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드라마 <동이>는 장인정신 이어갈까
2010.04.09 10:10
[김헌식 문화평론가]대중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 난 이후에 거장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 욕망때문에 그동안 이루어놓은 업적도 챙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거장(巨匠)은 거대한 장인 아니 위대한 장인을 말한다. 사전적으로는 일정한 분야에서 차별화되는 재능과 능력 업적으로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장인은 오랜 세월 동안 한 분야에서 심혈을 기울여 작품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사람을 말한다.
임권택 감독이 처음부터 스스로 거장이 되고 싶어한 것은 아니다. 그는 처음에 예술감독이 아니라 상업 영화감독이라고 평가되는 것이 더 타당했다. 하지만 상업예술이라고 해도 대중과 끊임없이 호흡하다보니 어느새 대중과의 친화성 속에서 예술미학을 구가할 수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한국적 특색을 지닌 영화를 연출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감독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만약 임권택 감독이 유럽 영화인들이 좋아할만한 내용들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투영시켰다면 해외영화제에서 수상을 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실제로 해외 영화제를 의식하는 순간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 순수하게 반영되었던 한국인의 대중적 미학이 사라졌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도 흥행이 안 되고, 해외에서도 수상에 실패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큰 영화보다는 작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거장 임권택의 반열에 맞다는 제언도 나오게 되었다.
임권택 감독은 전통적인 정서가 들어간 영화를 한국적 대중미학으로 삼는 감독이 되었고, 안방극장에서는 이병훈 피디가 한국적 대중미학을 자신의 창작 코드로 삼아왔다. 적어도 텔레비전 사극에서 이병훈 피디를 제외하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는 사극을 전문으로 만들어왔으니 사극 장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 연출자라하면 자신의 능력을 더 떨쳐 보이기 위해 다양한 장르를 연출하기 쉽다.
오히려 두려워하기도 한다. 사극에만 함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특화된 전문분야를 갖는 것이 더 낫다. 우리들 대부분은 천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천재라는 과욕이 아니어도 한 분야에 함몰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아니 그러한 평가에 연연해하는 것이 한국의 특화된 문화콘텐츠나 예술장르의 발전을 지체시켜왔다.
드라마 < 동이 > 는 숙빈 최씨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숙빈 최씨는 공노비의 신분에서 숙종의 후궁이 되고 이후에 영조의 생모가 된다. 이른바 < 대장금 > , < 서동요 > , < 이산-정조 > 에 이어 다시 이병훈 표 사극은 성공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계층의 고착화와 고용불안의 문제가 심각해지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신분상의 성공스토리가 대중적 코드라고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초반부에 드라마 < 동이 > 가 시청률에서 눈에 띄지 않은 것은 '어려움' 때문이다. 그것은 무겁고 딱딱한 이야기 전개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천민 결사인 '검계' 이야기와 정치 음모론이 얽히면서 딱딱한 정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자칫 이러한 구도는 일반 시청자에게 정치사극의 구도를 암시하게 해 기대감을 낮게 하고 몰입감을 떨어뜨릴 소지가 다분했다.
이러한 점은 장악원과 음악을 통해서 꿈을 이루어가는 동이의 모습을 기대한 시청자의 기대감에서도 이반하는 것이었다. 사실 < 이산-정조 > 의 악몽도 살아나는 모양새였다. 도화서와 여성주인공의 꿈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공이 결국 왕의 후궁이 되는 결말 구조라면, 너무 퇴행적으로만 보이고 현대적인 해석이 결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대장금 > 의 세계적 성공 요인 가운데에는 일상성의 매개물이 있었다. 그 매개물에 건강과 사랑, 삶의 행복 그리고 자아실현과 사회적 성공을 모두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매개물이 음식(의학)이다. 음식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많이 관심을 갖고 있는 매개물이었다. 이 때문에 장금이라는 인물을 잘 알지 못했어도 크게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정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숙빈 최씨도 여러사극을 통해서 대중적 인지도를 넓혀 왔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숙빈 최씨라는 이름을 갖추고, 신분에 맞고 유아적 코드에 충실한 '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요한 것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매개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산-정조 > 에서는 그림이었고, 드라마 < 동이 > 에서는 음악이다. 초반부의 내용은 단순히 오빠가 장악원에 근무한 그 사실 하나만 있고 중요 주인공이 꿈꾸는 성공 스토리의 구조와는 관련이 없어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음악이 얼마나 그 매개물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 이산-정조 > 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통해서 거장의 반열에 올라갈 태세로 고급 문화예술을 지향하며 대중적 미학에서 멀어질 우려도 없지 않아 있다.
다만, 그것이 비록 대중적인 호응을 크게 가질만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한국문화의 매개물을 사극에 적극적으로 투영하고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장인 정신의 행보와 같을 것이다. 그러한 작업은 시청률에 일희일비하는 한국방송 시스템에서 보기 드문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것이 대중성의 미학속에서 컨텐츠 장인의 생존법이겠다. 인기 영합주의에서 철새의 정치행보를 보이는 이들이 눈여겨보아야할 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중적 선호에 따라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나 드라마 피디나 마찬가지이지만, 나름의 원칙과 신조는 필요하니 말이다.
