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달라진 한국 다큐, 세계적으로도 달라졌나
2011.01.30 09:08
[김헌식 문화평론가]2005년 EBS 국제다큐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다. 그곳에서 만난 한 방송사 작가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앞 길이 안보인다고 했다. 제작진은 전반적으로 무기력에 빠져 있었고, 어떤 아이템을 시도해도 시청자의 반응을 얻을 수 없었다고 했다. 방송 3사를 막론하고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2006년, 다큐기획이 모험적으로 시도되었고, 생각지 않은 폭발적인 반응을 일어났다. 심지어 다큐 시청률이 10%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이다. 그 다큐가 바로 MBC < 휴먼다큐-사랑 > 이었다. 이 기획을 가능하게 했던 다큐가 < 행복한 부부, 이혼한 부부 > 이었다.
뜨거운 반응 덕분에 재방송까지 편성했다. 왜 시청자들은 이 다큐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을까. 많은 매체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을 자극한 것이 주요했다고 분석되었다. 이 다큐의 특징은 바로 '감성'이었다. 제작진은 그 감성적 다큐 즉, 감성다큐에서 한국적 다큐의 활로를 찾은 것이다.
이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성을 건드려주는 다큐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러한 지적은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감성이 자극받아 감동으로 이어지고 그 감동이 다시 시청 행위를 지속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큐의 모습은 이 전에도 충분히 존재했다.
그렇다면 새롭게 부각된 다큐는 어떤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예컨대, KBS < 인간극장 > 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휴먼다큐 방식으로 시청자의 호응을 얻어왔다. 새로운 감성다큐의 몇 가지 사례를 들면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 안녕, 아빠 > 는 대장암에 걸린 아빠를 돌보는 엄마와 두 아이의 일상을 그렸다. < 풀빵엄마 > 는 두 아이를 위해 풀빵 장사를 하는 싱글맘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 엄마의 약속 > 은 딸과 100일을 함께 보내기 위해 삶과 죽음의 경계위에서 사투를 벌이는 엄마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특징은 모두 가족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병에 걸린 이들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다른 다큐에도 아픈 사람은 등장한다. 병에 걸린 상황에서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병'이나 '고군분투'가 아니라 삶의 희망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 그 자체이다. 단순히 역경 극복 다큐와는 달랐고, 이전의 < 인간시대 > 에서 볼 수 없었던 점이었다. 또한 이러한 점은 비단 동정적인 시선으로 자극하는 다큐와는 차별적인 점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가족주의가 많이 부각되었다. 모성애는 물론이고, 부성애 나아가 현대적인 효(孝)의 관점도 부가되었다. 감정의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묘사보다는 해석적인 주관적 관점이 많이 개입되었다.
이러한 점은 대형 다큐에도 여전히 적용되면서 그 진가를 발휘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EBS < 한반도의 공룡 > 은 EBS 다큐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50억 원의 제작비를 들였는데, 폭발적인 시청률의 비결은 제작비가 아니라 다른 데에 있었다. 우선 한반도에 실존했던 공룡을 다루었고, 사람의 일생과 같이 공룡 점박이의 출생과 성장, 사랑, 가족영위, 최후 등 전생애를 모두 다루었다.
이러한 점 자체가 시청자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감수성을 건드렸다는 평가가 있게 했다. 한반도에 실재했던 공룡의 삶은 공간적 일치성과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이었다. 특히 입시와 사회경쟁 속에서 힘겨워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점박이에게 감정이입하는 현상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MBC 지구시리즈의 경우에는 아예 감성적 요소를 제목에 그대로 반영하기도 했다. < 북극의 눈물 > , < 아마존의 눈물 > , < 아프리카의 눈물 > 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두 가지 공통점이 당장에 눈에 보인다. 북극이나 아마존, 아프리카는 모두 평소에 가까이 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만큼 일상적인 우리의 삶과는 분리된 공간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공통점은 바로 '눈물'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이다.
