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Story - '눈썹 대표' 홍준표로 본 정치인 성형
피부관리는 필수…눈썹·보톡스 시술은 애교
삭발 투쟁 결의에 "이게 얼마짜린데" 거부도최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눈썹이 갑자기 진해지면서 국회의원들의 외모 관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의도 정계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성형수술,모발이식,치아교정 등 '공사'가 한창이다. 표심을 잡기 위한 노력은 각양각색이며 때론 신체적 아픔까지 불사하기도 한다. 정치인에게도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다.
홍 대표는 평소 친분이 있던 의사를 직접 집으로 불러 눈썹 '문신' 시술을 받았다. 평소 눈썹 숱이 부족해 약해 보인다는 지적을 종종 받았던 홍 대표는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 시술을 강행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당 대표 취임 이후 언론 노출이 잦아지면서 본인이 강한 인상을 주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한 미용 전문가는 "미세한 색소를 눈썹이나 입술 등의 가장 바깥층에 주입해 반영구적 화장효과를 내는 시술로 홍 대표의 상태로 볼 때 짙은 눈썹은 최대 2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영구 문신 시술은 주로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최근엔 신뢰감을 주는 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시술을 받는 중년 남성 의원들도 늘어나고 있다.
눈썹만큼 신경쓰이는 것은 휑한 머리숱이다. 탈모가 많이 진행된 정치인들에겐 모발이식이 인기다. 이 분야의 '명의'로 꼽히는 모 대학병원 교수에게 모발이식 수술을 받은 남성 정치인들이 줄잡아 1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발이식을 택한 한 의원은 "가격이 수천만원을 호가하고 수술 이후 며칠간 누워서 자지 못할 만큼 아픔이 따르지만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각오를 밝혔다. 2009년 민주당이 '행정도시 원안추구'를 주장하며 집단투쟁할 당시 "삭발하자"는 당내 여론에 대해 일부 의원들은 "이게 얼마짜리 머리카락인데 빡빡 미냐"며 거세게 항의했다는 후문이다.
이러다 보니 보톡스와 필러 등의 시술은 '애교'로 통한다. '화면발'을 위한 성형수술도 종종 단행한다. 주기적인 피부관리는 의원들의 기본 일정이 됐다. 김영선 한나라당 의원은 틀어지는 치아를 바로잡기 위해 교정하고 있다. 구상찬,서상기 한나라당 의원 등은 얼마 전부터 튀어나온 배를 줄이기 위해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특유의 패션으로 개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두아 한나라당 원내대변인은 꽃분홍색 상의,노란색 핸드백 등 강렬한 '원색' 패션을 즐긴다.
정옥임 한나라당 의원과 정영희,김정 미래희망연대 의원 등은 스카프족(族)이다. 이들은 "말을 많이 하면 목이 자주 붓는데 스카프를 두르면 보온효과가 있어 유용하다"고 입을 모았다.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23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선언장에 다소 밋밋한 검정색 정장을 입고 나타났으나 재킷 위에 스와로브스키 브랜드의 브로치를 달아 포인트를 줬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오마이뉴스 김갑수 기자]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하던 1978년 박 전 대통령의 신년 가족 식사 자리에 함께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날밤 1개를 집어, "이것 참 맛있겠구나."라며 큰 영애(근혜)에게 주었다. 그런데 근혜 양이 받지 않았다. 순간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자 옆에 앉았던 근영 양이, "아버지 저 주세요." 하고 받아서는 입에 넣어 깨물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박 대통령이 참으로 외롭겠다는 생각을 했다.(<노태우 회고록> 중에서)
회고록을 쓴 노태우는 박정희 대통령이 만년에 외로웠다는 말을 하고자 이 일화를 소개한 것 같다. 하지만 33년 전에 있었던 이 일화는 오늘의 현실과 연결해 볼 때 참으로 미묘한 상념들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식탁의 주인 박정희는 이 식사가 있은 후로 정확히 1년 10개월 26일 후에 생을 마감한다. 또한 이 식사 장면을 지켜본 노태우는 10여년 후 청와대 식탁의 주인 자리에 앉는다. 여기에서 가장 착해 보이는 인물은 작은딸 '근영 양'이다. 그런데 그의 남편(신동욱)은 처형(박근혜)을 무고했다가 구속 위기에 처했고, 다시 처남(박지만)을 무고했다는 혐의로 지금 구속된 상태로 있다.