임권택 감독이 처음부터 스스로 거장이 되고 싶어한 것은 아니다. 그는 처음에 예술감독이 아니라 상업 영화감독이라고 평가되는 것이 더 타당했다. 하지만 상업예술이라고 해도 대중과 끊임없이 호흡하다보니 어느새 대중과의 친화성 속에서 예술미학을 구가할 수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한국적 특색을 지닌 영화를 연출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감독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만약 임권택 감독이 유럽 영화인들이 좋아할만한 내용들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투영시켰다면 해외영화제에서 수상을 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실제로 해외 영화제를 의식하는 순간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 순수하게 반영되었던 한국인의 대중적 미학이 사라졌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도 흥행이 안 되고, 해외에서도 수상에 실패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큰 영화보다는 작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거장 임권택의 반열에 맞다는 제언도 나오게 되었다.
임권택 감독은 전통적인 정서가 들어간 영화를 한국적 대중미학으로 삼는 감독이 되었고, 안방극장에서는 이병훈 피디가 한국적 대중미학을 자신의 창작 코드로 삼아왔다. 적어도 텔레비전 사극에서 이병훈 피디를 제외하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는 사극을 전문으로 만들어왔으니 사극 장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 연출자라하면 자신의 능력을 더 떨쳐 보이기 위해 다양한 장르를 연출하기 쉽다.
오히려 두려워하기도 한다. 사극에만 함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특화된 전문분야를 갖는 것이 더 낫다. 우리들 대부분은 천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천재라는 과욕이 아니어도 한 분야에 함몰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아니 그러한 평가에 연연해하는 것이 한국의 특화된 문화콘텐츠나 예술장르의 발전을 지체시켜왔다.
드라마 < 동이 > 는 숙빈 최씨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숙빈 최씨는 공노비의 신분에서 숙종의 후궁이 되고 이후에 영조의 생모가 된다. 이른바 < 대장금 > , < 서동요 > , < 이산-정조 > 에 이어 다시 이병훈 표 사극은 성공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계층의 고착화와 고용불안의 문제가 심각해지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신분상의 성공스토리가 대중적 코드라고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초반부에 드라마 < 동이 > 가 시청률에서 눈에 띄지 않은 것은 '어려움' 때문이다. 그것은 무겁고 딱딱한 이야기 전개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천민 결사인 '검계' 이야기와 정치 음모론이 얽히면서 딱딱한 정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자칫 이러한 구도는 일반 시청자에게 정치사극의 구도를 암시하게 해 기대감을 낮게 하고 몰입감을 떨어뜨릴 소지가 다분했다.
이러한 점은 장악원과 음악을 통해서 꿈을 이루어가는 동이의 모습을 기대한 시청자의 기대감에서도 이반하는 것이었다. 사실 < 이산-정조 > 의 악몽도 살아나는 모양새였다. 도화서와 여성주인공의 꿈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공이 결국 왕의 후궁이 되는 결말 구조라면, 너무 퇴행적으로만 보이고 현대적인 해석이 결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대장금 > 의 세계적 성공 요인 가운데에는 일상성의 매개물이 있었다. 그 매개물에 건강과 사랑, 삶의 행복 그리고 자아실현과 사회적 성공을 모두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매개물이 음식(의학)이다. 음식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많이 관심을 갖고 있는 매개물이었다. 이 때문에 장금이라는 인물을 잘 알지 못했어도 크게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정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숙빈 최씨도 여러사극을 통해서 대중적 인지도를 넓혀 왔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숙빈 최씨라는 이름을 갖추고, 신분에 맞고 유아적 코드에 충실한 '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요한 것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매개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산-정조 > 에서는 그림이었고, 드라마 < 동이 > 에서는 음악이다. 초반부의 내용은 단순히 오빠가 장악원에 근무한 그 사실 하나만 있고 중요 주인공이 꿈꾸는 성공 스토리의 구조와는 관련이 없어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음악이 얼마나 그 매개물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 이산-정조 > 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통해서 거장의 반열에 올라갈 태세로 고급 문화예술을 지향하며 대중적 미학에서 멀어질 우려도 없지 않아 있다.
다만, 그것이 비록 대중적인 호응을 크게 가질만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한국문화의 매개물을 사극에 적극적으로 투영하고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장인 정신의 행보와 같을 것이다. 그러한 작업은 시청률에 일희일비하는 한국방송 시스템에서 보기 드문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것이 대중성의 미학속에서 컨텐츠 장인의 생존법이겠다. 인기 영합주의에서 철새의 정치행보를 보이는 이들이 눈여겨보아야할 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중적 선호에 따라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나 드라마 피디나 마찬가지이지만, 나름의 원칙과 신조는 필요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