이러한 다큐에서 북극과 아마존, 아프리카는 우리와 관계없는 오지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점이 부각된다. 더구나 한국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가족구성원들의 일상과 고민, 그리고 행복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북극곰들이 환경오염에 따라 점차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것은 우리가 환경오염으로 일상의 삶이 위험해지는 것과 다름없다.
아마존 주민들이 자신의 아들과 딸의 장래를 위해 교육을 고민하는 모습은 한국의 학부모와 같다. 이러한 점은 아프리카에서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더 풍부해지게 된다. 이 때문인지 < 아마존의 눈물 > 은 20%의 시청률을 돌파하는 진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비록 이러한 다큐 형식이 많은 주목과 시청률을 확보했지만,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의 기록이 본래적 의미이다. 말 그대로 객관적이며 현실 그대로는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객관적이며 사실적인 다큐의 의미와 가치를 망각했다는 회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감성 다큐는 적극적인 해석과 주관적 관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감성적인 요소가 강해진 다큐는 바로 사실을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다큐의 특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만약 감성적인 즉, 주관적인 관점이 많이 개입한다면 객관성 지향의 다큐성격이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관성을 아예 배제해야한다는 이른바 보수적 다큐론은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누가 방해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제해야 하는 면도 있다. 그것은 바로 '문화할인율'현상 때문이다. '문화할인율'(文化割引率)은 이쪽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콘텐츠가 다른쪽 문화권에 진입할 때 문화적 차이로 이해의 장애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다큐의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주관적인 관점 등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모성을 강조하거나 이에 대한 부각이 당연한 것이지만 문화권에 따라서는 그러한 가치관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예컨대 어머니나 아버지의 무한한 희생을 한국에서는 찬양할 수 있지만, 이른바 일부 선진국이 속한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그것은 합리적이거나 타당하지 않다고 여긴다. 이는 봉준호 감독의 < 마더 > 가 모성성의 이면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겠지만, 칸의 심사위원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문화할인율은 전문가 집단보다 대중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문화접촉의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다큐가 해외수상을 많이 한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세계대중들에게서 큰 반응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다는데서 나타난다.
한국의 다큐들이 고민하는 점 가운데 하나는 세계적으로 매우 강한 브랜드 권위를 가지고 있는 BBC다큐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 누들로드 > 나 < 차마고도 > 는 BBC에서 다루지 않은 틈새를 파악하고 그것에 차별화를 시도했다.
여기에 똑같은 현상과 시공간을 다루어도 인간적인 관점 특히 한국 사회의 가치관을 많이 투영시켜내었다. 이러한 점은 꼭 대형 다큐나 감성적인 다큐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 다큐멘터리 3일 > 이나 < 지식채널-e >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BBC다큐보다 더 국내반응을 이끌어냈지만 BBC다큐를 해외에서 넘어설 수는 없었다.
한편, 단순히 이렇게 객관과 주관, 감성과 이성의 이분법적 구분과 그 경계 허물기 때문에 한국의 다큐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만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적극적으로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해외 다큐를 수입하거나 그것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적극적인 창조적 작업을 해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산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자연현상이나 시공간을 해석해내는 작업이 왜 중요한지 최근 다큐를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다만 그러한 자신의 관점과 해석적 과정을 통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자신을 가두는 틀이 될 수 있음을 항상 생각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한국의 다큐가 강해진 것은 바뀐 창작 혹은 향유의 문화와 구조변화에 기인하는 바가 있기도 하다. EBS < 아이의 사생활 > , < 인간의 두 얼굴 > , < 학교란 무엇인가 > 는 감성에 호소하기보다는 이성에 하는 작품들이다. 이성에 소구하는 작품이 주목을 받는 것은 바로 EBS라는 채널에 대한 유목적적 인식이다.
