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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에 대한 위대한 득도~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6. 1. 6. 20:28

동양 사상에서 고수는 평범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이제 현대인들은 평범한 고수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휘황찬란했던 고성장기를 지나 이제 저성장 패러다임에서 그 안의 본질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한 불빛너머의 진리는 평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 가운데 ‘삼시세끼’는 산골이나 오지에 가서 세끼를 해먹는다. 밥을 하는 과정들만 보이는데도 웬만한 방송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이 높다. 쿡방이 몇 년째 열풍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 식재료가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다. 이른바 집밥 레시피가 각광받고 있다. 비싸거나 현란한 이름의 식재료나 요리들은 찾을 수 없다.

'삼시세끼' 정선 편. tvN '삼시세끼' 방송화면 캡처
'삼시세끼' 정선 편. tvN '삼시세끼' 방송화면 캡처

다른 방송에 등장하는 셰프라는 이름의 화려한 외모의 요리사들도 이런 집밥을 포함해 초간단 레시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음식사진도 단초롭지만 인상적인 요리들이 많다. 외식산업도 화려한 조명과 몽환의 디자인이 인기를 주도하던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 소비자들은 다양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획일화된 외식 산업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화려해 보이는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관심도 더 많아졌다.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신비주의 전략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유일 것이다. 스타들의 평범한 삶에 울고 웃고 더 공감하며 좋아한다. 치장하고 과장하는 유명인은 곧 외면당한다. 사람들은 스타들의 평범한 패션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에 드러나는 패션이 진정한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파라치룩이나 공항패션은 스타들의 평범한 스타일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바로 그 평범함이 그들의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모습은 꾸며지고 치장된 것으로 본질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평범한 삶을 꿈꾸는 이들은 취업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서울대와 같은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이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고액연봉이나 사회적 지위 속에서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평범한 삶 속에서 자족하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 문명에서 열심히 살고 난 뒤에 돌아온 결과는 명퇴나 해고의 불안이다. 귀농귀촌의 증가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단순하고 평범한 것에 대한 선호현상은 미술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갈수록 디지털 첨단기법이나 매질로 화려해지고 있는 현대미술과 달리 단색화가 미술계를 휘어잡고 있다. 애써 일시적인 현상이라 우려했는데 갈수록 오히려 더 열풍이다. 지난 10월 김환기 화백의 '점화'가 3100만 홍콩달러(한화 약47억 2100억)에 경매되어 지난 2007년 45억2000만 원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를 넘었다.

11월에는 '귀로'가 23억5472만원에 일전에는 이우환의 '선으로부터'는 18억900만원에 낙찰되었다. 이성자,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 정창섭 등 수 억 원은 물론이고 수 천 만원의 단색화는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다른 기법의 작품도 많은데 단색화 때문에 더 유명해지는 작가도 많아지고 있다. 단색화는 ‘한국판 모노크롬, 즉 단색으로 그린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동양미술에 대한 재발견과 주목을 의미한다.

2015년 11월 30일 단색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 백자대호 달항아리가 홍콩경매에서 18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역시 단색이 주는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도자기였다. 이렇게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가 많은 그름이 아닌 단색의 미술이 각광을 받는 것이다. 특히 평범함을 추구하는 조선도자기는 야나기 무네요시가 극찬한 바 있다.

소비자들의 평범함에 대한 선호는 소비자행동을 연구하는 이들에게서도 드러난다.

“나는 지금까지 수십 년 간 고수했던 내 연구결과들을 모두 포기한다. 왜냐하면 이제 본질의 가치 즉 절대가치를 우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비자 선택이론의 권위자이며 스탠퍼드 대학의 마케팅 교수 이타마르 시몬슨은 20여 년 동안 자신이 연구해왔고 증명하려했던 연구결과들과 반대의 주장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 본질적인 가치에 사람들이 정확하게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절대 가치'에서 사람들은 잘 모를 때는 시각적으로 찬란한 것에 현혹되지만, 이제 그 본질을 결국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스마트 모바일 환경에서는 그 핵심을 알 수 있는 정보의 비교검토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결코 ‘눈 가리고 아웅’하거나 ‘조삼모사’하는 마케팅 방식으로는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할 수 없다. 좋은 제품은 결국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가를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자기절제사회'에서 대니얼 엑스트는 “유혹은 교외의 패스트푸드 매장처럼 기하학적으로 증가하는 유혹 과잉 시대에 우리는 유혹의 그물망 속에서 산다"고 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러한 유혹의 본질을 간파하고 단순한 삶을 통해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절제의 삶이라는 평범한 라이프 스타일의 지향이다. 단순하게 살수록 이런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최근 유럽에서 선풍적인 주목을 받은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역사가 화려한 장밋빛 상징질서의 구축을 통해 사람들을 유혹하면서 집단행동의 고통을 감내하게 했지만,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감을 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현실의 진실에 대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진실이란 우리의 삶이 평범한 것이며, 과장이나 치장은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고성장기의 신화를 벗어나 저성장기에는 우리 일상에서 본질적인 오히려 평범한 것에 삶의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고성장기에는 앞날에 대한 무한한 진보의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가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였다. 끊임없이 현실의 자신 즉 평범한 자신을 부정하고 다른 자신으로, 화려한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서양식의 화려한 외관과 브랜드에 경도되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결국 우리를 행복하지 않게 했음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른바 자수성가의 사회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도 유행한 이유일 것이다. 스스로 따라갈 수 없는 소득구조와 고용상황, 양극화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은 평범한 것의 재발견에 있었다. 당당하게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부정적인 현실을 이겨내려 한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유행어가 많이 회자된 이유이기도 하다. 삶에는 본래 치장이 없었고, 그것이 우리의 본성에 맞았다. 치장하고 포장한 것은 우리를 교란할 뿐이었다. 그것들을 이기는 본질이 평범함이었다. ‘평범함이 오래가고 가장 세다’라는 것. 이것이 진리를 깨달은 자의 태도라는 것을 사람들은 고성장기 과소비시대를 겪어 보내면서 이제 본격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사토리(さとり세대’ 즉, 득도세대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들은 최소한의 소비로 안분지족하는 삶을 추구한다. 무엇보다 득도세대는 돈 출세와 물질적 풍요, 명예에 치중하지 않고 쓸 데 없는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사는 방식을 추구한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사토리 세대의 등장이 먼 남의 나라 일은 아닌 것이다. 평범함의 추구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집단지성으로 인한 깨달음의 결과인 것이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