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다보니 남의 부부 생활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신문, 인터넷,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불문하고 부부이야기가 흘러넘친다. 실제 남의 부부 생활에 관심이 있는 데 머물지 않고 ‘우결’과 같이 가상의 결혼 상황에도 열렬히 관심을 기울이는 듯하다. 남의 결혼 생활 훔쳐보는 이유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다 보니 스타의 사생활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른다. 본래 알 권리는 공적인 사안에 대해 한정되는 것임을 간과하기 쉽다. 연예인들이 공인(公人)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인이란 공개(公開)되어 있는 이들이 아니라 공적인 지위를 가지고 공무를 담당하는 이들을 말한다. 국민주권과 국민세금의 맥락에서 공적인 사안에 대해 국민 그리고 시민은 알권리가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스타는 유명인이고 유명인이 반드시 공인(公人)은 아니다. 유명인들의 사적 행태들은 국민의 권리차원에서 보도하지 않아도 된다. 흔히 이런 남의 사생활에 대해 궁금해 하고, 직접 접촉하기 원하는 심리를 관음증(觀淫症)이라는 단어로 쉽게 요약한다. 훔쳐보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성적 욕망을 충족하는 변태적인 심리와 행위를 아우르는 관음증은 미디어의 발달 특히 인터넷과 SNS의 출현으로 더욱 증대한 것으로 흔히 언론에서 지적한다. 본래 영화연출에서 관객 심리를 말하는 관음증은 대개 성적인 도착 관점에서 다뤄지는 말이므로, 어폐가 있음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 | | SBS <자기야> ⓒSBS | |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성적 차원의 관음심리로 보는 것은 프로이트의 후예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행위를 성적 본능에 연원시키는 관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인간의 행위가 유전자의 명령 때문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관점도 이에 부합하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사랑은 없고 유전자의 보전 메커니즘만이 존재하니 인간의 모든 행동들이 유전자를 지키기 위한 것에 불과 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삶의 영위에서 최적의 대안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행동들이다. 엿보기 차원에서 성적 행위에 탐독하는 것도 역시 하나의 생래적인 행동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찰나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타인의 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고 있는지 살피고,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며 미래적 대안을 탐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미래적 탐색이 몽상이나 허황된 이미지를 상정하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탐색 자체의 헛됨이 예상된다. 잉꼬 부부의 허구성 언론 매체를 통해 가장 많이 언급 되는 부부의 이상적인 모습은 잉꼬부부이다. 다정하고 행복한 부부 생활의 표상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아닌 조류 잉꼬이다. 우리는 동물의 양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비유하며 상징의 수단으로 삼는다. 꾀꼬리 같은 노래 소리라고 할 때, 꾀꼬리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 것이므로 우리는 꾀꼬리에 대해 오해를 하고 우리 인간의 방식으로 활용할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잉꼬부부는 인간이 그렇게 상정 할 뿐일 것이다. 각방을 쓰며 잉꼬처럼 붙어 있지 않다고 해서 불행한 부부는 아니다. 더구나 잉꼬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수명이 4년에서 15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은 이제 평균 100세 시대를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이상적인 부부 즉 사랑과 행복이 만면에 가득한 상태를 꿈꾼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적으로 어려우며, 가능해도 일시적인 현상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대로 그것은 찰나적인 것으로 격정의 쾌감에 중독되도록 만든다. 마르쿠제나 프로이트의 에로스의 유지는 항상 한 대상을 통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결혼과 가족은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적 발명품이다. 호르몬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적 정과 미래적 지향으로 유지된다. 애정과 결혼의 합치는 그렇게 오랜 역사를 지니지도 않고, 그것을 외연으로 표출할 이유도 사실 없다. 잉꼬부부라고 이름붙이는 것은 결국 잉꼬 암컷과 수컷의 외연적인 행동에 따른 것일 뿐이다. 쇼윈도 부부, 결혼 생활의 미디어 상품화 현상 최근 쇼윈도 부부라는 개념이 새삼 회자되었다. 이선정, 배동성 부부, 그리고 SBS <자기야> 출연 커플 6쌍이 이혼을 했다는 사실에 더욱 부각되었다. 쇼윈도는 물건을 진열하는 공간이다. 물건은 실제 보다 더 멋지게 쇼윈도에 진열될수록 선호의 대상이 된다. 즉 디스플레이를 잘해야 한다. 쇼윈도 부부에서 부부에 쇼윈도가 붙는 것은 부부가 자신들을 멋지게 전시하였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 전시의 공간은 대개 남의 이목이 머무는 곳인데 주로 미디어이다. 쇼윈도 부부가 많은 집단군은 연예인, 기업가, 정치인, 그리고 사회지도층 인사들이다. 다들 유명한 점이 공통요소다. | | | SBS <자기야> ⓒSBS | |
