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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흙수저는 금수저를 향해 가는 걸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12. 31. 23:27

자본 축적의 강화와 편중성에 대한 저항은 계속된다


2015년 최고의 유행어 ‘금수저’에는 자본의 축적에 대한 불안과 질시의 양가적인 감정이 투영되어 있었다. ‘금수저를 물고 나왔다.’는 말은 자본이 많이 축적되어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것을 뜻한다. 흙수저 집안에는 금과 같은 자본의 축적은 없다. 흙이 응축되어 어느 세월에 금이 될까. ‘땅 파먹고 사느냐’라는 말에서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양극화의 사회는 자본이 한쪽으로 과잉축적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단지 축적에만 끝나지 않고 계속 팽창하면서 자본이 결핍된 이들의 남은 자본까지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공포와 불안감을 갖게 할 뿐이었다. 헬조선이나 N포세대라는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가 있었다. 축적된 자본의 소유자만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인식이 전제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숟가락 편에 들어가는가에 따라 입지가 달라지는 것은 문화예술계도 마찬가지였다. 영화계에서는 2015년 한해 세 편의 천만 관객 영화가 만들어졌다. 4년 연속 1억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하지만, 220편의 영화 가운데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20여 편에 불과했다. 영화계의 쏠림 현상은 여전히 심해졌다. 관객들은 불안한 마음을 영화를 통해 해소하려는 듯 오락영화에 대한 선호를 강하게 보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약간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의 덧붙임은 영화를 통한 자본 축적의 수단으로 능히 활용되었다. 다만, 저작권의 강화와 IPTV의 활성화로 재개봉이나 다양성 영화의 활로를 생각할 수 있었다. 공연계에서도 라이센스 공연이나 창작공연을 막론하고 여전히 이미 검증된 작품들이 재공연을 하거나 연장 공연하는 일들이 빈번했다. 작은 소극장들은 없어지거나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 특히 메르스는 작은 공연단체에 치명타를 안겼다. 

신경숙 표절 논란의 핵심은 기존 문학을 통한 문단권력의 이면에 자본 축적 시스템의 연장에 있었다. 예전부터 있었던 표절 문제는 신경숙의 본격적인 세계시장 진출에 맞춰 터졌다. 그러나 표절에 대한 인정은 신경숙을 통해 형성되어온 문단의 자본축적 구조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문학은 붕괴되지 않았으며 새로운 자본의 축적동학이 이동해왔다. 기성 문단은 자신들만의 도그마 속에서 결국 대중과 유리되어 왔는데, 문학의 위기는 그들에게 있었다. 여전히 장르문학들은 스마트 모바일을 매개로 부지런히 자본을 축적하고, 있었다. 웹소설만이 아니라 웹툰, 웹드라마는 약진을 거듭하면서 바뀐 미디어 환경에 재빨리 적응하고 있었다. 이런 콘텐츠들이 금방 소진하는 내용들뿐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영상 때문에 문학이 위기가 된 것이 아니라 스마트모바일환경에 맞춰 자본의 동학이 이뤄지게 되었다. 어쨌든 스마트 모바일은 문화콘텐츠를 통해 새로운 자본 축적의 적극적인 수단이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도서정가제가 확립되지 않는 것은 부당한 할인을 통해서 자본축적을 하는 유통사들 때문이다. 카드사를 통한 편법적인 할인이 여전하며, 대형출판사들도 탈법적인 할인이벤트를 계속했다. 기존의 자본 축적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것은 김영사 소송 사태에서 본질을 드러내기도 했다. 

ⓒ iStock
‘잘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다.’는 말은 이미 차려진 자본을 쉽게 편취하려는 것을 말한다. 어느 때보다 스마트 모바일이 활성화된 2015년 콘텐츠 생산자들보다는 유통을 하는 통신사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음원시장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여전히 창작자들보다는 음원 유통 사이트가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내년부터 헐값의 스트리밍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 등이 예고되고 있지만 창작자들의 불평등성은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페북, 구글, 유튜브, 아마존 등 콘텐츠 플랫품 유통사들은 축적한 자본을 가지고 우주여행이나 로봇, 드론, 3D프린터, 영화제작, 인공지능, VR, 자율주행 자동차, 생명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다. 이는 네이버도 마찬가지였다. 축적된 자본의 팽창을 위해 문어발식 진출을 하고 있었다. CJ 등이 수익을 창출하는 1인 미디어를 MCN으로 집적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한국의 대형 연예기획사인 SM이나 YG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일본이나 동유럽보다는 중화권 자본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이 메르스 발생 때문에 잔뜩 긴장을 하며 좌불안석하며 우려했던 것은 중국 자본의 철수였다. 많은 중국인 바이어와 관광객들이 오지 않았고, 상품불매 운동도 벌어졌다. 한국은 자신의 옷을 훌훌 벗어던지며 청정지역임을 재빨리 증명해야 했다. 중국자본은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의 기업들을 인수합병 했다. 차이나 머니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오히려 글로벌 시대에 당연한 현상이라고 여기면서 그 종속성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류열풍은 중화권 자본에 숟가락을 얹게 했다. 케이 팝은 물론 방송콘텐츠 관련인력들도 중국으로 달려갔다. 골드러시 같은 차이나 드림이 형성되었다. 한국의 연예인들조차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개런티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되었다. 영화 한 편당 20억 이상, 드라마는 30억 이상의 출연료를 받는 배우도 나왔다. 유재석은 중화권에 강한 기획사로 옮겼고, 윤은혜는 표절에 대한 사과를 주저했다. 중국에서 선호되는 스타는 한국과 다르기가 일쑤였다. 김종국은 유재석보다 더 인기가 높은 기현상을 유지하며 터보를 재결성 중국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추자현의 성공은 더욱 이를 뒷받침하기도 했다. 더 이상 한국의 콘텐츠 미디어 시장의 질서에 줄을 서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물론 이는 자본의 흐름을 쫓아가는 행태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저평가되었던 콘텐츠나 인력들은 중국 자본의 선호에 따랐다. 정작 스스로의 기준들은 폐기했다. 

2015년 밥수저를 어떻게 놀려야할 지에 관한 쿡방 방송 프로그램이 많았다.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을 막론하고 음식과 요리에 대한 프로그램은 범람의 수준이었다. 미식은 물론이거니와 건강을 위해서도 요리하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어떤 밥숟가락을 가져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 많은 사람들인 심리학 서적이나 컬러링 북에 몰입했다. 대중음악에 관해서 추억과 복고코드는 90년대를 거슬러 다시 80년대 예컨대, 응팔의 1988년에도 닿았다. 밥숟가락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그 시대로 가려했던 듯싶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대한민국 사회이니, 어쨌든 올드 세대의 추억팔이에 밥숟가락을 얹는 방송 제작 행태는 2016년에도 지속되겠다. 

쿡방이나 오락영화, 과거의 음악, 컬러링 북에 빠져도 자본축적의 편중 속에서 짓눌려질 미래가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2016년에도 이러한 자본 축적과 밥숟가락 논쟁은 여전할 것이다. 2015년 비정규직 관련 드라마와 영화 등의 콘텐츠가 많아졌듯이 2016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