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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빠진 ‘공무원사극’ , 파시즘을 부르는 욕망의 주문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1. 19. 13:08
당신이 빠진 ‘공무원사극’ , 파시즘을 부르는 욕망의 주문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공무원사극’ 탄생의 시대적 배경은 IMF외환관리 체제… 안정된 직장의 상징인 된 공무원, 왕이란 지배질서를 보위하는 관료들의 성공신화
[0호] 2013년 09월 01일 (일)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media@mediatoday.co.kr
어느새 사극에서는 공무원 성공 스토리가 하나의 장르적 유형을 형성했다. 사극에 웬 공무원(?)인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물론 사극에 공무원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 사극’에는 현대의 공무원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이나 성공이 높은 벼슬길로 확증되는 플롯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보통 사극에서는 권력 다툼의 중심이니 이는 다른 특징이다. 
 
예컨대, 1960-1970년대의 생활사극이나 1980년대의 MBC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를 보면 이러한 측면은 볼 수 없다. 생활사극은 전통사회를 바탕으로 한 사극이며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는 정치권력 사극이다. 이른바 정극이라는 사극장르의 기본모델이다. 본격 퓨전 사극의 효시인 드라마 <다모>에 앞서 그 가교 역할을 한 것은 드라마 <허준>이었다. <허준>은 무엇보다 이른바 공무원 사극의 기본 유형이었다. 하나의 장르 확립을 위해서는 킬러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그럼 허준은 어떻게 킬러 콘텐츠가 되었을까.
 
왜 IMF체제에서 허준은 인기를 끌었나- 공무원 사극의 탄생
 
MBC 드라마 <허준>은 1999년 11월 19일~ 2000년 6월 27일까지 창사특집 특별기획 드라마로 제작되어 64부까지 방영되었다. 당시 <허준>은 최고 시청률 64.2%(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 평균 시청률 53%를 기록했고 당시 허준 신드롬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드라마 <허준>의 성공으로 사극도 역시 메디컬 드라마가 통한다는 법칙이 성립되었다. 하지만 정작 봐야 하는 것은 성공스토리였다. <허준>이 성공 스토리 사극을 본격적으로 흥행 드라마의 원형으로 확립했기 때문이다. 이전 사극들은 주로 권력을 중심으로 한 다툼이 중심이었다면 <허준> 이후의 사극들은 개인들의 꿈과 성공을 다루기 시작했다. 
 
  
MBC 드라마 <허준>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개인들의 성공은 바로 국가 공무원으로 인정을 받는 스토리 이었다. 기존의 사극에서는 정치권에 진입한 이들의 권력 다툼이라면, <허준> 이후의 사극은 주로 평민이나 하층민이 공무원(벼슬아치)으로 성공하는 과정을 그리게 된다. 
 
드라마 <허준>에서 주인공 허준은 관기의 어머니에서 출생했으므로 천민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지역의 의원이 아니라 국가의 의관이라는 공무원이었다. 높은 지위 즉 어의에 이르면 신분이 양반의 반열에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의관이 되려면 잡과(雜科)를 봐야 하며, 이는 오늘날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대과보다 한 단계 낮은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춰진 시험을 통해서라도 성공적인 공직을 할 수 있다는 환타지가 개입하고 있었다. 현대인의 심리가 반영되는 대목이었다. 결국 허준은 일반 양반들도 잘 오르지 못하는 지위에 오른다. 즉, 정 3품 당상관으로 양반이 됨은 물론 종 1품의 품계에 이어 말년에 정 1품 보국숭록대부의 지위를 받는다. 
 
왜 이런 사극이 인기를 끌었을까. 그것은 바로 IMF외환관리 체제 때문이었다. 당시 갑작스런 위기로 개인들은 극심한 불안과 공포감에 시달렸고,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여기에 적은 월급이라도 자신의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공무원 직종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퇴직 후의 연금은 달콤한 당의정이었다. 이러한 대중심리에 맞추어 이른바 공무원 사극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이로써 봉건적이고 올드 한 느낌의 사극은 이제 현대인들의 심리를 잘 반영해내는 것 같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대장금'이었다. 
 
‘다모’, ‘대장금’ 그리고 연이은 공무원 사극과 시대상
 
2002년 드라마 <다모>는 포도청 종사관(이서진)과 그를 보조하는 다모(하지원)의 수사 첩보 활극이면서 비극적인 멜로를 담고 있다. 사실상 수사기관의 공무원 이야기에 집중해서 미드의 재미를 사극에 옮겨 놓은 공헌을 했다. 조선 관리직은 권력 다툼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자아를 실현하는 공간이었다. 실제로 당시 경찰공무원들이 이 드라마를 열렬하게 시청했다. 이런 사극 유형은 좀 더 개인의 욕망과 미시사적인 소재들이 등장한다. 그 결정적인 촉발은 드라마 '대장금'의 요리였다. 장금이도 요리로 결국 고급 공무원이 되었다. 
 