어찌 보면 이 일화는 가정에서 흔히 벌어지는 아버지와 딸 사이의 갈등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1978년이면 '근혜 양'의 나이 26세, 더구나 손님도 동석한 신년 식탁이었다. 우리로서는 그 날 '근혜 양'이 왜 아버지가 주는 날밤을 거부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회고하는 많은 글들은, 그가 말년에 '큰 영애와 최태민 목사 건' 으로 고뇌가 많았다는 점을 이구동성으로 전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것 때문에 차지철과 김재규의 갈등이 비등하여 10·26 참사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회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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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딸과 어깨동무를 한 박정희. 왼쪽은 박근혜, 오른쪽은 박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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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33년 전 이 식탁의 인물 '근혜 양'이 지금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위치에 올라서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민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정확히 알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이 제몫을 다해야 한다, 그들이 '전문가'라면 대중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먼저 투시하는 안목과 대중이 아직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앞서 피력할 수 있는 식견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이런 책무를 기피한 지 오래 되었다. 이에 따라 진보언론의 책임이 한층 무거워졌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부 진보언론이 보여주는 안목과 식견은 다소 피상적이거나 근시안적이다.
정치평론에 '성적(性的)담론'을 가미하는 성한용 선임기자
먼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성한용의 칼럼을 발췌해 본다.
"한나라당의 경선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는 귀티가 난다. 화사한 웃음 뒤에 슬픔이 엿보인다. 언제나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2007년 7월 24일 칼럼)
"(그는) 미모의 중년 여성이다. 그는 악수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다.… 흰옷을 입은 박근혜 의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추모객 1천여 명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그의 미소는 눈부실 정도로 화사했다. '밝은 현재'와 '어두운 과거'가 극적인 대비를 이루었다."(2006년 8월 18일 칼럼)
물론 위에 인용된 대목은 필자의 주장을 펴는 데 유리한 부분만을 발취했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성한용은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견해를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다. 하지만 정치인을 언급하면서 '귀티가 난다'느니, '미모의 중년 여성'이라느니, '미소가 눈부실 정도로 화사하다' 등의 표현을 구사한다면, 이것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인상을 말한 것일 뿐이며, 정치평론에 무용한 성적(性的) 담론을 곁들였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성한용이 최근에 쓴 칼럼을 하나 더 읽어보기로 한다.
"박근혜 전 대표는 매력적인 정치인이다. 유럽 순방에서 그가 선보인 의상들은 패션쇼 출품작을 방불케 했다. 이미지 정치라고 폄하할 수도 있지만, 그저 그런 검은 양복에 넥타이 하나로 겨우 멋을 내는 기존 정치인들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신뢰' '원칙' '애국심'이라는 세 개의 기둥이 그를 받치고 있다. 그의 지지율이 30%대, 1위에서 무너지지 않는 것은 이런 매력 덕분일 것이다."(2011년 5월 16일 칼럼)
성한용은 박근혜 의원이 매력적인 정치인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 유럽 순방에서 보인 '패션쇼 출품작 같은 의상'을 언급했다. 우선 패션과 의상 같은 것을 정치인의 자질과 직결시킬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외모나 패션미에 대한 판단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가치판단이다. 또한 여기에 왜 '신뢰' '원칙' '애국심' 등의 개념이 동렬로 나열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그는 '정치인 박근혜'에 앞서 '여자 박근혜'를 먼저 보는 것은 아닌지. 이와 유사한 예로 '정치가 오세훈'을 판단할 때 먼저 '남자'를 의식하는 여성들이 있다. 만약 정치 기자가 이런 성향을 지녔다면 한시 바삐 교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 첨예한 감성 평론가들, 고성국과 김어준
<프레시안>의 기획위원이자 저명한 정치평론가인 고성국의 비평에도 성한용의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대중이 박근혜에게 느끼는 매력은 1차적으로 그의 외모와 행동거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5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박근혜는 단아하고 맵시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품위 있으면서도 겸손한 태도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스타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그는 스타킹이 '빵꾸나서' 창피했던 경험 같은 에피소드를 약간의 여성적 수줍음에 얹어 얘기하곤 하는데, 이런 '소탈한' 화법은 적대적 감정을 갖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녹여버릴 만큼 호소력이 강하다."(2010년 10월 28일 <프레시안> '박근혜론')
고성국은 '박근혜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은 90% 이상'이라는 신념을 스스럼없이 피력하는 정치평론가이다. 그처럼 박근혜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정치평론가는 보수, 진보를 통틀어 찾아보기가 어렵다.
