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2001)에서 “우리 헤어지자”며 어느새 차갑게 대하는 은수(이영애)를 찾아간 상우(유지태), 그가 성토하듯 은수에게 그 유명한 명대사를 말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렇게 겨울에서 봄부터 시작한 그들의 사랑은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르러 끝났다. 가을에 들어서서 6개월 동안 상우는 두문불출한다. 그 뒤 봄이 되면서 벚꽃이 만개한 어느 날, 상우는 다시 시작해 보자는 은수를 애써 떠나보낸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가을을 타던 상우가 봄이 되자 훌훌 털어버렸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은수를 봄을 타서 상우를 다시 찾은 셈이 된다.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알 수 있다.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한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요, 가을은 사색의 계절, 수확의 계절이라고도 한다.”(<매일신문>, 2013년 6월 6일자)
가을을 탄다는 것은 감성적이 된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감성적인 콘텐츠를 소비하며 마음의 위안을 삼기도 한다.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과 이용의 ‘잊혀진 계절’, 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은 모두 남자 가수들이 불렀다.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콘텐츠 홍보를 하기도 한다. 지난 10월 16일 케이윌은 자신의 SNS에 앨범 발표에 대해 “남자의 계절. 케이윌의 가을 앨범 Will in fall 가을아 오래가라”라고 언급했다. 한 누리꾼은 “발라드의 계절, 케이윌이 기대되는군요”라고 언급했다. 발라드만큼 감성적인 노래도 없다. 방송 프로그램이나 보도매체도 마찬가지다. 지난 4일 방송된 <나 혼자 산다>는 전국 기준 9%를 기록, <사랑과 전쟁2>(6.7%), SBS 특선영화 <강철대오>를 따돌렸다. 이 방송프로그램은 가을을 맞아 혼자남들의 가을나들이를 다루었다. 여러 매체에서는 “지난 4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는 쓸쓸한 남자의 계절 가을을 맞아 홀로 가을을 보내는 ‘무지개 회원’들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라고 논평했다. | ![](http://images.mediatoday.co.kr/news/photo/201310/112592_120162_270.jpg) | | 2013년 10월 11일, 맥스무비(www.maxmovie.com) 화면 갈무리 | |
한 연애전문업체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남성이 계절을 타는 시즌은 가을이 44.7%로 1위였다. 다음이 겨울 40.8%, 여름 7.9%, 봄 6.6% 순이었다. 2013년 10월 11일, 맥스무비(www.maxmovie.com)의 영화 연구소가 이메일 설문으로 총 1,544명 설문한 결과, “다른 계절에 비해 가을에 외로움을 더 타는 편인가?”라는 질문에 59%가 ‘더 타는 편’이라고 응답했고, ‘타지 않는 편’이라는 응답은 고작 14%였다. 남성이 여성보다 2.1배가 더 높았다. 이러한 맥락에서라면,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슈퍼맨도 가을을 탈만하다. 남자는 왜 가을을 타는가 가을에는 일조량이 줄어들고 기온이 낮아지면서, 항우울 효과가 있는 세로토닌 분비가 적어진다. 대신에 정신을 차분하게 가라 앉혀 주는 멜라토닌이 많아진다. 가을에 들어서면 햇빛이 적어지기 때문에 비타민 D합성이 덜하다. 줄어드는 비타민 D는 남성의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적게 한다. 따라서 기분이 처지고 피로하며 성기능 감퇴를 낳기도 한다. 탈모의 경우도 남성들을 우울하게 한다. 테스토스테론은 전립선에서 5알파 환원효소(5alpha reductase)를 통해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 Dihydrotestosterone)으로 전환시킨다.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은 머리카락의 모낭에서 모발 생성을 저하한다. 따라서 DHT가 많아지면 모발이 가늘어지고 심지어 빠진다.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초입 가을에 일시적으로 많아지고, 이 때문에 DHT 생성도 많아지면서 머리가 더 많이 빠지게 된다. 사회문화 관점에서는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지만, 이에 비해 사회적 성취가 적거나 뒤쳐진 기분을 가질수록 이러한 가을 타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른바 ‘상승정지 증후군’(rising stop syndrome)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중년 남성들에게 더 일어난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가을에는 남자들을 위로하는 책들이 나와야 할 법하다. “남자의 계절’이라는 가을, 삶에 지친 중년 남성을 위로하는 두 권의 시집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세계일보>, 2012년 11월 23일자)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남자들은 술 생각이 더 난다. 처진 기분을 술을 통해 극복하려고도 한다.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알 수 있다. “흔히 남자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성큼 왔다. ‘가을 타는’ 이 남자는 밤이 외로워서 친구들에게 SOS를 친다. 술 한잔하자고. 그런데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대화란 게 내 속을 달래주기보다는 팍팍하게 사는 남의 이야기라 남자는 다시 멍해진다.”(<여성중앙>, 2012년 10월호)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 결과(Alcoholism : Clinical & Experimental Research)에 따르면, 술을 통해 가라앉은 기분을 해소하려는 것은 우울증을 더 불러일으키고 알콜 의존도만 높였다. 특히, 조직이나 사회적 성취감에 낮은 가을을 보내는 남성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알콜을 섭취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무엇보다 슈퍼맨만이 아니라 원더우먼도 가을을 탄다. 