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MBC 드라마 <신돈>에서 기황후(김혜리)는 요부의 이미지로 TV화면에 등장했다. 원나라 사서(史書)에는 기황후가 아름답고 똑똑하고 총명했다고 했으나 드라마 <신돈>에서 기황후는 아름다움을 넘어 치명적인 유혹으로 남성들을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에 다름이 아니었다. 성적인 매력을 통해 남자를 지배하는 요녀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기황후는 이런 이미지가 실제모습이었을까. 악녀의 재해석 20세기 후반 들어서면서 문화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세계 역사에서 남자들을 휘어잡았던 여성들이 사실은 미모가 아니라 다른 능력 때문에 남성들의 각광을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클레오파트라나 양귀비가 이에 해당했다. 학자들이 보기에 이런 여성들은 절대미색이 아니라 보통의 미모보다 약간 나을 뿐이며, 총명해서 판단과 분석 전략을 잘 세우거나 기예, 성격 때문에 남성들이 항상 옆에 두고 싶어 했다고 본다. 더구나 얼굴만 예쁜 여성들은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진이도 절대 미색이기보다는 다른 재능이 많았기 때문에 사대부 남성들의 선호를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6년 드라마 <황진이>는 요부 황진이를 예술인 황진이로 탈바꿈 시켜 상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아 즉 황진이의 자아의 부각이었다. 이는 드라마의 원작 <나, 황진이>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나'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꿈과 사랑의 성취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홍석중의 <황진이>가 사회적 의식을 강조하거나 송혜교 주연의 영화 <황진이>처럼 고결하고 지조 있는 여성으로 그리지 않는다. 다만 송혜교의 황진이는 요부의 이미지에서 자기 신념의 존재로 담백하게 그려지니 드라마 <황진이>처럼 화려한 볼거리는 없어도 충분히 이미지의 쇄신을 낳은 것만은 분명하다. 종합예능인으로 자아 실현하는 성공스토리가 덜하기 때문이다. 전경린의 소설 <황진이>도 타자에 따라 좌우되는 피동적인 캐릭터에서 자기 스스로 세계관을 형성하며 삶을 능동적으로 열어가는 캐릭터로 만든 바가 있다. 예술적 역량을 자아실현화 시키는 주체적인 존재로 등장한 이런 황진이 캐릭터는 2013년 김태희가 맡았던 장옥정의 캐릭터에도 영향을 주었다. 악녀가 불과했던 장희빈이 패션 디자이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2006년 드라마 <황진이>가 각광을 받을 때 같은 해 <신돈>의 기황후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처음부터 전략적인 요부이며 고려 정치를 망친 존재로 부각되었을 뿐이었다. 2006년 황진이였던 하지원은 2013년 기황후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바뀐 인식 속에서 기황후는 그려져야 한다. | ![](http://images.mediatoday.co.kr/news/photo/201311/112871_120788_1552.JPG) | |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 ⓒMBC | |
그러나 방송도 전에 드라마 기황후는 논쟁에 휘말렸고 이에 대한 논란은 결국 노이즈를 일으켜 홍보 역할을 톡톡하게 해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가 팩션인지, 픽션인지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 역사왜곡 논쟁은 다른 국면을 맞기 때문이다. 시대적인 맥락으로 보았을 때 픽션이 아니라 팩션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 같은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연 팩션인가 흔히 이 드라마를 팩션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지 의문스럽다. 이는 많은 매체 기사에서 흔히 범하는 오류이기도 하다. 팩션을 풀이할 때 사실(Fact)에 픽션(Fiction)을 가미한 영화나 드라마 소설이라고 한다. 이러한 도식이라면 사실에 바탕을 둔 작품은 모두 팩션에 해당한다. 이런 맥락이라면 역사 소설은 팩션이 된다. 거꾸로 역사적 소재를 다룬 작품은 팩션이 아닌 작품이 없게 된다. 이 같은 팩션 개념에 대해 2004년 김성곤 교수는 팩션의 기원을 1960년대 등장한 저널리즘 소설로 봤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사건과 사실을 추적해가는 기자들의 내러티브 중심 소설 양식이 팩션 장르라는 것이다. 