"박근혜의 일기를 보면 이런 게 나와요. 1961년 5월 16일 새벽, 우리 역사에 어둠이 닥친 날이죠. 그런데 박근혜 입장에서 그날은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하러 간 날입니다. 감성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진 거죠. 박근혜의 '판문점 발언' 같은 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건 그런 멘털리티의 반영인 거죠.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우리나라의 정치풍토에선 강점으로 작용합니다. 이명박 이하 사사롭게 정치한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런 그들과 그렇지 않은 박근혜를 구별할 수 있는 거죠. 박근혜 지지를 사람들이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어요."(2011년 7월 24일 <프레시안> 정치대담 중에서)
정치인을 평가하는 것은 정치평론가들의 재량에 속한다. 그러나 교묘히 5·16 쿠데타까지 재료로 삼으면서 박근혜를 긍정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과연 역량 있는 정치평론가의 몫인지는 재고해 보아야 한다.
또한 고성국은 박근혜의 '판문점 발언'(박근혜가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했다는 말 '휴전선은 괜찮은가요?')을 근거로 그의 애국심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발언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고성국 같은 전문가는 그것을 '애국심의 발로'로 해석하는지 몰라도 나처럼 범상한 시민기자의 눈으로는 전혀 달리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죽은 1979년 당시 박근혜 의원은 아무런 정치적 직함도 없었다.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확인하는 식의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외람된 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박근혜는 식탁에서 아버지가 주는 날밤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투정을 부리는 수준의 자식이었을 따름이다. 만약 그가 사려 깊은 자식이었다면 휴전선이 걱정되었을 때 확인해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터이다.
다음으로 고성국은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로서 정치수업을 한 것이 큰 강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엄밀히 말해서 '퍼스트레이디'가 아니라 급서한 어머니의 역할을 계승한 자식이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설령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강점이 될 수는 없다고 보는 시각도 온존한다.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1974년 이후는 유신시대였다. 이 시대의 정치는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유신통치는 민주주의의 천적인 '파쇼정치'였다. 이런 환경의 정치 체험을 일방적으로 '정치 수업'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성한용과 고성국 두 사람에다 추가하고 싶은 인물이 <딴지일보>의 김어준이다.
"박근혜한테는 묘한 미망인의 아우라가 있어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의 아우라죠. … 그런데 적어도 공개적으론 미국 언론이 재클린에 대해 비난하지 않습니다. 굉장한 비련의 주인공이고,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는 거죠. 비극적 요소에다가 부와 명예를 가졌고, 여성에겐 로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녀를 욕하는 건 일종의 금기인거죠. … 박근혜도 양친 모두를 비명에 보낸 가련한 딸이죠."(<프레시안> 대담 중에서 김어준 발언)
일단 재클린은 케네디 대통령의 딸이 아닌 부인이었다. 김어준은 의도적으로 미망인과 딸을 구별하지 않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케네디의의 바람기는 천하가 다 아는 일이지만, 이에 맞서 영화배우, 자동차회사 사장 등과 맞바람을 피운 재클린도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 남편 사후에는 갑부만을 골라 전전한 미망인 재클린에 대하여 미국 내 건전한 여론층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부정적이다.
그런데 김어준은 박근혜를 칭찬하면서 재클린을 '롤모델'처럼 제시했으니 이것은 희극적인 동시에 박근혜 의원한테조차 되레 모욕일 수도 있겠다. 사족 같지만 한 가지 더, 여기서 왜 '아우라'라는 국적 불명의 언어가 사용되어야 하는지도 잘 알 수가 없다.
