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오류”라는 게 있다. 정치적 사안의 실패에서 그 책임을 물을 때 가장 간편한 방법은 특정 사람에게 그 실패의 원인을 돌리는 것이다. 일종의 희생양의식(scapegoating)이 벌어지기도 한다. 풍랑이 심한 인당수를 지나가려면 처녀를 재물로 던져야 하듯이, 논란의 파고에서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할 희생양이 필요하다. 대체적으로 정무직 장관들은 그러한 용도로 사용된다. 대신 달콤한 고위직의 꿀물을 묻혀준다. 비록 특정 인물이 그렇게 물러가도, 그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거꾸로 큰 성공이 있으면, 영웅을 만들어낸다. 그가 한 행동이 평소와 다를 바 없어도 영웅적 행위가 된다. 그는 영웅으로 이제 영웅적 행동으로 세계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부응하지 못한다. 곧 그는 영웅이 아니라 역적으로 규정되어 사라진다. 영웅 그리고 희생양 왜 이렇게 인물 중심 즉 캐릭터 중심의 정책 사고를 하는 것인가. 그것은 일반적으로 정책 사안의 복잡성과 정책 시스템의 구조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인격성이나 능력, 역량론이다. 사람은 세계를 인물과 스토리로 사안을 파악한다. 그렇기에 특정 인물의 이미지 전략에 휘말리기 쉽다. 언론이라면 이런 피상적인 인물 오류에서 벗어나 정책 사안의 본질과 정책 시스템의 구조를 같이 분석해야 한다. 방송 프로와 영화 등도 마찬가지다. 스타 파워가 없어진 상태임에도 특정 콘텐츠가 성공을 하면 인물에서 성공요인을 찾는다. 이는 대중과 관객, 시청자들이 가장 인식하기 용이한 것이므로 누가 진행했는가를 측면에서 성공요인이 추출 된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구조와 효과를 자세히 분석하는 것보다 특정인물-진행자가 크게 부각된다. 영화를 보면, 일반적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이들이 출연하는 영화가 가장 좋은 영화이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는 대중적 판단이 쉽게 성립한다. 왜냐하면 최고의 핫 한 배우들은 그들이 출연할 영화를 함부로 선택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선택한 이들도 최고의 실력과 역량을 가질 것이라 간주한다. 하지만 그들 자체가 영화의 흥행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수많은 스타들이 출연했어도 실패한 작품들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사람들은 특정배우를 기준으로 작품의 준거점을 형성해 소비의 판단 기준으로 삼지만 갈수록 그 기준은 상대화되고 있다. 네이버 평점이 어떻거나 전문가의 별표에 관계없이 자기 스스로 판단해 흥미 욕구가 생기지 않으면 외면하는 경향이 매우 강해졌다. 이른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 덜하다. 하지만 아직 방송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경로의존성이 심하게 작용한다. 예컨대 어떤 작품이 뜨면 그 콘텐츠의 구체적인 포맷이나 내용에 관계없이 그 프로의 진행자는 높게 평가를 받는다. 당연히 성공 프로그램의 진행자이므로 다른 작품을 선택하거나 컨텍을 받을 때 좋은 작품을 제안 받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좋은 작품이라는 것이 여기에서는 성공가능성이 높은 의미에 가깝다. 갑의 위치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처지와 자신에게 맞지도 않거나 무난하게 땜질식으로 구성되는 프로에 출연했을 때, 특별나게 성공할 가능성은 적다. 뜨는 사람은 정말 프로그램을 성공시킬까 이런 식으로 스타 진행자는 만들어지지만 그것이 진행자의 진짜 능력 때문에 성공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예능 프로는 누가 진행자로 나섰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인식에 빠진다. 거꾸로 실패하면 그 개인에게 책임이 전가된다. 대중문화를 만드는 매스미디어를 소비하는 이들은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짙다. 매스미디어는 충성도가 떨어진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기 보다는 남들이 보거나 현재의 유행 트렌드에 맞추려는 심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에 많이 회자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선호하게 된다. 그 프로그램의 내용 즉 콘텐츠가 떨어져도 그 출연자들이 있기 때문에 채널은 고정돼 버린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그 인물이 사라지면 그 것이 계기가 되어 이탈되기 시작한다. 그동안의 모순이 분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인물이 다시 복귀하면서 만들어지는 희한한 공학이다. 플랫폼 예능인들은 과거의 1인자형 예능인들과 달리 자신이 모든 것을 좌우해야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5-6개의 프로그램을 다년간 진행할 수 있 있다. 스스로 활동 중단은 없다. 