잉꼬부부가 이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만큼 잉꼬부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잉꼬부부라는 이미지를 갖는다면,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행복한 부부 관계의 스타나 정치인은 긍정적인 대중의 선호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생활에 상품 전시장에 내놓는다. 그것도 포장을 잘하고 향수를 뿌리고 리본을 예쁘게 달아놓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곧 본질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가치는 급락하고 만다. 하지만 끊임없이 신상이 올라오는 것은 그런 환타지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건의 소비가 바로 환타지의 소비인 것과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장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그 시장에서는 상품을 판매하여 수익을 자본화 한다. 이른바 품절남과 품절녀와 결혼하는 이들은 트로피 남편과 트로피 아내가 된다. 모든 이들이 선망 하는 이들과 결혼하는 자체가 상품이 된다. 특히 사람의 눈이 쏠리는 곳에 상품이 만들어지고, 곧 소비된다. 결혼식 이후 결혼 생활은 시간과 경험 그에 따른 스토리가 많을수록 상품성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스토리보다 긍정적인 스토리를 더 선호한다. 남이 잘 안 되는 상황은 극적인 재미를 줄 수 있지만, 본인 당사자에게는 이미지에 훼손을 낳고, 시간이 지나면 혐오의 대상이 된다. 대중 유명 인사에게 이미지의 훼손은 결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가 없다. 특히, 이혼의 경우 활발한 활동을 위해서는 자신의 도덕적 윤리적 우위를 보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상호 비방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이러한 고통과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려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쇼윈도 부부다. 행복한 부부로 미디어 앞에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연출하고 위장하는 것도 찰나적이다. 부부 생활이 상품으로 소비되는 것은 그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지만 망상에 가까운 환타지 차원의 부부 이미지 즉 잉꼬 부부 같은 이미지는 현실 착오적이며, 결혼을 과대 포장하며 이익을 챙기는 이들의 터전이 된다. 한국인의 비교 심리와 불안한 이중심리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유명인들이 아니라 많은 개개인들에게 쇼윈도 부부는 남의 눈치와 이목에 신경을 쓰는 타자의존적인 문화의 양상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남과 비교하는 집단적 공동체의 문화지체 현상이기도 하다.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결혼 생활을 파는 행위들에는 남보다 더 나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교우월심리에 기인한다. 최소한 남보다는 뒤지지 말아야 한다는 불안과 강박의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 수많은 솔루션과 오락 프로그램은 실제경험스토리임을 내세워 행복한 부부에 대한 손에 잡힐 듯한 신기루를 제공하며, ‘사랑과 전쟁’ 같은 드라마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언 발에 오줌 누기 같은 심리적 안온감을 줄 뿐이다. 형식적 조건과 외연주의가 강할수록 그럴듯한 배우자를 삼아 결혼생활을 론칭하지만, 곧 쇼윈도의 마네킹들이 되어버리는 것도 이런 비교 심리 덕분이다. 쇼윈도 부부의 이중성 폭로에 조소하고 기뻐하지만, 결국 우리 자신도 그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각자의 이상적인 부부 형태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많은 커플의 이상적 부부의 형태가 잉꼬라는 동물로 모두 귀결되는 것은 수많은 이들에게 불행을 낳게 한다. 이상적 부부가 획일화될수록 미디어의 결혼 상품화는 더욱 버블이 커진다. 남의 결혼 생활을 부러워하거나 남의 결혼 생활위에 존립하려는 행태가 없다면 다른 이들의 결혼 생활은 미래적 대안의 대안 탐색이 될 것이며, 방송 프로그램에서 쇼윈도 부부는 사라질 것이다. 부부의 환상과 이상화 모델을 넘으면 애써 방송 미디어 속 부부이야기에 그렇게 몰입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심리가 강해질 것이며 오로지 이상적인 부부는 실천하는 속에서 스스로에게 맞는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