"(박근혜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고, 생활에 있어서도 자유롭습니다. 돈 벌 필요가 없잖아요? 생활을 아는 여성들의 로망이 될 법도 한 거죠. 이런 정서적 지지와 로망을 정책이나 윤리로 무너뜨릴 순 없을 거라고 봅니다."(위의 대담 중 김어준 발언 발췌)
김어준은 박근혜가 '권력의 정점에 서 있고 돈 벌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생활을 아는 한국 여성'의 '로망'이 될 법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한국 여성을 크게 오해하거나 비하하는 발언이다. 그는 무슨 근거로 '생활을 아는 한국 여성'이 이렇게 권력지향적이고 물질적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발언들은 개인의 왜곡된 가치관의 반영이자 당사자의 주변 체험 한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정치평론가가 포기해서는 안 되는 미덕들
이처럼 박근혜 의원이 소싯적 아버지가 주는 날밤을 거부한 행동이나 아버지의 죽음 직후 휴전선에 예민한 관심을 표시한 발언을 한 행위 등에는 얼마든지 다른 관점이 있을 수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박근혜에게서 '귀티'를 본다거나, '재클린의 아우라'를 느낀다거나, '비범한 멘털리티'를 재단하는 것 등은 정상적인 국민이 아니라 성한용과 고성국과 김어준에 한한 일일 수도 있다.
물론 이 글에 언급된 세 전문가는 보수진영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때로는 누구보다도 신랄하게 한나라당의 실책을 지적해 온 인사들이다. 평소 그들은 대체로 '건전한 진보'의 성향을 보여 왔다. 다만 보수언론의 정치평론은 진보·개혁 국민에게 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진보 또는 진보연하는 인사들의 발언이 미치는 영향력은 의외로 크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발언은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정체성을 왜곡해서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세 분의 실명비판을 가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정치인을 평가할 때 외모나 이미지 따위를 감성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일단 그것은 정치평론의 본령이 아니다, 또한 정치인이 대중에게 드러내는 이미지란 허상인 수가 더 많다. 그렇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정치인을 평가할 때에는 도덕성과 능력과 정책, 그리고 시대정신이나 역사의식 등을 마땅히 논의해야 한다.
앞으로 서울시장 보선과 총선 그리고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이에 따라 통속적인 정치평론들이 난무할 것이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한 나머지 정치평론의 요체를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정치평론가라면 모름지기 인간을 투시할 수 있어야 하고 역사를 관통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이를 정교하게 문체화하는 언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커버스토리]“튀는 옷은 곤란해요” 한국형 영부인 패션
[동아일보]
대통령의 아내이자 대통령의 첫 번째 참모인 ‘영부인’은 참 아슬아슬한 자리다. 퍼스트레이디라는 무거운 이름과 개인적인 삶이 겹치는 이 자리는 이성적, 감성적으로도 지대한 힘과 의무를 갖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영부인의 ‘패션’도 자유로울 수 없다. 영부인의 패션은 자신의 개성뿐 아니라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의 패션은 ‘정치적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한국의 영부인은 모두 10명이다. 이들의 스타일에서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까. 마침 역대 영부인이 입던 의상이 ‘한국패션 100주년 특별전’(롯데백화점 에비뉴엘 9층 아트갤러리)에서 8일까지 열리고 있다.
○전통적 내조 이미지만 강조…‘패션 소신’ 찾아보기 힘들어신혜순 한국현대의상박물관 원장은 1999년부터 역대 영부인의 옷을 모으기 시작했다. 미국 유학 시절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역대 영부인 의상 전시를 보고 “한국에 돌아가면 같은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신 원장은 한국 디자이너 1세대인 최경자 씨의 딸이자 본인도 패션계에 몸담아 상류층 네트워크가 두꺼운 편이다. 하지만 영부인들의 옷을 기증받기란 쉽지 않다. 본인이나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 취지를 설명하고, 답신을 받은 후 실제 옷을 기증받는 데는 1∼3년이 걸린다.
