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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는 경제학자 우석훈과 박권일이 쓴 동일 제목의 책이 화제가 되면서 단숨에 2007년을 강타한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저자들은 “지금의 20대는 상위 5% 정도만이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명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될 것”이라며 현재의 20대를 ‘88만원 세대’로 규정했다.
일제 치하 채만식 선생이 부여한 ‘레디메이드 인생’ 이후 가장 우울한 세대 명칭으로 꼽을 만한 ‘88만원 세대’라는 정의가 와닿지 않는가. 통계는 참담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통계청이 최근 실시한 ‘경제활동인구 부가 조사’에 따르면 20대 임금 근로자 367만명 중 비정규직은 53%인 193만명이며 특히 20~24세의 비정규직 비율은 67%에 달했다. 소위 대기업 등 ‘괜찮은 일자리’에 대한 진입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 청년실업이 전세계적 현상이라지만 OECD에 따르면 2006년 한국의 청년 취업률(27%)이 다른 회원국(43%)에 비해 턱없이 낮음을 보여준다.
고도 경제성장의 과실 아래 어려움 없이 자라 명품 가방을 걸치고 브런치를 즐기며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벌어들이는 것은 없어도 소비만큼은 다른 세대 부럽지 않은 큰 손 역할을 한다던 ‘신세대’는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기존의 신세대를 규정하는 개념은 주로 소비적인 측면에서 개인주의적이고 소비지향적이며 능동적인 부분을 주로 부각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혹은 실업자로서 20대가 느끼는 고통은 도외시해 왔다”고 진단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토익, 학점, 자격증 취득 등에 매달려도 졸업 후 번듯한 직장을 잡지 못해 ‘알바’를 전전하는 것이 20대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돈과 이익만 좇는 세대’ ‘의식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기성세대가 규정한 청년들의 모습은 먹고사는 문제 앞에 내몰린 그들의 상황을 모르거나 혹은 모른척하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물론 현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현택수 고려대 교수(사회학과)는 “공무원, 교수 등 ‘철밥통’으로 여겨지던 직군에도 경쟁이 도입되는 등 현 시스템에서 경쟁에 의한 구조 변화는 대세”라며 “‘88만원 세대’ 자체에서도 그들만의 문화가 나타나는 조짐이 보이고 있는 만큼 너무 암울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진단했다. ‘우울한 신세대’ 도래의 원인을 ‘기성세대의 기득권 점령과 승자 독식 사회’에서 찾는 것도 무리라는 의견도 많다.
그럼에도 최근의 청년실업 문제가 성장동력을 해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데에 그 누구도 이견이 없다. 또한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청년실업과 불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고 여기서 파생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 사회 양극화 문제 해결이 지난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점점 절망으로 변하고 있는 ‘88만원 세대’의 우울함 앞에 연간 60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언했던 새 대통령이 서광을 비춰줄 수 있을까. 절망감 대신 신세대의 발랄함을 표상하는 새로운 호칭으로 젊은 그들이 불리기 위해서는 신세대에 대한 비난에 앞서 대한민국을 이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만든 기성세대부터 자신을 돌아봐야 할 듯하다.
하남현 기자(airinsa@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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