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포맷의 양면
글/ 김헌식(중원대학교 특임교수,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평론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흑백요리사’는 우리 사회에 작동하고 있는 공정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 것으로 보여 긍정적으로 생각되었다. 그 공정한 판단 기준이 ‘맛’이었다. 상대적으로 다른 가치들은 배제되었지만,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파이널 라운드에서는 음식을 넘어서 다른 기준들이 작동하였다. 사실상 하위 라운드일수록 맛을 적용했을 뿐이다. 아마도 맛이 없는 식당 요리사는 초기에 배제하려는 설정이었을지 모른다. 즉, 기본 맛이 평가된 이후에 다른 요소들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파이널 라운드에서도 결국에는 조리한 음식의 범주에서 이탈하지는 않았다. 예컨대, 경험에 따른 컨셉이나 스토리텔링 그리고 미학적 측면이 고려되었는데 음식 자체에서 평가할 수 있는 잣대들이었다.
다만 사회적 공동체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배제되었다. 예를 들어 노키즈 존이 여기에 해당한다. ‘흑백 요리사’에 참여한 요리사의 파인 다이닝이 적지 않게 노키즈 존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런 수준이 있고 질 좋은 고급 식당인 파인 다이닝이 노키즈 존이라는 사실을 옹호하기도 했다. 좀 더 나아가 술이 등장하는 파인 다이닝에 어린 아이를 출입시킬 수 없다는 견해와 고급 식당에 어린이를 배제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주장이 맞부딪히고 있다. 아이라고 해서 좋은 식당을 출입하지 말라는 논리라고도 한다. 사실 노키즈존에 대한 인식은 문화적 인식 차이를 생각할 수 있지만, 경제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따른다. 어린이가 포함된 가족 고객이라면 대중적인 식사를 찾기에 매출액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약하다. 즉 대중적인 식사가 아닌 파인다이닝은 어린이 손님이 필요없다는 것. 물론 이러한 어린이가 상류층 자제라면 태도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결국, 파인 다이닝이 어린아이를 거부하는 것은 수익성이다. 어린이를 서비스하는 시간과 인력이 아깝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한편으로 사실 이런 파인다이닝이 노키즈 존 정책을 취하는 것은 각자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강요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당을 평가하는 공적 과정이라면 달라져야 한다. 특히 최고의 식당 요리사를 가리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더욱 그러하다.
즉 ‘흑백요리사’는 최고 심사위원 두 사람의 출신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사실상 요식업에 적합한 쉐프를 가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는데, 애초에 좀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공정성을 기하는 맛이라는 기준은 바로 고객이 선호하는 맛을 의미하지만, 일반 고객들에게 맛이 오로지 식당을 방문하는 절대 기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식당 종업원이 불친절하거나 서비스의 질이 나쁘다면 다시는 그 식당을 찾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뉴욕의 미슐랭 다이닝처럼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라면 점차 발길은 줄어든다. 노키즈존처럼 공동체의 가치와 배려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평판은 낮아질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반영하지 않고 무조건 맛을 중심으로 평가해주는 ‘흑백요리사’는 모순과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더군다나 ‘흑백요리사’의 후광 효과 때문에 실제 식당을 방문하는 이들이 많기에 더욱 그러하다. 해당 쉐프의 식당이 아이에 대한 배제와 차별의 성격이 있어도 맛만 좋으면 된다는 논리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심하게 훼손한다. 결국에는 이기적 생존주의나 집단적 특수 이익만을 강화하는 셈이 된다. 이는 비단 한국에만 해당되는 사안은 아니다.
인류는 본능 충족의 동물에서 상호 호혜의 공동체적 존재로 진화해왔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주목은 공동체적 존재를 너무 강조하는 것에 대한 피로증이 작동한 면이 있다. 본능 충족의 생존 게임이 센세이션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콘텐츠에서는 그것이 눈길을 끄는 자극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제 양육 강식의 현실에서는 희망을 주지 못한다. 어렵더라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공동체적 존재의 상호호혜적 사회일 수밖에 없기에 우리가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화콘텐츠는 우리가 이상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가 반영되는 내용물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흑백요리사’는 시즌 2에서 문화콘텐츠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성찰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냉혈의 파충류가 아닌 따뜻한 온기가 도는 포유류가 즐기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