기억에 남는 영부인은 가장 빨리 옷을 보내 준 이희호 여사다. 편지를 보낸 지 일주일 만에 답신이 왔고, 한 달 후엔 고운 핑크색 한지함에 든 옷이 전달됐다. 신 원장은 “사회 활동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의상 수집의 취지를 누구보다 빨리 이해했다”며 “기증한 의상을 입은 사진까지 보낸 것을 보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로부터는 “재임 기간이 끝나면 주겠다”는 답신을 받았다. 기증받은 옷은 모두 6벌이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역대 영부인의 의상은 단정한 스타일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웬만하면 ‘입을 타지 말자’는 주의를 반영하는 것일까. 모 여성 국회의원이 디자이너에게 “최대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는데 이 말이 영부인 스타일을 압축해 표현하는 듯하다. 패션을 사치, 로비, 구설수 등 부정적 이미지와 연결시키거나 전통적 내조형 여성의 이미지만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패션이 사치가 아닌 시대에 영부인이 패션을 통해 일정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정도의 소신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 전형적 ‘내조’ 스타일 김윤옥 여사 현직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62)는 전형적인 내조형으로 평가된다. 수수하고 보수적 색상, 단정한 디자인…. 김 여사의 스타일에 대해 패션 업계는 “너무 수수해서 특징이 안 보이는 점이 특징”이라고도 평가한다.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 과감한 컬러, 권양숙 여사노무현 대통령(2003∼2008년 재임) 부인 권양숙 여사(62)는 2007년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갈 때 입었던 의상을 기증했다. 짙은 진달래색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 옷은 디자이너 김정숙 씨가 만들었는데 ‘북한에서 입을 옷’이라는 주문을 받고 북한에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꽃을 본떴다. 권 여사는 해외 방문 시 해당 국가의 색상을 연구해 의상에 반영했는데, 이 정장 역시 그러한 경향을 드러낸다.
권 여사는 역대 영부인 중 가장 과감한 컬러의 의상을 시도했다. 평소 소박한 스타일을 추구하지만 빨강, 보라, 핑크색 투피스 등 기존 영부인들이 입지 않았던 경쾌하고 대담한 색상을 소화해 냈다.
○이희호 여사의 밝은 파스텔톤 의상김대중 대통령(1998∼2003년 재임) 부인 이희호 여사(87)는 하이네크의 클래식한 정장을 기증했다. 1998년 청와대 마당에서 열린 공식행사 때 입었던 옷이다. 기증된 옷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여사는 밝은 컬러를 좋아해 파스텔톤 의상을 주로 입었다. 머리 모양도 시대적인 유행을 반영한 밝은 갈색톤으로 정리했다. 고령이었던 점을 보완하기에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여사는 높은 학력에다 사회 활동도 활발해 다양한 공식행사에 참석할 일이 많아서 실용적인 스타일의 정장을 즐겨 착용했다.
이 정장의 또 다른 특징은 디자이너가 제작한 맞춤복이 아니라 기성복이라는 점이다. 김용희 한국현대의상박물관 실장은 “일반인들도 백화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기성복 제품이라는 점에서 이 여사의 소박함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 ‘그림자형 내조’ 김옥숙, 손명순 여사 노태우 대통령(1988∼1993년 재임) 부인 김옥숙 여사와 김영삼 대통령(1993∼1998년 재임) 부인 손명순 여사는 대중적이지 않은 영부인들이다. 가급적이면 매스컴에 노출되지 않도록 ‘그림자형 내조’를 내세워 꼭 필요한 행사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여사는 ‘위대한 보통 사람의 시대’라는 슬로건 아래 권위주의 청산을 약속하며 출범한 정권 속에서 처신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손명순 여사 역시 전통적이면서 소극적 모습으로 대통령을 내조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아하고 세련된 양장을 즐겨 입었다. 손 여사의 경우 정장 재킷에 발목까지 오는 긴 플레어 스커트 스타일을 즐겼다. 박물관 측은 김 여사와 손 여사에게 의상을 요청했지만 아직 받지는 못했다.
○ 이순자 여사는 ‘화려함’전두환 대통령(1980∼1988년 재임) 부인 이순자 여사(70)의 스타일은 1980년대 컬러TV 시대의 도래와 함께 화려하고 스타일리시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여사는 1986년 벨기에 농아학교 방문 시 입었던 정장을 기증했는데, 여기에는 당시 유행하던 체크무늬와 유니섹스룩(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 요소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남성복처럼 어깨를 강조한 유니섹스룩의 유행은 1987년 3월호 ‘월간 멋’ 겉표지에서도 볼 수 있다. 남성복 같은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중절모를 쓴 여성 모델이 등장한다.