MBC 드라마 <대장금>도 실제 인물의 공무원 성공기를 다루었는데 바로 조선왕조실록에 짧게 등장하는 장금이라는 인물이었다. 실제와 다르게 장금은 요리로 출발해 의술에도 출중한 인물로 등장한다. 천대를 받았던 수라간 생각시가 높은 벼슬까지 받는 스토리는 감동을 자아냈다. 이 드라마는 영화 <식객>에서 대령숙수라는 궁중 요리사의 직책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하게 만들었다. 역사기록에 중종은 장금에게 정 3품 당상관의 품계를 주고 당상관으로 왕의 주치 의관 격으로 삼는다. 만약, 이런 드라마에서 벼슬이 주어지는 장면 설정이 없다면 흥미를 떨어뜨린다. 
 
이런 드라마에서는 정치권력이나 체제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공무원 마인드를 보여준다. 더구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유아적인 세계관을 그린다. 
 
KBS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은 미래관료학교로 고급공무원이 될 인재들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어 프랑스의 국립 행정학교의 조선판과 같았다. MBC <선덕여왕>에서 덕만은 화랑의 맨 밑바닥 단계부터 단계를 밟아 나가 공을 세우고 단계적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덕만 자체가 거대 관료조직을 움직이는 수장의 운명을 타고 났고  모든 이들이 덕만을 따라야 했다.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MBC 드라마 <이산ㅡ정조>는 도화서에 소속된 화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작 그림은 없고, 러브 스토리와 같은 다른 요소들이 많아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화원들 역시 공무원이다. 궁중의 행사나 국가적 의례 그리고 수많은 대신과 왕족들의 초상화는 이들이 그렸다. 하지만 그것은 독자적인 예술이나 창조적 자아실현이 아니라 지시명령을 수행하는 기계, 관료조직의 수단에 불과했다. 그들이 그린 그림의 수용자들이 지배층, 궁의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MBC 드라마 <동이>는 그동안 잘 다뤄지지 않던 장악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음악을 통해 성공적인 자아실현을 이뤄가는 여성의 모습을 다루려고 했다. 하지만 예술적 설정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여전히 궁중음악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제도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음악을 극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그림의 묘미를 전달하는 것만큼 어려우며 어려움을 뚫고 왕의 사랑을 받는 여인의 사랑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사랑이야기가 중심이 될 운명이었지만 그들은 공무원으로 성공을 거둔다. 
 
더구나 국가에서 관여하는 관악곡이 얼마나 마음을 울리는 다양한 음악을 선사할지도 의문이었다.
 
영화 <미인도>와 같이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를 다룬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도화서의 화원들의 삶과 예술 사랑을 담고 있는데, 역시 화원이라는 공무원들 이야기다. 만약 '장승업'과 같이 바람구름처럼 민중 속에서 예술혼으로 세상을 꿈꾼 이들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광대나 장인조차 관직이 주어져야 의미와 가치를 갖는 사극이 되어버렸다.
 
MBC 드라마 <마의>에서는 다시 의술을 성공 스토리로 삼고 있다. 인조와 숙종시기에 활동 했을 것으로 보이는 백광현은 말을 돌보는 의사로 출발해 어의에 오른 인물로 그려진다. 역시 말의 병증을 보던 인물이 국가 공무원이 되어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인물로 그려진다. 병든 말들을 버리고 그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고위 공무원이 된다.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에서 강천(전광렬)은 사옹원 분원 최고 관리직인 낭청이다. 그 낭청을 차지하기 위해 을담(이종원)을 제처 버렸다. 그의 딸 정이는 사기장이 되려하고 낭청을 향한 질주를 시작한다. 을담과 정의의 스승이자 강천의 가문이 대대로 차지했던 수토감관도 마찬가지다. 맨 밑 단계부터 올라가는 단계적 차원을 보여주는 데 결국 공무원의 수장직을 위한 것이며 그것은 왕의 인정을 받은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이다. 여기에 광해군과의 로맨스가 빠지지 않는다. 물론 이런 작품들은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를 생각하게 만든다. 거대한 개미들의 제국 이야기는 넓은 공원의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공무원 사극의 정도가 깊어진 것은 2013년 드라마 <구암 허준>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드라마 <구암 허준>은 1999년 허준을 리메이크 했는데, 유의태 의원에 있던 이들이 대부분 국가 공무원이 된다. 원래 유도지와 허준, 상화는 의관이 되고, 임오근은 종약서원, 예진은 의녀가 된다. 그러나 리메이크 작에서는 약초꾼과 의원 보조녀 두 명도 전의감과 내의원 혜민서에서 일하게 된다. 약초꾼들은 유가고약으로 시중에서 의원으로 호구지책을 할 수 있음에도 공무원이 된다. 그것도 많은 뇌물을 사용해서 말이다. 이러한 점은 1999년보다 공무원 열풍이 심하게 지배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앙의 9급 공무원 시험에는 20만 명, 지방직 9급 공무원 응시자는 27만 명이 지원했다. 
 
