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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의 문화비빔밥] 섹슈얼리티 픽션, 화려한 테크닉의 환상과 멘토링 역시 신기루일 뿐
출판계에서 연애상담은 롱~셀러 아이템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사회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연애고민 상담이 시답지 않은 책에라도 있으니 그나마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애타게 붙잡고 늘어져도 책에는 한계가 있으니 이를 파악한 방송이 매개해주는 것이 안성맞춤일 법 했다. 특히 라디오 프로그램은 이런 연애고민 상담의 오랜 아성(牙城)이었다. 그러나 라디오 프로그램의 연애상담에 남아있는 자신이 혐오스러워질 때가 얼마 안 되어 찾아온다. 시각적 비주얼의 배제성 때문이 아니라 그 담론 자체가 곧 유치해지고 권태로워진다. 뭔가 현실적인 구체적인 욕망을 담아 낼 수는 없는가. 미디어 매개로는 찾을 수 없는 것임에도 이를 자처하는 이들이 나선다.
역시 종편은 성(性)으로 성(城)을 쌓는다. 그 성에는 마녀가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마녀는 섹시한 팜므파탈이다. JTBC '마녀 사냥'은 네 명의 남자들이 나누는 섹드립을 연애이야기 토크쇼로 포맷 삼고 있다고 말한다. 그 네 명은 사실 '마녀'를 사냥한다며 '미녀'를 욕망한다. 그런데 미스터리하게도 남성들이 마녀를 사냥하는 컨셉인 듯싶은데, 여성들이 많이 본다고 한다. 마녀를 사냥하는 이야기기 궁금한 것인지, 제작진은 엄마와 딸이 같이 보는 예능이라고 했다. 친구와 선후배가 보다 못해 모녀가 같이 보는 프로라니 뭔가 독보적인 콘텐츠가 있는 듯싶다.
여성들이 정말 연애 이야기에 관심이 많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연애이야기가 아니라 성 관계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있다. 이 프로의 컨셉 가운데 하나인 '그린 라이트'가 이를 상징하며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사연과 경험담을 바탕으로 삼는다니 '사랑과 전쟁'이 '사랑과 섹스'가 되었다. 아니 '인터코스 스토리'가 메인 요리이니 '섹스와 전쟁'이 될 듯싶다. 섹스를 못해 굶어죽은 귀신들이 들러붙어 있는 듯 그 에피소드와 경험을 털어내야 하니 말이다. 여성들이 이런 콘텐츠에 목말라 있었나 싶다. 정말 은밀한 섹스이야기를 즐기는가. 여성판 '노모쇼(No More show)는 아니지 않은가.
분명한 것은 '마녀 사냥'은 하나의 '환타지 월드'를 구축하려 한다는 점이다. '환타지 월드' 구축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남녀의 섹스가 최고의 극락으로 두 사람을 인도한다는 상상력을 작동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를 관전하는 뭇 중생들은 그 경지에 못간 불쌍한 결핍된 이들이 된다. 출연자들은 해탈의 경지에서 중생을 굽어본다. 그들은 고승들이다. 깨달음을 얻는 선사들이 대처승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현실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 없는 성 관계의 세계, 관념의 극락세계를 구성해 낸다. 그들이 말하는 경험과 주장의 퍼즐들을 다 맞춘다고 해도 결코 원하는 욕망의 충족은 구현되지 못한다. 진실의 공개가 아니라 허상의 섹슈얼리티 픽션 차원의 구성이다.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는 할 수도 없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상상적 자기위안물이다. 그러니 정말 그 경지에 오른 이들이 있다면 '마녀 사냥'은 정말 유치한 프로겠다. 더구나 즉물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스킬과 테크닉이 난무한다. 그들이 나누는 수많은 사실과 정보 그리고 경험을 마스터한다면 지극한 즐거움이 넘쳐 나는 행복한 삶이 펼쳐질 것 같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낚는 이들은 바로 인터코스에 대한 환상이 있는 이들이 된다. 이 프로만 보고 있으면 수많은 남성이나 여성과 자유롭게 인터코스 할 수 있는 프리섹스 월드가 존재하는 듯싶다. 그렇게 언제나 '정보비대칭'(asymmetric information)은 장사가 되는 것인가. 이를 위해 애처로운 고군분투가 있어야 한다.
이런 환상의 소비를 위해 남자 네 명은 자신의 성적 경험담을 털어놓을수록 호응을 받는다. 마치 많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진 것처럼 보여야 그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는 틀에 처음부터 갇혀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들은 성적인 경험이 많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렇게 보여야 한다. 다급하면 다른 사람의 사례나 그것도 안 되면 상상적 나래를 펼쳐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그들의 발언이 결국 마녀도 제대로 잡지 못할 오합지졸들임을 알게 한다. 결국 이 프로의 목적은 '마녀사냥'이 아님이 드러난다. 중세 마녀가 만들어진 희생양이었듯이 마녀는 애초부터 이 프로그램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네 명의 성관계 에피소드를 대하며 '노는 모습'이다. 그들은 마녀가 없는 성에 스스로 갇혀서 가상의 마녀들에게서 관전을 당하고 있다. 정말 마녀가 나타나면 제대로 기를 못 필 캐릭터들일 뿐인데, 서로 난 체 해야 한다. 수컷의 허세는 어김없다. 세상의 여자와 관계를 모두 아는 듯이 구는 모습이 재미있고 귀엽다. 진짜 나쁜 남자들이 나타나 마녀와 대적한 이야기를 털면 쪽도 안서는 인물들이 사냥꾼을 자처하고 있으니 웃음이 나온다.
이 프로를 통해 얻는 것은 연애 이야기도 아니고, 사랑의 지혜도 아니다. 오로지 소비하는 것은 뭔가 강력한 쾌락을 줄 것 같은 성적 기술과 테크닉에 대한 환타지다. 기술과 테크닉을 사용해야할 가상의 인물-남성, 여성에 대한 성적 시도가 홍수 같이 터지지만 그 인물은 현실에 전혀 없기 때문에 멘토링은 모두 신기루일 뿐이다. 그런 미디어 콘텐츠에 매몰되어 있는 한 현실에는 여전히 꿀 같은 강물은 없고 건조한 사막이다. 다른 매체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금기의 비방(秘方)을 무지한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지만, 경전의 귀한 말씀을 추종해보아도 주위를 둘러보라 여전히 현실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진정한 고수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섹드립에 낚이는 시간에 네 앞 사람의 눈을 보고 말을 들어보라."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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