이 여사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패션에 관심이 많고 과감한 스타일도 시도했다. 패션업계는 이 여사를 “당시 유행 경향을 정확히 알고 이를 의상에 반영한 멋쟁이”라고 평가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홍기 여사
최규하 대통령(1979∼1980년 재임)의 부인 홍기 여사(1916∼2004)는 역대 영부인 중 가장 짧은 남편의 재임기간에다 성격도 조용하고 스타일도 평범해 사람들의 기억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평범한 외모,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 수수한 디자인의 한복…. 프란체스카 여사, 공덕귀 여사와 더불어 서민적이고 평범한 이미지의 영부인으로 평가받는다. 박물관 역시 홍 여사의 기증복은 확보하지 못했다.
○ ‘우아함’의 전형, 육영수 여사 박정희 대통령(1963∼1979년 재임) 부인 육영수 여사(1925∼1974)로 부터 기증받은 물방울 무늬 플레어 스커트는 당시 육 여사의 젊은 나이(37)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상큼한 스타일이다. 허리를 잘록 묶고 치맛단을 넓게 펼친 플레어스커트는 1950, 60년대 크게 유행했다. 큼직한 물방울 무늬가 시원해 보인다.
육 여사는 대통령을 조용히 내조했던 프란체스카 여사나 공덕귀 여사와 달리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정치인 배우자상을 부각시켰다. 스타일에 있어서도 한복을 고수한 전 영부인들과 달리 단아한 스타일의 양장도 즐겨 입었다.
1960년대는 생활이 안정되면서 패션에 눈 뜨는 사람이 늘어나던 시기다. 소매 없는 ‘슬리브리스’ 드레스나 길이가 짧은 핫팬츠, 미니스커트도 등장했다. 이런 상황도 육 여사의 의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육 여사는 우아하고 차분한 몸가짐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데, 신혜순 원장도 그에 대한 기억이 있다. 신 원장이 어머니 최경자 씨와 함께 육 여사의 옷을 지으러 청와대에 갔을 때다. 신체 치수를 재는 동안 어린 지만 씨가 장난감을 가지고 발치에서 왔다 갔다 하자 육 여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가서 놀아라, 여기 손님들 와 계시잖아’라고 여러 번 타일렀다. 신 원장은 “어린아이가 말을 안 들어 웬만하면 짜증 낼 법도 한 상황이었는데 육 여사 목소리는 한 번도 커지지 않더라”고 회상했다.
○ 내조에 묻힌 ‘신여성’ 공덕귀 여사 윤보선 대통령(1960∼1962년 재임)의 부인 공덕귀 여사(1911∼1997)의 가족은 베이지색 바탕에 갈색 줄무늬가 있는 리넨 여름 정장을 기증했다. 리넨은 다루기 아주 까다로운 소재다. 구김이 잘 가기 때문이다. 리넨 정장에서 공 여사가 상당한 멋쟁이였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공 여사는 늘씬하고 깨끗한 인상이어서 양장이 잘 어울린 것으로 전해진다. 공 여사는 또 부산 일신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한 신여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1년 7개월 청와대에서 지내는 동안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옷도 소박한 한복을 주로 입고 머리 모양도 전형적인 낭자머리를 고수했다. 낭자머리는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뒤에 쪽을 찐, 전형적인 조선 여인네 머리다. 여성운동을 했고 기독교 여성지도자 역할을 할 정도로 활달했던 그가 영부인 시절만큼은 너무 조용하게 지낸 것이 아닌지.
○ 기운 옷 또 기워 입은 프란체스카 여사이승만 대통령(1948∼1960년 재임)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1900∼1992)의 며느리는 모직 회색 정장을 기증했다. 교복만큼이나 절제되고 단정한 스타일이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한복을 즐겨 입었지만, 양장도 자주 입었다.
옷을 유심히 살피다 보면 목덜미 부분에 여러 번 꿰맨 흔적이 있다. 쉽게 닳지 말라고 천을 몇 번 덧대 입은 것이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 옷을 36년간 입었다. 며느리 조혜자 씨는 시어머니를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사람’으로 기억한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1950년대라도 권력 핵심층은 부족한 것 없이 지낼 수 있었겠지만 프란체스카 여사는 검소한 생활을 고집했다. 스타킹을 신다가 구멍이 나면 버리지 않고 뭉쳐 구두 속에 넣어놓았다. 구두 모양이 상하지 않도록 보관하기 위해서다.
옷 안감에 무궁화 무늬를 새겨 넣은 점도 특이하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옷 안감에 무궁화 무늬를 새겨 넣게 했다는데 이 옷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글=김현지 기자
nuk@donga.com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