감성이 아니라 이성적인 콘텐츠라도 창작의 관점에서 집단 브레인스토밍이 매우 강해졌기 때문에 차별적인 내용이 가능했다. 지금도 수십 명의 피디가 집단 합숙과 토론을 통해 장기적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용자와의 디지털의 상호성의 피드백은 한 차원은 작품의 질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2006년, 다큐기획이 모험적으로 시도되었고, 생각지 않은 폭발적인 반응을 일어났다. 심지어 다큐 시청률이 10%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이다. 그 다큐가 바로 MBC < 휴먼다큐-사랑 > 이었다. 이 기획을 가능하게 했던 다큐가 < 행복한 부부, 이혼한 부부 > 이었다.
뜨거운 반응 덕분에 재방송까지 편성했다. 왜 시청자들은 이 다큐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을까. 많은 매체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을 자극한 것이 주요했다고 분석되었다. 이 다큐의 특징은 바로 '감성'이었다. 제작진은 그 감성적 다큐 즉, 감성다큐에서 한국적 다큐의 활로를 찾은 것이다.
이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성을 건드려주는 다큐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러한 지적은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감성이 자극받아 감동으로 이어지고 그 감동이 다시 시청 행위를 지속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큐의 모습은 이 전에도 충분히 존재했다.
그렇다면 새롭게 부각된 다큐는 어떤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예컨대, KBS < 인간극장 > 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휴먼다큐 방식으로 시청자의 호응을 얻어왔다. 새로운 감성다큐의 몇 가지 사례를 들면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 안녕, 아빠 > 는 대장암에 걸린 아빠를 돌보는 엄마와 두 아이의 일상을 그렸다. < 풀빵엄마 > 는 두 아이를 위해 풀빵 장사를 하는 싱글맘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 엄마의 약속 > 은 딸과 100일을 함께 보내기 위해 삶과 죽음의 경계위에서 사투를 벌이는 엄마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특징은 모두 가족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병에 걸린 이들이 공통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다른 다큐에도 아픈 사람은 등장한다. 병에 걸린 상황에서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병'이나 '고군분투'가 아니라 삶의 희망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 그 자체이다. 단순히 역경 극복 다큐와는 달랐고, 이전의 < 인간시대 > 에서 볼 수 없었던 점이었다. 또한 이러한 점은 비단 동정적인 시선으로 자극하는 다큐와는 차별적인 점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가족주의가 많이 부각되었다. 모성애는 물론이고, 부성애 나아가 현대적인 효(孝)의 관점도 부가되었다. 감정의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묘사보다는 해석적인 주관적 관점이 많이 개입되었다.
이러한 점은 대형 다큐에도 여전히 적용되면서 그 진가를 발휘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EBS < 한반도의 공룡 > 은 EBS 다큐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50억 원의 제작비를 들였는데, 폭발적인 시청률의 비결은 제작비가 아니라 다른 데에 있었다. 우선 한반도에 실존했던 공룡을 다루었고, 사람의 일생과 같이 공룡 점박이의 출생과 성장, 사랑, 가족영위, 최후 등 전생애를 모두 다루었다.
이러한 점 자체가 시청자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감수성을 건드렸다는 평가가 있게 했다. 한반도에 실재했던 공룡의 삶은 공간적 일치성과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이었다. 특히 입시와 사회경쟁 속에서 힘겨워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점박이에게 감정이입하는 현상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MBC 지구시리즈의 경우에는 아예 감성적 요소를 제목에 그대로 반영하기도 했다. < 북극의 눈물 > , < 아마존의 눈물 > , < 아프리카의 눈물 > 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두 가지 공통점이 당장에 눈에 보인다. 북극이나 아마존, 아프리카는 모두 평소에 가까이 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만큼 일상적인 우리의 삶과는 분리된 공간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공통점은 바로 '눈물'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이다.
이러한 다큐에서 북극과 아마존, 아프리카는 우리와 관계없는 오지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점이 부각된다. 더구나 한국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가족구성원들의 일상과 고민, 그리고 행복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북극곰들이 환경오염에 따라 점차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것은 우리가 환경오염으로 일상의 삶이 위험해지는 것과 다름없다.
