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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랙티비즘(slacktivism)의 요건이 있다는데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12. 16. 14:09

콘돔에 물을 잔뜩 넣은 후 앉아 있는 사람의 머리 위에 떨어뜨리는 '콘돔 챌린지'가 SNS 상에서 확산되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최근 SNS에는 ‘콘돔 챌린지(Condom challenge)’ 동영상이 확산되었다. 내용은 콘돔에 물을 잔뜩 넣은 후 앉아 있는 사람의 머리 위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결과는 물이 담긴 콘돔이 터지는 것과 터지지 않는 것 두 가지다. 터지면 실패이고 터지지 않으면 성공인 셈이다. 

이러한 광경은 작년까지 유행을 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스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는 차가운 얼음물을 머리 위에 붓는 퍼포먼스였다. 이렇기 때문에 콘돔 챌린지를 아이스 버킷 챌린지2라고 말하기도 한다. 명분도 있다. 단순히 재미가 아니라 사회적 나아가 공공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콘돔이 안전하며, 성관계 시 콘돔 착용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관계 자체에 대한 안전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명분을 담고 있는 셈이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인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같이 느껴본다는 명분을 지니고 있다. 정신은 살아 있는데 몸이 말라비틀어지는 고통이 얼음물에 갑자기 닿는 고통에 비유되었다. 지정을 받으면 아이스 버킷을 뒤집어쓰든지 100달러를 루게릭 협회에 기부해야 한다. 많은 이들은 아이스버킷을 뒤집어쓰고도 기부금을 내는 일이 많았다. 6주 만에 1억 1500만 달러가 모집되기도 했다는 발표가 있기도 했다. 기부금이 협회 임원에게 간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신빙성이 의심을 받았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슬랙티비즘(slacktivism)운동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슬랙티비즘(slacktivism)이란 바로 게으른 사회운동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원래는 힘을 안들이고 무엇인가 이루려는 행동을 비꼬는 의미로 쓰였다. 여기에서 슬랙티비즘 운동은 당장에 급진적이고 격한 사회운동의 형태를 지니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성과를 보이는 운동방식을 말한다. 드러나는 양태도 달라 보인다. 사회운동이라면 흔한 모습, 예컨대 있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광장에서 집단적인 시위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없다.

당장에는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돌아가는 결과는 없어 보였다. 다만 루게릭병에 관한 연구에 이 모금액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 성과도 가시적으로 확연하게 눈에 띄는 것은 없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벤트 자체가 좀 더 당장에 많은 효과가 가시적으로 일어날 것처럼 분위기를 형성했다면 더욱 이런 결과에 대해서 실망스러움을 가질 수도 있겠다. 더구나 비대면으로 접촉하지 않는 디지털 매개의 운동이기 때문에 유행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한계점이 있을 수 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사회적인 확산과 주목을 받은 것은 전세계인들이 흔히 아는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꾸로 참여할 수 있을만한 명분은 물론 실천이 쉽게 가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뤄질 수 있었다. 콘돔 챌린지는 유명인들이 참여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콘돔 챌린지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비해서는 그 범위가 좁다고 할 수 있다. 성적인 문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참여하기에는 한계점이 있어 보인다. 최소한 에이즈 등 질별 관련 단체와 연계하는 노력도 필요해 보였다. 금기적 일탈의 관점에서는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대중성 측면에서 미흡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사회적인 가치나 명분을 통해서 현실의 모순을 개선하려는 면에서 디지털 공간에서 많은 이벤트가 열릴 것이고, 이는 슬랙티비즘(slacktivism)의 사례들이 될 가능성이 더 많다. 하지만 이러한 행사들이 남발되는 경우, 당장에 타깃이 되는 이들이 유명 인사들이라면, 결국 그들이 피로증에 걸려 소기의 목적을 얻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유명인사와 관계없이 일반 전세계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명분과 실제 그리고 실천적 배경을 확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는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겠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