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다보스포럼 개막 연설에서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더 이상 한 손에는 다극화된 세계를, 다른 한 손에는 달러라는 유일 기축통화를 들고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지켜왔던 세계 경제 질서가 깨어진다는 확언이었다. ‘좋은 시절’이 다 가버렸다고 한탄한 것은 미국만이 아니었다.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저소비, 고실업이 새로운 경제질서로 자리 잡았다는 뜻의 뉴노멀(새로운 성장, New Normal)이라는 개념이 나타났다. 선진국들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찍어냈지만 글로벌 경제는 좀처럼 활기를 얻지 못했다. 시장은 기존의 경제법칙으로 설명될 수 없었고 사람들은 그동안 비정상이라 여겨왔던 것을 정상으로 치부하는 세상에 익숙해져야 했다.
2003년 처음 등장했던 용어 뉴노멀은 벤처캐피털리스트 조저 맥나미가 처음 사용했고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의 무하마드 앨 에리언 CEO가 그의 저서 <새로운 부의 탄생>에서 2008년 촉발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상황을 일컬으면서 사용해 유명해졌다. 앨 에리언이 꼽은 뉴노멀의 원인은 ▲과다한 부채와 디레버리징 ▲세계화 효과 감소 ▲기술 발달에 따른 일자리 감소 ▲인구 고령화 등이다. 인구 고령화로 인한 수요 감소와 절대 다수의 산업이 겪고 있는 공급과잉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단순히 경제적 차원의 위기로 끝나지 않았다. 달러 패권화의 붕괴, 빈부 격차, 시장 윤리의 위기,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 등 자본주의의 병폐가 민낯을 드러냈다. 당시 미국, 일본 유럽의 부실 자산 상각 규모는 4조 달러, 역사상 최악의 자산 파괴였다. 전 세계 3400만명이 직업을 잃고 빈곤층으로 전락하면서 사회의 모습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미국 자본주의의 탐욕과 도덕 불감증을 비판하던 중국 역시 저성장의 그늘을 피해가지 못했다. 중국의 신창타이(新常態)는 “과거와 같은 성장이 불가능하다. 중국 고도성장 시대가 끝났다”는 시진핑 주석의 고백이었다. 중국도 과거의 물량 공세에 제 발목을 잡혔다. 시 주석은 뉴노멀을 말하면서도 중국의 꿈, 실크로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브릭스은행을 함께 얘기한다. 저성장 시대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는 방증이다.
한국도 10%대 성장 시대를 끝내고 2000년대를 맞았다. 자산가격의 빠른 상승과 레버리지, 고금리로 부풀었던 경제가 글로벌 경제위기의 장기화에 백기를 들었다. 물가상승률 2%에 시장금리가 2%면 실질 이자소득은 제로(0)%가 된다. 만약 이자율이 물가상승률보다 낮다면 생활수준은 계속해서 낮아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