공무원 사극 현실의 반영인가, 영합인가
 
이런 공무원 사극에는 항상 불문율의 법칙이 있다. 신하들의 권력 다툼은 비판할 수 있어도 왕권 자체에 도전할 수는 없다. 대체적으로 신하들이 악당으로 묘사되기 일쑤이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조차 복수를 위해 궁에 들어간 장혁은 충실한 세종의 공무원이 된다. 그리고 세종을 해치는 이들은 정도전의 후예들인 신하들이다. 악당으로 등장하는 왕은 조선 왕 가운데에 연산밖에 없다. 여성 주인공의 경우 공무원이면서 최종 결과는 승은을 입는 것으로 맺어지기도 한다. 이는 사실상 드라마 <대장금>에서 더욱 후퇴한 것이었다. 장금은 왕이 아닌 종사관을 남편으로 삼고 궁마저 떠나기 때문이다.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SBS 드라마 <장길산>(2004)과 같이 시스템을 다시 꿈꾸는 이들의 사극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공동체 보다는 자신의 성공을 더 우선하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개인들의 꿈은 왕의 인정을 받고 관직을 받아야 의미가 있는가. 영화 <왕의 남자>는 자유로운 광대의 운명이 비극적인 것임을 단언한 것일까. 
 
하지만 의미 있는 사례의 드라마는 있었다. KBS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는 이제마의 의술을 통한 치열한 삶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그는 허준과 달리 관직에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야인으로 살며, 소외받는 백성과 백성들을 치료하며 독자적인 사상 의학을 완성한다. 허준이 그간의 약초와 약물 지식을 정리한 백과사전 동의보감을 펴냈다면. 이제마는 서양의료 계에도 내놓을 의학 이론을 창안했다. 우리 시대에 사회나 국가적으로 정말 맞는 것은 무엇일까.
 
드라마는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나
 
영화 <7급 공무원>은 정보기관 요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근본적인 고민, 거창한 이야기는 없다. 세계를 주름잡는 국정원 요원도 그냥 공무원일 뿐이다. 여기에서 공무원이란 시키는 일을 그대로 잘 수행하면 된다. 국가가 올바른 행위를 하고 있는지, 정보기관을 움직이는 정치권력이 어떤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 개인적 성공도 사랑도 이루어질 뿐이다. 국정원 요원은 그에 충실한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영화 <아저씨>처럼 옳은 일을 하다가 가족을 잃을 수 있는 상처 많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아니 영화 <베를린>의 한석규처럼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우리나라는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하면 대단히 관용적이 된다. 
 
안정된 직장이라면 무엇이든지 마다하지 않는 무서운 사회가 되었다. 그러한 인식은 드라마나 영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파시즘의 전조일 수 있다. ‘왕 아니 최고 리더의 명령에 토를 달지 말고 복종하며 맡은 바 일에 몰입하라.’ 전쟁기계의 운영원칙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군대와 공무원들은 그렇게 600만 명의 유태인을 가스실에 보냈다. 
 
정말 공직이 꿈을 이루어주는 곳일까 물어야 한다. 공직은 대국민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시밭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행정학과 정책학의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 개념이지만, 언제나 간단하게 무시되어버린다. 앞으로 시스템 안에서 생존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인간의 고도의 이성행위를 짜내는 것이 창조경제의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 부속품을 안정이 보장된다. 그 시스템 안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모든 시스템은 시간에 따라 낡게 된다. 창안자가 아니라 모두 관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시대에는 제왕학의 기본인 논어를 선호한다. 한국의 직장인들도, 중국정부도 노자나 열자보다 공자를 더 선호하는 트렌드는 이런 맥락에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시스템안의 관리직을 향한 분투에 우리는 여념이 없다. 상처투성이, 힐링 열풍이 덧없이 부는 이유다. 아무리 현실이 그렇더라도 드라마나 영화 같은 문화 콘텐츠가 해야 할 이른 대중영합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의 형상화다. 맹랑한 또 다른 환타지 공무원 사극은 점점 시청률이 바닥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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