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인(컬쳐 트렌드 인사이트)

트렌드 책이 잘 팔린다는 게 트렌드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12. 14. 16:00

트렌드 책이 잘 팔린다는 게 트렌드

미디어오늘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 입력2015.12.13. 02:42

기사 내용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쏟아지는 2016 대전망, 쓰는 사람도 믿지 않을 걸?

“내가 말하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트렌드 서적 의 집필에 매년 참여해 온 어느 필자의 말이다. 물론 트렌드 책을 읽는 독자들도 저자들이 말하는 내용이 정확하게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책을 찾는 이유는 뭘 해먹고 살 지 막연한 마음에 무엇이라고 모색해야 겠다는 생각 때문이겠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을 둘러싸고 있는 메가트렌드는 불안이며, 그 불안 때문에 트렌드 서적을 찾는 것이 또하나의 마이크로 트렌드다.

그런데 이러한 트렌드 서적들의 출간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트렌드 책은 새해가 시작되는 1월 달에 선을 보였다 그러던 것이 12월말에 나오고 다시 12월 초 그러더니 11월로 넘어왔고, 올해는 10월 달에 내년의 트렌드를 전망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2016년 전망책이 10월달에 나올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독자가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러다가 한 여름에 다음해 트렌드 서적이 출간되어 나올 듯싶다.

출판 불황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그래도 좀 반응이 있는 것이 트렌드 관련 서적이다. 조금만 반응이 있어도 사활을 걸어야하는 출판사의 처지에서는 집중할 만하다. 대형출판사는 물량 공세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트렌드 서적들은 단지 출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강연 시장과도 맞물려 있다. 연말이나 연초에 신년 트렌드 강의를 듣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당연히 강연료가 따를 것이고, 그것이 저자들에게는 오히려 책판매보다 나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트렌드 강의는 기업이나 금융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강연료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갈수록 커져 보이는 이런 트렌드 예측 시장인 셈이다. 출판과 연계된 강연 그리고 인터넷 콘텐츠 시장까지 동시에 선점하기 위한 노력으로 트렌드 예측서들의 출간이 해마다 빨라지고 있는 셈이다. 

 
 
▲ 지난해 11월5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시민들이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서적을 고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책들이나 전망은 몇 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장밋빛 전망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말한다. 미래에 대한 낙관보다는 어떤 현상이 확산이나 증가라는 외삽 추론 방식에 근거한다. 특정 주제에 맞추어 논지를 전개하는데 대부분 활성화나 증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책들에는 주로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는데 그 용어가 지칭하는 현상들이 곧이라도 대세가 될 것처럼 말한다. 그것의 단점이나 부작용 그리고 장애요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여기에 아직 트렌드 즉 유행이라고 할 수 없는 미미한 현상들도 트렌드 인 것처럼 보여준다.

더구나 트렌드 용어나 개념은 물론이고 상품이나 서비스는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는 기업이나 단체, 업계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기업관련 연구소들에서 이러한 작업에 나서기도 한다. 시장을 인위적으로 구성하고 투자와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트렌드 서적이나 담론들은 기업이나 산업에 초점이 맞춰지고 사회나 생활문화는 배제된다. 또한 정치나 정책과 같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점들은 소홀하게 평가된다. 무겁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인위적인 조어를 만들어낸다. 해마다 트렌드의 특징을 알파벳 조합어를 통해 만들어낸다. 이러한 방식은 당장에 눈길을 끌기도 좋다. 하지만 그것은 억지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눈길을 끌기 위한 용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단어를 만들어 내는 이들도 회의적인 경우가 빈번하다. 만들어진 단어들은 대게 언론미디어들이 좋아하는 행태들이기 때문에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언론미디어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현상들이나 그러한 현상들을 핵심적으로 지칭할 수 있는 단어들을 요구하는 아귀같은 속성이 있다.

더구나 트렌드 현상은 매년 바뀌지 않으며 쉽게 사라지는 것도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도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용어나 개념을 만들어서 현혹하는 것은 현실을 오도하는 것일 수 있다. 트렌드를 분석하거나 집필하는 이들도 피곤하며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더구나 트렌드 서적이나 자료를 대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그 내용을 믿는 경우는 없다. 어차피 참고자료이기 때문에 억지로 부풀리거나 과장하는 것은 신뢰를 잃기 쉽다.    

트렌드는 무엇보다 그 본질적인 특성이 이미 대세가 된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미래 앞날에 대한 정보가 유용하려면 트렌드가 아니라 트렌드 이전의 정보들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이머징 트렌드에 관한 정보들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들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이들이 있다고 자임한다면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트렌드를 말하는 것이 허상속에 헤메는 일이 될수 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예측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맥락이다.

앞날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트렌드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장밋빛으로 그려내는 책이 아니라 전체적인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때로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하고 맞지 않는 트렌드 몰이에 대해서는 교정적인 분석이나 제안도 필요한 시점이다. 비슷비슷한 트렌드 서적들이 많아진 상황에서 단지 출간 시기만 앞당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또한 트렌드는 소비를 위한 것만 아니라 우리 삶의 변화의 흐름과 추이를 살피는 것이다.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시각과 그에 따른 통찰력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에 새로운 것들이 수익을 벌어다줄 수 있는 산업적 경제적 아이템이라고 부각하거나 강조하는 경우, 그것은 마케팅에 휘둘리는 일이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의 해소이다. 그 점에 초점이 맞춰진 트렌드 분석이 우선이다.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