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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수험표 할인 장사의 나팔수는 언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1. 19. 13:19

수능 수험표 할인 장사의 나팔수는 언론이다


2013년 11월9일 KBS '뉴스광장' 화면 갈무리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수능수험표는 돈을 벌어드립니다!?

지난 11월 7일, 수능수험표가 인터넷에서 거래된다는 언론매체의 보도가 있었다. 내용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수능수험표를 거래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런 거래 행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알려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수능시험 와중에 기사를 출고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수험표가 거래되는 것은 그 자체가 돈이 되기 때문은 아니었다. 수능수험표만 있으면 각종 할인 행사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수시 등에서 대학에 합격했기에 수능을 볼 필요가 없는 학생도 이 수험표 할인 때문에 응시하는 사례는 익히 알려져 있다. 그만큼 수험표만 있으면 응시전형료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과자부터 놀이공원, 극장, 의료, 패션, 금융, 성형 수술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역에서 공짜 혹은 할인 행사를 벌이고 있는 점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라서 새로울 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일부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런 수능할인행사에 교사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학생들과 같이 그들의 그간 노고를 치하하고, 이런 트렌드를 공유하면 그들의 고통을 씻어주고 한편으로 의식 있는 사람으로 간주될지도 모르겠다. 구체적인 할인 정보도 공유한다면 더욱 더 학생들과 친밀해질 듯싶다. 하지만 이런 행태들은 수능할인장사를 당연시하는 우리의 둔감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험표 할인 장사의 나팔수 

경향신문 2013년 11월8일자 20면

수많은 언론매체들은 수능수험표를 통해 할인받을 수 있는 행사들을 그대로 생중계하는데 여념이 없다. 마치 재테크를 잘 할 수 있는 소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그 장사 정보들이 고생하는 수능생들에 대한 보답이라도 되는 듯싶다. 

기껏 언론에서 문제 삼는 것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수험표 거래이다. 그러나 그 수험표 거래도 그 거래를 주고받는 당사자들 일부를 질타하는 소극적인 내용에 불과하다. 더구나 다른 사람의 수험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는다. 만약 해당 기업들이 정확하게 확인한다면, 이러한 거래는 있을 수 없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해당 기업들은 사람들을 매장에 많이 모으면 그만이므로, 그 수험표를 소유한 당사자가 본인이 맞는지는 부차적이다. 수능생을 위한 무료, 할인 행사들은 결국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쏟아지는 수십만의 수험생들을 모으는 호객행위이다. 

언론은 아주 간혹 약속한 할인 상품이나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기업들의 행태를 꼬집기도 한다. 또한 수능수험표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비판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성형수술이다. 의료법에서는 의료기관이 호객행위를 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따라서 성형 시술 병원이 수능수험표를 지참한 학생에게 할인 가격의 성형수술을 유도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사실상 성형수술의 물주는 학부모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들은 수능선물로 학부모 특히 어머니와 패키지상품으로 묶어 성형수술 상품을 마련해 할인행사를 벌인다. 물론 이런 성형시술은 평균적이고 일괄된 시술로 개인적인 특성을 반영하지 않아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성형수술 자체가 외모지상주의와 물신주의 상징이자 실체라는 인식은 수능수험생 할인이라는 딱지에 쉽게 허물어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형수술이나 수능 이후에 그들에게 관대해지는 사회심리가 모두 동일하다는 점이다. 이는 인내의 고통을 쾌락적으로 보상받으려는 사회 심리적 경향과 맞물려 있다. 수능할인은 교육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전국적인 보상 세일즈이다. 이 때문에 돈이 없으면 입장불가다. 

수능 카니발리즘(cannibalism) 

2013년 11월8일 JTBC <뉴스&아침> 화면 갈무리

일단 수능생들이 받는 할인은 모두 돈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돈이 먼저이고 할인은 그 뒤의 수순이다. 우리 사회가 수능생들에게 하는 일은 바로 금전을 통한 상품 소비 욕구 충족이다. 위로의 크기는 할인 몇 %라는 수치와 비례한다. 마치 그 숫자들의 크기는 위로하는 마음의 크기가 되는 듯하다. 수험표 인증을 통해 포인트 점수를 쌓을수록 나라전체에서 부과된 평생의 필수적 통과의례를 치르고 난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며 무료나 할인, 포인트적립은 누군가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다. 이미 그 안에 가격으로 내재된다. 이른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그들에게 자기중심적 전가의 소비 행태를 체화시킨다. 그 해당 상품이나 서비스가 양질인가는 부차적이다. 어차피 그 상품이나 서비스의 제공은 잔반처리와 같으니 애써 언급할 일이 아닌지 오래다. 

각종 할인 행사는 그들에 대한 노고를 치하하고, 고생에 대한 응어리를 풀어주려는 심리적 기제에 기생한다. 수능이 전국가적인 행사인지라 이를 위해 사회 전체가 올 스톱되는 상황은 금기의 정지와 욕망의 만끽을 주술적으로 불러낸다. 예컨대 평소 성형수술도 금기시되어도 수능만 보고난 뒤라면 그것이 용인되어 버린다. 또한 수능은 학벌과 입시교육의 합리화 제도인데도 수능만 끝나면 사회전체에 걸쳐 돈으로 가능한 일탈이나 방종이 용인된다. 이는 '회포풀이' 문화와 '접대문화'에 연결되어 있다. 뭔가 극단적인 고생을 한 이들에게는 그에 향응하는 무엇인가가 제공되어야 하며, 그것은 타인에게 위해(危害)한 행동이어도 종종 용인된다. 

군대 휴가문화를 생각하면, 병사들의 성적 일탈도 용인되었다. 그 가운데 성매매는 문제시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카니발리즘(cannibalism)에 익숙하다. '성공하는 그날까지 모든 것을 인내하라 그리고 그 이후에 네 마음껏 즐겨라. 모든 것이 정당화, 합리화되리라.' 이는 우리사회에서 성공한 지위를 가진 이들의 심리적 고질(痼疾)이기도 하다. 그러한 고질은 그들의 자녀세대들에게 입시교육제도 즉 수능과 같은 제도를 통해 재생산된다. 각종 고시들은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 사회에는 가학과 그로 인한 고통을 장려하며 결과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수능은 바로 그러한 가학과 고통의 정점이다. 그 정점을 지닌 이들에게는 해방을 잠시 맛보게 한다. 그 해방의 카니발리즘은 이제 돈을 가져야만 가능해졌다. 그리고 다시 내년 내후년의 수능생들에게 암묵적으로 '그날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라'는 명령 통제, 그리고 이에 복종하는 수용기제로 작동한다. 

그러나 수능을 보기 전이나 수능을 보고 난 뒤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과 그 현실을 마주하는 존재는 그대로다. 성년의 날이 어른과 이이로 구분해주지 않는 것과 같다. 환영적인 이벤트와 몽환적인 신기루에 불과하다.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치러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수험표의 위력 아닌 위력은 좀 더 풍요로운 우리의 삶과 반대로 곤두박질치는 교육의 현실을 은폐할 뿐이다. 제도적 병폐의 틈바구니에서 어차피 할인 안 되어도 그만인 상품을 통해 마치 거대한 획득을 한 듯 혼동하는 도파민이 피폐해진 뇌의 한 구석을 잠시 적실뿐이다. 그것은 마약이나 알콜의 기운처럼 잠시 우리를 마비시킬 뿐,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그 허위의 소비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악순환에 빠뜨린다. 언론이 그 길라잡이를 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방기하는 교육기관은 도대체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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