아마존 주민들이 자신의 아들과 딸의 장래를 위해 교육을 고민하는 모습은 한국의 학부모와 같다. 이러한 점은 아프리카에서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더 풍부해지게 된다. 이 때문인지 < 아마존의 눈물 > 은 20%의 시청률을 돌파하는 진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비록 이러한 다큐 형식이 많은 주목과 시청률을 확보했지만,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의 기록이 본래적 의미이다. 말 그대로 객관적이며 현실 그대로는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객관적이며 사실적인 다큐의 의미와 가치를 망각했다는 회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감성 다큐는 적극적인 해석과 주관적 관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감성적인 요소가 강해진 다큐는 바로 사실을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다큐의 특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만약 감성적인 즉, 주관적인 관점이 많이 개입한다면 객관성 지향의 다큐성격이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관성을 아예 배제해야한다는 이른바 보수적 다큐론은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누가 방해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제해야 하는 면도 있다. 그것은 바로 '문화할인율'현상 때문이다. '문화할인율'(文化割引率)은 이쪽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콘텐츠가 다른쪽 문화권에 진입할 때 문화적 차이로 이해의 장애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다큐의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주관적인 관점 등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모성을 강조하거나 이에 대한 부각이 당연한 것이지만 문화권에 따라서는 그러한 가치관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예컨대 어머니나 아버지의 무한한 희생을 한국에서는 찬양할 수 있지만, 이른바 일부 선진국이 속한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그것은 합리적이거나 타당하지 않다고 여긴다. 이는 봉준호 감독의 < 마더 > 가 모성성의 이면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겠지만, 칸의 심사위원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문화할인율은 전문가 집단보다 대중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문화접촉의 장애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다큐가 해외수상을 많이 한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세계대중들에게서 큰 반응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다는데서 나타난다.
한국의 다큐들이 고민하는 점 가운데 하나는 세계적으로 매우 강한 브랜드 권위를 가지고 있는 BBC다큐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 누들로드 > 나 < 차마고도 > 는 BBC에서 다루지 않은 틈새를 파악하고 그것에 차별화를 시도했다.
여기에 똑같은 현상과 시공간을 다루어도 인간적인 관점 특히 한국 사회의 가치관을 많이 투영시켜내었다. 이러한 점은 꼭 대형 다큐나 감성적인 다큐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 다큐멘터리 3일 > 이나 < 지식채널-e >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BBC다큐보다 더 국내반응을 이끌어냈지만 BBC다큐를 해외에서 넘어설 수는 없었다.
한편, 단순히 이렇게 객관과 주관, 감성과 이성의 이분법적 구분과 그 경계 허물기 때문에 한국의 다큐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만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적극적으로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해외 다큐를 수입하거나 그것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적극적인 창조적 작업을 해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산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자연현상이나 시공간을 해석해내는 작업이 왜 중요한지 최근 다큐를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다만 그러한 자신의 관점과 해석적 과정을 통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자신을 가두는 틀이 될 수 있음을 항상 생각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한국의 다큐가 강해진 것은 바뀐 창작 혹은 향유의 문화와 구조변화에 기인하는 바가 있기도 하다. EBS < 아이의 사생활 > , < 인간의 두 얼굴 > , < 학교란 무엇인가 > 는 감성에 호소하기보다는 이성에 하는 작품들이다. 이성에 소구하는 작품이 주목을 받는 것은 바로 EBS라는 채널에 대한 유목적적 인식이다.
감성이 아니라 이성적인 콘텐츠라도 창작의 관점에서 집단 브레인스토밍이 매우 강해졌기 때문에 차별적인 내용이 가능했다. 지금도 수십 명의 피디가 집단 합숙과 토론을 통해 장기적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용자와의 디지털의 상호성의 피드백은 한 차원은 작품의 질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