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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사이보그라도 되어야 할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9:58

<김헌식 칼럼>스티브 잡스가 사이보그라도 되어야 할까

 2011.01.20 09:28

 




[김헌식 문화평론가]스티브 잡스는 이번 병가를 통해 CEO주가의 대명사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말그대로 CEO의 거취에 따라 기업의 주가 등락폭이 커지는 상황을 이번에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잡스가 병가를 냈다는 메일 한통은 전세계의 주식시장을 출렁거리게 했다. 

애플의 주식은 떨어졌고, 애플의 경쟁사들의 주식은 올랐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주당 100만 원을 돌파했고, 얼굴이 애플 때문에 구겨졌던 LG도 오랜만에 주식시장에서 웃을 수 있었다. 잡스의 고통이 오히려 다른 기업에는 즐거움을 준 셈이 되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정보통신업계는 정말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그 이상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잡스가 자리를 비운 것을 치열한 전쟁터에 장수가 없다고 비유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게 된다. 무엇보다 애플의 잡스 의존도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분명 스마트기기들을 잡스가 발명하거나 상용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잡스는 의사결정의 중요한 판단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중요하겠지만, 상징적인 효과를 누리는데 큰 역할을 한다. '잡스신'이라는 개념은 이를 단적으로 말한다. 이는 실제적으로도 선순환의 고리를 가지고 있다. 치열한 경쟁구도에서는 더욱 이러한 선순환의 고리가 중요하며 악순환으로의 전환을 차단할 수 있다. 

팽팽한 힘의 균형 속에서 작은 파리 한 마리의 무게가 급격히 한쪽을 향한 쏠림 현상을 이끌어내게 된다. 그 미세한 영향이 급격하게 치명적인 역량의 손상으로 이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계획을 추진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 하물며 잡스의 부재는 말할 것도 없다. 신이 없어진 상황이다. 

물론 잡스의 복귀는 당장에 애플사의 장래에 직결되어 있다. 또한 애플사도 좋을 뿐만 아니라 고객이나 투자자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이러한 경제적인 이익의 차원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잡스를 지지하는 마니아들에게도 즐거움과 행복이 될 것이다. 인류문명사라는 거창한 명분을 들어 볼 때 분명 잡스의 복귀는 필요한지 모른다. 어쨌든 테크놀로지의 발달에서 그의 역할은 분명 큰 족적을 남겼음에 분명하다. 그는 거꾸로 테크놀로지가 아니었으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했으며 스마트기기들을 탄생시키지 못했다. 

의료전문가들은 그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췌장암수술을 받았다. 2009년에는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췌장암은 살 확률이 매우 낮지만 천행으로 스티브 잡스는 살아났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인위적 조치가 이루어지고 그것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는 진단이다. 그간 잡스가 보인 행보는 그에 비하면 초인적이었을 수 있다. 이번 병가는 암의 재발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간 이식을 받은 환자들은 이식 간조직의 거부 반응을 억제하기 위해 억제제를 먹어야 하는데 이것이 암 발생 위험률을 높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문명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적 욕망을 억제했기에 가능하다고 했다. 그 생리적 욕망이 성적인 부분이 꼭 아니라고 해도 인간이 이루어낸 문명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신진대사를 희생한 대가로 이루어진 측면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 소모와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업적의 위대함과 비례해 천재들은 요절하고 질병에 시달리고 정신병에 휩싸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의 업적이 아무리 위대하다지만,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고장 나고 장애를 일으킨 것이다. 그는 고장나고 장애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퇴장할 수 없는, 누워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사이보그라도 되어서 애플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자본과 테크놀로지의 관계적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한축이 무너진다. 만약 중국이라면 스티브 잡스에게 의료서비스만이 아니라 각종 인체공학적 기법까지 국가적으로 제공할지도 모른다. 

스티브 잡스의 화려한 면을 강조하지만 잡스를 비롯한 수많은 엔지니어들의 피와 땀은 물론 생명의 소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는 한국의 삼성도 마찬가지다. 관리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어가면서 만들어낸 기기들을 우리는 사용하고 있다.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남이 시키는 삶을 살지 말아라." 그렇게 하기에 인생은 매우 짧기 때문이라는 것. 인생은 짧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배고플 때의 마음으로 꾸준하게 미래로 가라고 말이다. 그가 췌장암에 걸려 수술과 치료를 받고 난 이후의 발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정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한 것일까. 결국 그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주식의 가격을 올려야 했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한 정도의 망가진 몸으로 버티어 왔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행동이나 발언을 종합하면 (삶의) 유한성 때문에 창의성이 나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영원히 산다면 창의성은 곧 소진될 듯 싶다. 이는 영원성과 창의성 사이의 역방향적 관계를 말한다. 사이보그가 되어 영원한 삶을 얻으면 그는 더 이상 창의적인 잡스가 아니게 된다. 그렇지만 주주자본주의는 그를 사이보그라도 만들어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