라고 한다. 인간에게만 조상이나 계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개나 고양이에게도 조상이 있고 계보가 있다. 다만 그것을 인식하고 정립해내지 못했을 뿐이다. 생물체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의 산물도 연원과 계보가 있고 그것을 학자들은 변천사로 정리하기도 한다. 우리가 날마다 섭취하는 음식도 연원과 계보는 인식을 하지 못했을 뿐, 그것은 ..

책 리뷰 2009.12.03

제30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전체 수상자(작) 명단.

제30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전체 수상자(작) 명단. ▲최우수작품상 : '마더' ▲감독상 : 김용화(국가대표) ▲남우주연상 : 김명민(내사랑 내곁에) ▲여우주연상 : 하지원(내사랑 내곁에) ▲남우조연상 : 진구(마더) ▲여우조연상 : 김해숙(박쥐) ▲신인남우상 : 양익준(똥파리) ▲신인여우상 : 김꽃비(똥파리) 박보영(과속스캔들) ▲신인감독상 : 강형철(과속스캔들) ▲인기스타상 : 이병헌·하정우·하지원·최강희 ▲단편영화상 : 영화 '구경' ▲특별상 : 고(故) 장진영 ▲각본상 : 이용주(불신지옥) ▲촬영상 : 박현철(국가대표) ▲조명상 : 최철수·박동순(마더) ▲음악상 : 조영욱(박쥐) ▲미술상 : 조화성·최현석(그림자 살인) ▲기술상 : 한스 울릭·장성호·김희동(해운대/CG) ▲최다관객상 : 영화 '해운대'

영화 2009.12.02

선덕여왕이 작가상을 못타는 이유

미실 사후 선덕여왕의 시청률은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55회에서 약간 상승한 것은 비담의 프로포즈. 전투신도 있었지만 질이 떨어지고 급조의 편집때문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선덕여왕은 40%를 넘는 등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해왔지만, 역시 극적 전개의 한계로 예상된 추락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수 없어 보인다. 그 한계는 연말 드라마 작가상을 줄수 없는 이유다. 시청률이 하락하는 이유는 당연해보인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선덕여왕은 작가의 창작적 자유보다는 혹은 창작적 완결성보다는 시청률 올리기에 더 가중치를 두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12부나 늘렸다. 이미 미실의 죽음과 함께 끝났어야 할 작품이다. 이미 시청자들을 강력한 악의 세력과 대응하는 덕만 세력의 고군분투기..

드라마 2009.12.01

선덕여왕 쪽대본 티난다.

11월 30일 방영분을 예로 보자. 백제군이 대야성을 쳐들어간다. 백제군은 신라군을 창으로 찌른다. 그런데 신라군은 창을 맞은 것이 아니라 옆구리에 낀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고 피를 토한다. 실제 촬영장에서는 대개 측면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그러한 장면이 보이지 않겠지만, 선덕여왕은 상공에서 찍은 촬영분을 그대로 내보냈다. 이는 촬영과 편집에 쫓긴 흔적이 아닐까. 흔적은 또 있다. 유신의 부하가 유신에게 대야성이 함락되었다고 보고 한 장면 뒤에 다시 덕만과 비담에게 비담의 심복이 보고하는 장면이 배치된다. 보고 내용은 함락이 아니라 김서현 장군이 막고 있지만 힘들다는 내용. 그리고 바로 대야성 촬영 장면이 나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밤에 성문이 열리고, 성내에 큰 불이 나서 백제군이 성안에 가득차있는 모습..

미디어 2009.12.01

닌자 어쌔신이 실패다?

아니 19금에 잔혹한 장면으로 범벅이 된 영화가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박스 오피스 1위를 달리고 몇백만 관객을 동원해야 성공하는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전문매체 기자들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닌자 어쌔신은 마니아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워쇼스키는 그러한 경향성을 이미 확증해왔다. 다만 완전 마니아 영화가 아니라 대중적 요소를 약간 가미해서 외연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했다. 그것도 전적인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박스 오피스 6위에 이르렀다고 실패로 규정하는 언론의 매체는 또하나의 선정주의에 다름 아니다. 일본 문화코드로 점철된 영화 닌자 어쌔신을 홍호할 필요는 없지만, 폭력잔혹영화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수요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 2009.11.30

아이리스, 일요일 촬영했어야 했나?

광화문 일대가 정체가 심해졌다. 29일 일요일, 차량이 많은 날이다. 이병헌, 김태희, 정준호의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 때문에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29일 일요일 촬영은 드라마 시청률의 연동 효과를 낳으려는 의도였다. 노이즈, 잡음 마케팅 이다. 여전히 한국의 드라마는 방영 얼마전에 촬영된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이번 촬영. 극심한 교통 정체를 낳으면서까지 촬영을 했어야 했는지 씁쓸하다. 완벽한 사전 제작은 불가능하더라도 시간적 여유를 두고 만들었으면 더욱 더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도 생각해볼수가 있다. 더구나 29일은 날씨도 좋지 않았다. 오전 7시 부터 오후 7시까지 라는 제한된 허가도 결국 드라마의 완성도에 부정적이었다. 꼭 그렇게 급하고 촉박하게 촬영해야 하는가..

드라마 2009.11.29

대통령과의 토론 빙자한 웅변대회

초딩들이 보기 겁난다. 아니 유아원에 다니는 아이가 볼까 겁난다. 빵점 맞을까봐 전혀 토론회가 아닌데 토론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토론회가 아니라 일방적인 라디오 방송 연설이다. 예미 예정된 질문에 발제 하듯이 자기 이야기만한다. 시민과 방송앞에서 원맨쇼를 하고 있다. 무슨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장광설을 늘어 놓는. 의도대로 되었다, 하나마나한 질문들, 전파낭비한 27일 토론. 패널들의 질문들은 이 정권의 변명을 도와주는, 일방적인 자기주장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4대강의 핵심이 '수질 오염'인가. 그 질문에 20여분을 소모하다니. 단순히 수질이 아니라 전반적인 생태학적 위험은 물론이거나 천문학적인 재정문제, 그에 따른 효과성 문제 아닌가. 세종시 문제의 핵심이 자족 기능 여부에 있는가. 새로운 도시계획..

정책 2009.11.27

교차상영논란 흐지부지?-집행자 대신 2012 왜 보나?

영화 는 희생을 바탕으로 국내 개봉되었고 파죽지세로 관객을 모으고 있다. 피(?)를 먹고 흥행에 성공한 셈이 되는데, 그 ‘희생’이란 나름 아닌 작은 영화들을 교차상영으로 몰아내고 유리한 시간대를 확보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두 영화는 희생이라는 키워드로 범주화 할 수 있다. 하지만 남는 여운은 많이도 다르다. 두 영화를 비교하는 것은 결국 퐁당퐁당 상영(교차상영)의 폐해와도 연결된다. 영화 는 인류 대부분을 희생시키고, 최후의 노아의 방주를 탄생시킨다. 그 가운데 자기 헌신과 희생을 하는 사람들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인류 멸망이 인류의 잘못과는 관련이 없다. 오로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지구에 재앙이 닥치고, 멸망에 ..

영화 2009.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