대개 이런 작품에는 기자나 사건 관계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이면의 진실을 드러내며 작품의 주제의식을 부각하기위해 추리기법을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사실보다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허구적인 설정과 에피소드를 가미하게 된다. 하지만 대개 우리나라에서는 팩션이 현대극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작품에서 유난히 많이 등장했다. 이 때문에 역사 드라마나 영화는 모두 팩션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팩션의 대중적 흥행을 크게 일으킨 작품은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이 소설은 중세 수도원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나가는 수사들의 죽음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시대적 나아가 사회적 진실을 드러내준다. 이는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에서도 비슷하게 재연된다. 금등지사를 둘러싼 음모와 암투는 추리기법을 통해 조선 시대의 모순을 건드리고 있으며, 아직도 정조 시대의 드라마 컨셉은 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성균관 스캔들>이라는 로맨스 사극에도 등장한다. 가장 팩션을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이다. 다빈치 코드의 추적을 통해 중세사회의 왜곡과 진실을 밝혀내는데 역시 추리기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스릴러의 분위기를 많이 내포한다. 무엇보다 기독교에 숨겨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세계관을 역사적 기록들을 현란하게 오가며 전복적으로 보여준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을 쓴 작가 이정명은 팩션의 기본은 사실을 기본으로 추리 기법을 사용한 픽션구성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원칙을 가장 잘 실현한 것이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이기도 하다. 한글창제과정의 비밀을 나름 당시의 정치사회상과 연결하여 흥미롭게 부각한다. 그러나 사실인지는 알 수 없고 그러했을 것이라는 개연적인 진실성으로 소구한다. 왜 팩션인가 우리는 사극을 팩션이라고 통칭하지만, 사실 팩션 다운 작품은 거의 없다. 대부분 퓨전 사극이거나 정극에 머문다. 드라마 <대장금>과 <왕의 남자>는 팩션이 아니다. 정극의 기본적인 특성은 바로 역사적인 사실에 충실한 것이다. 이러한 드라마 유형은 이제 KBS 대하드라마밖에 없다. 팩션이 사실에 바탕을 둔 픽션 드라마라고 하면 대하드라마도 팩션에 포함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팩션이라는 개념이 왜 부각이 된 것일까. 텔레비젼 드라마 팩션이 새삼 부각된 것은 장르문학이나 영화가 드라마에 결합되면서부터다. 특히, 인터넷과 연동이 되면서 증폭효과를 누리기에 추리적 진실의 재구성을 특징으로 하는 팩션이 중요해진 것이다. 이런 현상에는 전문가 중심의 문화 권력이 아니라 수용자 중심의 대중문화 권력의 강화와 맞물려 있다. 추리기법이 사용되는 이유는 바로 시청자, 수용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팩션의 부각은 단순 사실에 연연해하거나 고증에 치우쳤던 사극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논리적으로나 방법론 차원에서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역사적 사실은 불완전 하며, 기록으로 남은 것도 승자의 관점이기 때문에 엄밀한 역사 고증은 이미 모순을 배태하고 승자의 역사를 콘텐츠에서 반복하고 마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당대의 맥락적 진실의 재구성이나 현대적 관점을 통한 시대적인 재해석이다. | ![](http://images.mediatoday.co.kr/news/photo/201311/112871_120789_167.JPG) | |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 ⓒMBC | |