예컨대 유재석이 피로해서 활동 중단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과거 1인자형 예능인들은 혼자 모든 것을 좌우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많은 프로그램을 동시에 오랫동안 지속화 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곧 쉬어야 했다. 그런데 잠정 활동 중단 뒤 다시 복귀 했을 때 쏟아지는 부담감은 그 들의 행동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다. 김국진은 그 피로와 부담감에 그만두었다가 실기(失期)했다. 이는 단순히 예능 감각이 떨어지는 것과 별개의 문제다. 갈수록 혼자 프로그램을 좌우하지 못하는 시스템화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휴식과 함께 사라지거나 복귀했다 해도 최고의 지위에 다시 곧바로 등극하는 일은 어려움이 있었다. 만약, 유재석이 불미스러운 일로 1년 정도 쉰다면 복귀가 쉽지 않다. 1인자형 개그의 원형인 신동엽이 살아난 것은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였다. 하지만 그가 혼자 가 프로그램의 인기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포맷도 그렇지만 컬투의 힘도 컸다. 신동엽의 진가를 더욱 발현시킨 것은 <SNL코리아>였다. 그는 콩트 개그의 현존 1인자라는 점을 여실히 발휘했다. 더구나 쉼 없이 망가져서 한껏 자세를 낮추어 유재석의 2인자 리더십을 위협했다. 하지만 <SNL코리아>의 포맷과 형식이 분명 차별성이 있었다. 신동엽 개인 때문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김구라는 잠정 방송 중단 이후 방송 복귀를 위해 무척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그가 돌아가고 싶어 한 지상파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 오히려 굳게 빗장을 걸고 있었다. 김구라라 선택한 곳은 종편이었다. 상대적으로 종편은 시청률에 대한 부담감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지상파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이기 때문에 회심의 칼날을 갈 수 있었다. 점차 김구라는 다시 성장했고, 마침내 지상파에 넘나들고 있다. 매체들은 김구라를 예능의 대세라고 한다. 하지만 김구라가 만들 수는 없다. 강호동을 둘러싼 희생양 의식 프로그램을 처음 런칭 때 진행자를 강하게 부각하는 경우, 실패의 결과를 두고 가장 쉽게 평가내릴 수 있는 것은 인물 책임론이다. 즉 프로그램 자체의 소구성이 아니라 진행자에게 책임이 전가된다. 강호동의 경우, 방송 잠정 중단 이후 지상파로 바로 복귀했다. 심지어 MBC는 <무릎팍 도사>도 부활시켜주었다. 최근 이 프로의 폐지는 지상파 텔레비전이 케이블 마니아 방송 매체가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역시 이미 대세의 흐름에서 이탈한 이들에게 시청자는 쇄도하지 않았다. 무엇과 강호동을 겨냥해 만들어놓은 프로그램들은 애초부터 고전할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강호동의 이전 프로들은 오로지 강호동만이 그 선호성을 만든 것도 아니며, 자리를 잡기 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또한 충성도 높은 것이라기보다는 무난한 대체적인 밴드웨건 효과의 와중에 있었다. 더구나 강호동은 1인자로 모든 매체들의 주목을 받는 것에 심적인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하나의 프로그램에 집중하여 파생시키는 전략을 구사하지 못했다. 강호동이 출연하면 모든 이들이 다 주목할 것이라는 점에 매몰되어 버렸다. 유재석이 출연했던 <패밀리가 떴다>나 <놀러와>의 경우도 그렇게 시청률이 높지 않았다. <런닝맨>의 경우 초반 시청률이 낮았고, 역시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무한도전>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유재석은 다른 프로그램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런닝맨>도 결과의 희망을 가질 에너지가 제공되었다. 불행하게도 강호동은 그 에너지원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불안 의식을 자극했고, 오래지 않아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악순환에 있다. 자신의 아성을 일시에 새우는 전략이 아니라 하나라도 집중해서 파생 시키는 인큐베이팅(Incubating)이 중요하다. 영웅주의냐, 시스템 변혁이냐 매스미디어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다만 소나무처럼 그것이 트렌드와 대세론 그리고 관습적 습성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무엇보다 방송이 몇몇 인물이나 캐릭터가 만드는 ‘인물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웅 스스로 시스템을 바꾸고 구축할 수 없다. 영웅이라는 이미지만이 존재한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인물이 아니라 소재와 구성, 포맷 그리고 포맷의 가치와 참신성이 대중의 관심사에 맞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협업의 숙성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웅을 만들어내는 사후 평가는 반드시 누군가 희생양을 만들어내게 되어 있다. 그리고 시스템은 변화하지 않고 결국 <설국열차>의 기차처럼 파국을 맞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