남자만 가을을 타나, 여자도 탄다 취업정보기업과 리서치 전문기관이 함께 수행한 한 조사에 따르면 남성(33.2%)보다 여성(49.1%)이 가을증후군 비율이 더 높았다. 임상적으로 가을에 우울증상에 시달리는 사람 가운데 여성이 전체 환자의 70~80% 차지한다는 주장도 있다. 가을에는 여성에게도 우울한 기분은 물론 집중력 저하, 만성피로, 초조감, 긴장 등이 나타난다. 가을 우울증의 원인은 햇빛감소로 기분조절 호르몬 세로토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성은 호르몬 변화에 민감한데, 세로토닌에 민감하기에 가을에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좀 더 높다. 햇빛이 줄어들기 때문에 가을에 여성들이 피부를 위해 썬캡을 쓰고 자외선 차단 마스크를 한 채 운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얼굴이 하얀 피부의 소유자는 유의를 해야 한다. 2013년 9월, 미국 예일대 연구팀에 따르면 같은 나이의 중년 여성 피부를 비교분석한 결과, 얼굴이 하얀 여성이 검은 여성보다 피부노화가 2배 가까이 빨리 이뤄졌다. 무엇보다 멜라닌 색소가 적어 자외선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 흰 피부를 가진 사람은 비타민 D 부족이 발생할 가능성이 2배 이상 높았다. 비타민 D 결핍은 당뇨, 류머티스, 우울증 등을 낳는다. 지난 5월 국내의료진이 2800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비타민D 농도가 낮은 여성은 갑상선염에 걸릴 확률이 1.7배 높았다. 폐경 전 여성 가운데 비타민D가 충분한 여성에서는 4%에서만 갑상선염이 있었고, 비타민 D 결핍 여성의 16%에서 갑상선염이 있었다. | ![](http://images.mediatoday.co.kr/news/photo/201310/112592_120163_2723.jpg) | | 2013년 9월4일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 |
비타민 D 부족은 햇볕을 적게 쬘 때 생긴다. 비타민D가 달걀노른자, 연어ㆍ청어 같은 생선, 표고버섯 등에도 있지만, 이는 소량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인체에서 쓰이는 비타민 D의 대부분은 햇볕을 쪼일 때, 피부에서 생성된다.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세계적으로 비타민 D 결핍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전체 인구 중 30~50%가 비타민 D 결핍이라는 연구도 있다. 국내에서는 전체 인구 중 80%가 비타민 D 결핍이라는 조사도 있는데, 피부미용을 과잉으로 강조해 일조량이 적은 북유럽보다 비타민 D 결핍 인구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란다. 지난 30년 동안 기상청 관측 자료를 보면, 가을철 평균 습도는 69%이었는데, 이는 봄철 63%보다 높았다. 이는 가을에는 일사량과 자외선이 적어 봄볕보다 덜 자극적인 것을 말한다. 가을 이후에는 하루에 20-30분 정도 햇빛을 보는 게 좋다. 햇볕은 뼈를 튼튼하게 하고 면역력을 증강시킨다. 편두통 개선(뇌혈관 혈류개선), 수면장애 개선(체내시계의 정상화), 냉증ㆍ냉방병 예방 및 개선, 이상단백질의 기능회복, 우울증 개선(멜라토닌과 세로토닌 균형), 대사증후군 개선(신진대사 촉진, 혈류 활성화), 암 예방 등에도 효과적이다. 특히 높은 연령대의 여성들은 비타민 D 생성이 더뎌지므로, 햇빛을 많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골다공증의 뼈가 더 약해진다. 일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햇볕이 약해지면 사람들 골밀도가 여름에 비해 평균 8% 낮아졌다. 또한 가을이 되면 남성들만이 아니라 여성들도 머리가 빠진다. 여성들의 원형탈모증의 심화가 이에 해당한다. 건조한 피부는 더욱 탈모증을 심화시킨다. 더 이상 탈모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탈모는 문병의 질병이기 때문이며 경쟁과 스트레스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가을바람이 불면 온몸을 건조하게 하는 ‘쇼그렌 증후군’이 여성들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 쇼그렌 증후군은 눈물샘과 침샘, 피부의 피지샘, 질샘, 소화샘, 기관지샘 등 외분비샘에 만성 염증이 일어나 건조해지는 질병이다. 미국의 400만 쇼그렌 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90%가 여성이었고, 주로 40~50대가 많았다. 가을 타는 심리,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 이렇게 가을은 남성의 계절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성들에게도 가을철 심리적 변화가 같이 찾아온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을 매체를 통해 먼저 듣고, 학습되는 경우가 많다. 남자는 가을, 여자는 봄이라는 전제인식에 따라 상품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여기에 휩쓸리기도 한다. 가을 탄다고 여성이 아니거나 가을을 안탄다고 남성이 아닐 수도 없다. 어떤 이들은 전통적인 인습적 사고에 따라 여성들은 생명을 품어야 하기 때문에 봄을 타고, 남성은 추수를 하기 때문에 가을 탄다고 직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이런 관점들은 자칫 여성과 남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낳을 수 있다. 무엇보다 여성들도 가을에 따른 변화하는 심리가 존재하고, 이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이는 복지나 의료서비스, 치유행위를 의미할 수 있다. 특히 병리적인 징후가 여성들에게도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 남성이 다른 계절보다 더 감성적이 되거나 위축되는 점은 있을 수 있겠다. 무엇보다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남녀 공히 인간의 결핍과 부족을 체감하게 하는 계절이다. 외로움을 느끼는 감정은 대표적인 심리증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그리는 로맨스의 계절이며 멜로 영화의 시즌이다. 가을은 사귐을 통해 새로운 탄생을 준비해야 하는 기간이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가을이라 싱숭생숭한데 ‘가을 타는 남편’까지 둔 여인의 마음은 어떨까요?”(<매일신문>, 2007년, 10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