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황금시간대인 일요일 저녁. 리모콘을 요리조리 돌려봐도 색다른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일요 예능 프로그램이 집단 MC들이 특정 미션을 해결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일색이기 때문이다. 같은 유형의 프로그램이다 보니 소재가 겹치기 일쑤고, 타 프로그램과 차별화되지도 않는다.
일요일 오후 5∼8시는 ‘리얼 버라이어티 존’이라 할만 하다. KBS 2TV에서는 ‘남자의 자격’ ‘1박2일’(이상 해피 선데이), MBC엔 ‘오늘을 즐겨라’ ‘뜨거운 형제들’(일요일 일요일 밤에), SBS에는 ‘런닝맨’ ‘영웅호걸’(일요일이 좋다)이 차례로 방영된다. 모두 5명 이상의 출연자가 나와 야외에서 벌이는 리얼 버라이어티다. 특히 ‘1박2일’과 ‘런닝맨’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MC들이 일회성 미션을 수행하는 거의 흡사한 형식이다.
지난 2일 방영된 ‘영웅호걸’의 주제는 고3 학생들을 위한 1일 선생님 체험기였다. MC들은 학생들에게 인생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MC들의 애환이 깃든 시련기에서 감동을 이끌어내려는 방식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해 5월 ‘남자의 자격’도 MC들이 대학 1일 강사되기 체험을 통해 비슷한 강연을 선보였고, ‘뜨거운 형제들’의 MC들도 지난 12월 ‘분교 선생님 되기’ 편에서 학생들 앞에 섰다.
지난 12월 26일 ‘뜨거운 형제들-엄마되기’ 편도 ‘남자의 자격’이 2009년 5월 선보인 ‘육아체험’ 편과 비슷했다. 멤버들이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실수를 저지르고, 그 과정에서 육아의 고충과 소중함을 털어놓는 흐름이었다.
그 외에도 소개팅, 거짓말 탐지기 체험, 자유여행 등은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숱하게 채택된 소재들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과포화 상태”이라며 “초기에는 예측이 안 되는 소재를 들고 나와서 시청자를 사로잡았지만 지금은 유사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다보니 소재도 중복되고, 예측 가능해져버렸다”고 지적했다.
일회성 미션 중심이다 보니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기도 한다. ‘남자가 죽기 전에 할 일’(‘남자의 자격’) ‘의미있는 일을 뜨겁게 수행한다’(‘뜨거운 형제들’) 등 기획 의도는 거창하지만 매주 다루는 소재에는 공통점이 없다.
이러다보니 프로그램이 변질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뜨거운 형제들’은 초반 ‘아바타 소개팅’을 이어오다가 지금은 ‘분교 선생님 되기’ ‘효자되기’ 등 임시적인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오늘을 즐겨라’는 초반 ‘시쓰기’ ‘밥 배달하기’에 도전하다가 지금은 유도, 양궁과 같은 스포츠에 도전하고 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