드라마 <기황후>는 팩션(Faction)이 아니라 픽션(Fiction)이다. 기황후라는 캐릭터와 인물들을 차용한 점이 더 강하다. 기획제작사가 한국 사람들은 성공 스토리를 좋아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기황후를 지나칠 리 없을 것이다. 본격 방송 이전부터 이 드라마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심리적 연원을 보니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놀란 가슴 기황후 보고 놀란 셈이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경우에는 전투 장면 등을 찍느라 개고생 한 덕만(선덕여왕) 역의 이요원보다 미실 역의 고현정을 더 인기가 높아 사실상 선덕여왕 효과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드라마 <대왕의 꿈>과 같이 역사적인 한계가 분명한 특정적인 세력의 미화에 머물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미실에 열광했다는 점이다. 비록 욕망으로 파멸은 했지만 악녀의 입을 통해 세계의 진실들이 더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미실은 실제 인물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조작된 문헌으로 규정되고 있는 현전 <화랑세기>에만 나온다. 결국 역사적 사실이냐 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적 감수성과 맥락 차원의 진실이다. 기황후는 성공스토리가 아닌 진실을 재구성해야 한다 역사 왜곡을 말하려면 무엇보다 이 작품이 정극을 지향해야 한다. 아니 팩션이라면 추리기법을 통해 기황후가 역사적 기록에서 부정적으로 등장해야만 했던 이유들을 가상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일단 기록들을 보면, 기황후는 고려 공녀 출신으로 원나라 황후가 되었지만, 원 나라의 힘을 빌려 고려의 정치에 강하게 간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철 등 기씨 집안의 고려 내 전횡을 뒷받침하고, 고려 통치기관이었던 정동행성으로 고려를 지배하고 나중에는 고려 침입을 독려한 것으로 역사 기록에 남아 있다. 이러한 측면은 반원 자주 세력의 리더였던 공민왕과 대비되고는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콘텐츠에서 그녀는 악녀로 그려져 있으며, 이런 기황후를 MBC 드라마에서 긍정적인 성공 인물로 그려진다는 소식에 역사 왜곡 논란이 일어났던 셈이다. 여기에서 따져봐야 할 것은 기황후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고려사절요)등 조선시대에 기록된 역사서 밖에는 없다는 점이다. 미루어 짐작해본다면, 조선 사대부들이 공녀 출신에 원의 황후가 되어 고려 정치에 영향을 미친 기황후를 좋게 기록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여성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혐오하는 가부장적인 사회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점은 조선시대 장옥정이 매우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졌던 이유와 같다. 황진이가 주로 요부 이미지로 형상화된 맥락이기도 하며 이것은 조선말 명성황후를 묘사하던 방식과도 같다. | ![](http://images.mediatoday.co.kr/news/photo/201311/112871_120790_1620.JPG) | |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 ⓒMBC | |
기황후와 기철은 공민왕과 정치적 세력 다툼을 추구했던 정치 역학에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황후의 본심이 무엇이었는지 기록 속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만약 역사 인물의 재해석이라면 기황후가 왜 국내 정치에 개입했는지, 기철의 정치적 지배가 정말 전횡이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그에 따른 시대적 진실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점은 악녀 미실조차 대중적인 호응을 받는 이유를 생각하면 더욱 당연한 노릇이다. 하지만 드라마 <기황후>는 이러한 점 보다는 기황후가 어떻게 원나라 황후가 되어가는 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팩션 방식 차원의 구성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역사적 맥락에 맞으려면 악녀가 되어 갈수 밖에 없는 현실이거나 악녀가 아니었는데 어떤 국제 정세나 정치 역학으로 역사적 기록에 남아 있는지를 재구성해야 한다. 더 나아간다면 현재 남아 있는 기록들이 허구적인 것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작품으로 형상화해야 한다. 단순히 현직 대통령이 여성이기 때문에 시청률을 얻으려고 기황후를 성공한 인물로만 그리는 것은 역사적 왜곡보다도 더 심한 진실의 왜곡을 저지르는 일일 수도 있다. 거꾸로 무조건적인 안티는 노이즈 마케팅의 수단이 됨을 이번에서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