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무늬만 나쁜 ´나쁜 남자 신드롬´
2010.06.17 09:17
[김헌식 문화평론가]인간은 털이 하나도 없다. 엄혹한 자연환경에서 털이 하나도 없는 인간이 어떻게 생존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진화생물학자들은 이 털이 없는 것이 인간 생존과 진화의 중요한 기제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털이 적은 매끈한 피부는 진드기나 기생충 등이 없는 깨끗한 청결상태를 드러내 주는 상징이라고 한다.
다만 특정한 부위에 존재하는 털은 남성과 여성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기도 한다. 여성은 되도록 털이 없는 측면을 드러내는데, 그만큼 청결한 번식과 육아가 가능한 상태임을 드러낸다. 반면 최소한으로 남성의 수염이나 가슴의 털은 야성성이나 성적인 매력을 뜻하기도 했다.
남성성을 상징하는데 아직도 사용되는 것에서 알 수가 있다. 특히 대중문화콘텐츠에서 나쁜 남자들은 수염을 기르고 나타나고는 한다. 물론 할리데이비슨 족과 같이 마초주의의 극치는 아니어도 말이다.
나쁜 남자를 상징하는 흔적에는 얼굴의 상처를 들 수 있다. 영화 < 놈놈놈 > 에서 이병헌은 얼굴에 상처를 긋고 출연했다. 한 실험에 따르면 여성들은 얼굴에 난 상처는 역경을 겪어낸 강한 성격을 드러낸다고 했다. 이는 진화적으로 남성성의 매력으로 해석된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상처로 인한 고통을 감싸주고 싶은 모성성을 이끌어낸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질병으로 만들어진 얼굴의 흔적은 오히려 매력을 반감시킨다고 한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 < 나쁜 남자 > 의 남자 주인공 캐릭터를 형상화한 작품 때문에 초기 앵커링(닻) 효과에 단단히 걸려 버린 일이 있었다. 여성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문화계에서 여성관객의 외면을 받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낙인 효과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김기덕 감독이 정말 '나쁜 남자'를 그렸기 때문이다. 정말 나쁜 남자들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단순히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그 남자들을 사랑하는 형태가 반복된다. 이에 대한 거부감도 역시 진짜 나쁜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중문화콘텐츠에서 나쁜 남자들은 진짜 나쁜 남자들이 아니다. 나쁜 남자 코드는 겉으로는 거칠고 무례하고 막대하면서 여성에게 짓궂지만 안으로는 그렇지 않은 점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 < 나쁜 남자 > 에서 나쁜 남자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제목은 나쁜 남자인데 주인공이 진짜 나쁜 남자는 아니다. 드라마 < 베토벤 바이러스 > 의 '강마에' 정도가 되어 나쁜 남자의 반열에 오를 수가 있을 것이다. 나쁜 남자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정작 김남길은 나쁜 남자라는 지독스러운 점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겉으로는 거친 행동에 수염까지 달았으니 이미지는 갖추기는 했다. 또한 사실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상처입은 캐릭터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겠다.
나쁜 남자가 가지고 있는 철학은 '생존'의 문제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이나 진화생물학이라는 영역을 꺼내어 나쁜 남자의 이성적 매력을 언급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 하얀거탑 > 의 장준혁이나 < 베토벤 바이러스 > 의 강마에가 그렇다. 하지만 드라마 나쁜 남자에는 생존이 아니라 관념적 실존의 문제가 더 필사적이다. 김기덕의 < 나쁜 남자 > 는 생존이 아니라 이성에 대한 가학적 자기 만족에 치우졌기 때문에 수모를 겪어야 했다.
어쨌든 나쁜 남자는 영상속에서만 있어야 하는지 모른다. 나쁜 남자들은 결혼 상대자로 배제된다는 조사가 많다. 수렵의 원시시대가 아니라 디지털의 현대사회에서 여성들이 실제로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배우자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쁜 남자는 영상 속에서 멋으로만 존재하는 진화적 지체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다만 특정한 부위에 존재하는 털은 남성과 여성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기도 한다. 여성은 되도록 털이 없는 측면을 드러내는데, 그만큼 청결한 번식과 육아가 가능한 상태임을 드러낸다. 반면 최소한으로 남성의 수염이나 가슴의 털은 야성성이나 성적인 매력을 뜻하기도 했다.
남성성을 상징하는데 아직도 사용되는 것에서 알 수가 있다. 특히 대중문화콘텐츠에서 나쁜 남자들은 수염을 기르고 나타나고는 한다. 물론 할리데이비슨 족과 같이 마초주의의 극치는 아니어도 말이다.
나쁜 남자를 상징하는 흔적에는 얼굴의 상처를 들 수 있다. 영화 < 놈놈놈 > 에서 이병헌은 얼굴에 상처를 긋고 출연했다. 한 실험에 따르면 여성들은 얼굴에 난 상처는 역경을 겪어낸 강한 성격을 드러낸다고 했다. 이는 진화적으로 남성성의 매력으로 해석된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상처로 인한 고통을 감싸주고 싶은 모성성을 이끌어낸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질병으로 만들어진 얼굴의 흔적은 오히려 매력을 반감시킨다고 한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 < 나쁜 남자 > 의 남자 주인공 캐릭터를 형상화한 작품 때문에 초기 앵커링(닻) 효과에 단단히 걸려 버린 일이 있었다. 여성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문화계에서 여성관객의 외면을 받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낙인 효과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김기덕 감독이 정말 '나쁜 남자'를 그렸기 때문이다. 정말 나쁜 남자들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단순히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그 남자들을 사랑하는 형태가 반복된다. 이에 대한 거부감도 역시 진짜 나쁜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중문화콘텐츠에서 나쁜 남자들은 진짜 나쁜 남자들이 아니다. 나쁜 남자 코드는 겉으로는 거칠고 무례하고 막대하면서 여성에게 짓궂지만 안으로는 그렇지 않은 점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 < 나쁜 남자 > 에서 나쁜 남자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제목은 나쁜 남자인데 주인공이 진짜 나쁜 남자는 아니다. 드라마 < 베토벤 바이러스 > 의 '강마에' 정도가 되어 나쁜 남자의 반열에 오를 수가 있을 것이다. 나쁜 남자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정작 김남길은 나쁜 남자라는 지독스러운 점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겉으로는 거친 행동에 수염까지 달았으니 이미지는 갖추기는 했다. 또한 사실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상처입은 캐릭터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겠다.
나쁜 남자가 가지고 있는 철학은 '생존'의 문제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이나 진화생물학이라는 영역을 꺼내어 나쁜 남자의 이성적 매력을 언급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 하얀거탑 > 의 장준혁이나 < 베토벤 바이러스 > 의 강마에가 그렇다. 하지만 드라마 나쁜 남자에는 생존이 아니라 관념적 실존의 문제가 더 필사적이다. 김기덕의 < 나쁜 남자 > 는 생존이 아니라 이성에 대한 가학적 자기 만족에 치우졌기 때문에 수모를 겪어야 했다.
어쨌든 나쁜 남자는 영상속에서만 있어야 하는지 모른다. 나쁜 남자들은 결혼 상대자로 배제된다는 조사가 많다. 수렵의 원시시대가 아니라 디지털의 현대사회에서 여성들이 실제로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배우자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쁜 남자는 영상 속에서 멋으로만 존재하는 진화적 지체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