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시크릿가든’ |
ㆍ‘시크릿가든’·‘역전의 여왕’ 등 톡톡 튀는 단문형 대사들 넘쳐
ㆍ“트렌드 반영한 핑퐁식 대화 젊은 감각 있지만 깊이 떨어져”
“한번만 안아보자.” “안아봐서 좋으면, 그땐 어떻게 할 건데?” “지금과는 다른 인생 살게 해줄게.” “짱이다. 그럼 나 신데렐라 되는 거야?” “아니, 인어공주.”(SBS <시크릿가든> 5회에서 주원 역의 현빈과 라임 역의 하지원이 주고받은 대사)
“그럼 우리는 어떤 사이인데요?” “갑과 을?” “(태희를 벽으로 밀어붙이며) 이런 갑과 을도 있어요?”(MBC <역전의 여왕> 18회에서 용식 역의 박시후와 태희 역의 김남주가 주고받은 대사)
TV 트렌디 드라마에 감각적이고 경쾌한 ‘단문형 대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대표적인 드라마가 김은숙 작가가 극본을 쓴 SBS <시크릿가든>(연출 신우철)과 박지은 작가가 극본을 쓴 MBC <역전의 여왕>(연출 김남원)이다. 마치 휴대전화 또는 스마트폰의 문자나 40자 이내의 단문으로 이야기하는 트위터처럼 짧게 치고 받는 대사들이 이들 드라마에는 쉴새없이 등장한다.
특히 25%가 넘는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시크릿가든>의 대사는 운율까지 맞춰 작성한 듯하다. 출연 배우들도 그에 맞춰 맺고 끊는 시점에 주의하면서 또박또박 발성하는 인상이다. “세상사람 / 다 할 줄 아는 걸 / 넌 왜 모르는데 / 세상사람 / 다 하고 사는 걸 / 넌 왜 못하는데 / 난 늘 어디서나 죄송한데 / 넌 왜 그 방법조차 모르는 건데…”(13회 하지원 대사) 식이다. 김은숙 작가는 전작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온에어>에서도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명대사들로 자주 회자된 바 있다. SBS가 이 드라마의 시청자 온라인게시판에 ‘어록게시판’을 별도로 만들어 운영 중인 것도 김 작가의 이런 장점 때문이다. 박지은 작가도 전작 <내조의 여왕>에서 천지애(김남주 분)의 ‘무식어록’으로 화제를 모으더니 이번 드라마에서는 태희의 ‘개념어록’으로 시청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두 작가는 드라마를 통해 꾸준히 유행어도 낳고 있다. 김 작가는 <시크릿가든>을 통해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삼신할머니랜덤’(운이 좋아 부모 잘 만났음을 뜻함) 등을, 박 작가는 <역전의 여왕>을 통해 ‘꼬픈남’(꼬시고 싶은 남자)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주목할 점은 이들 트렌디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감각적으로 통통 튀는 단문형 대사들이 시대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평론가 김원은 “두 드라마는 공통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짧은 문장으로 맞받아치는 핑퐁식 대사를 보여준다”며 “이 같은 화법은 타인과 댓글식의 짧은 문장으로 소통하는 휴대전화 및 스마트폰 세대의 취향과 잘 맞아떨어지면서 드라마 인기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도 “<시크릿가든>의 경우 신분차가 큰 커플이 부모의 반대 등 역경을 극복하며 아픈 사랑을 이어가는 구태의연한 멜로물의 구도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그것을 포장하는 대사가 감각적이고 거침이 없어 네티즌 세대의 구미에 잘 맞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사빨’로 정평이 난 작가는 이들 외에도 많다. 김수현, 노희경, 홍자매(홍미란·홍정은), 인정옥 작가 등도 개성있는 화법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쾌걸 춘향>, <마이걸>, <환상의 커플>,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등의 홍자매가 신선한 캐릭터들의 재치있는 대사로 인기를 얻었다면, <거짓말>, <바보같은 사랑>, <그들이 사는 세상>의 노희경과 <네멋대로 해라>의 인정옥은 인생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엿보이는 대사로 마니아군단을 형성했다. 또 <목욕탕집 남자들>, <엄마가 뿔났다>, <인생은 아름다워> 등 1990년대 이후 연속적으로 히트드라마를 생산해온 김수현의 대사는 일명 ‘따발총’ 대사로 통한다. 등장인물들이 쉴새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은 “김수현의 따발총 같은 대사는 상대방을,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이 남성을 꼼짝 못하게 할 때 쓰여지는 대사”라고 말했다.
이 작가들의 드라마 속 화법에서도 시대적 트렌드가 읽혀진다. 김원은 “김수현의 화법이 전화로 수다를 떠는 세대를 연상케 한다면, 독백을 하듯 말하는 노희경의 대사는 내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 자신의 심정을 길게 표현하는 이메일 화법”이라며 최근 트렌디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핑퐁식 화법과 구분했다.
MBC 드라마 ‘역전의 여왕’ |
하지만 요즘 드라마들의 단문형 대사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독한 조미료를 잘 쳐서 당장은 맛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몸을 망가뜨리는 대사”라고 혹평했다. 젊은 감각에 맞을지는 몰라도 깊이감이 떨어진다는 일침이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