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왜 장희빈은 최숙빈의 멘토가 되었는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7:58

<김헌식 칼럼>왜 장희빈은 최숙빈의 멘토가 되었는가

2010.05.04 08:55

 




[김헌식 문화평론가]드라마 < 대장금 > 과 < 동이 > 의 공통점은 가족애다. 그 가운데 가족 구성원의 누군가가 지고 있는 누명을 벗기는 일이다. 동이는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궁궐에 들어간다. 장금이도 억울한 어머니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궁궐에 들어갔다. 장금이는 어머니를 위해, 동이는 아버지를 위해 궁궐에 들어간 셈이다. 

장금이는 어머니를 위해 음식을 배워야 했다. 그것이 좌절되면서 의학을 배웠다. 동이는 장금이의 환생일까. 어린 시절에 이미 동이는 상당한 의학적 지식을 이미 습득했고 여기에 검시에 관한 상당한 의학적 정보도 지니고 있다. 그녀가 궁궐에 들어가서 배운 것은 악기를 다루는 법인데, 그 악기는 아버지의 누명을 푸는 것과는 관련이 거의 없다. 

즉 장금이가 음식을 반드시 배워 수랏간 최고 상궁이 꼭 되어야 했던 것과는 다르다. 아버지의 누명을 풀기 위해 궁녀를 찾아야 했고 동이의 목적은 이 때문에 장악원 여비가 되는 것이었다. 애초에 음악에 대한 관심과는 관계가 없는 입궐이었다. 동이의 성공적인 입신기는 그녀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이점이 처음부터 의도적이고 목적이 확고했던 장금이와 달랐다. 

그런데 장금이는 어머니의 누명을 벗길 수 있었지만, 동이는 아버지의 누명을 완벽하게 벗길 수 있을 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동이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일종의 혁명조직인 검계의 수장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허구적인 설정에 따른다면 숙종이 검계의 수장 딸을 후궁으로 삼았으니 이것은 반저항 세력의 포용정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렇다면 신분적 포용에 하나 더 추가된 선정(善政)이 되는 셈이겠다. 하지만 반역의 수장 딸을 숙빈으로 삼고,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은 참으로 왕도정치가 감내하기 힘든 모순이다. 따라서 향후 드라마의 최대 과제가 된다. 너무 정치적인 사안이라 대중 몰입도가 떨어질 만하다. 이는 이미 초반부가 여실히 증명된 바 있다. 

< 대장금 > 과 < 동이 > 의 대중적 몰입에서 차이는 단계적 학습의 성취와 이를 통한 업적의 달성이 주는 대리충족에서 비롯한다. 동이가 감찰부에 기용된 것은 음악이 아니라 바로 뛰어난 업적 때문이었다. 이는 음악적 재능과는 관계없이 수사 능력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 대목에서 < 대장금 > 과 큰 차이점이 일어난다. 

드라마 < 대장금 > 에서 중요한 것은 학습의 묘미였다. 장금이는 음식과 의학에 대해서 차츰 학습 성취를 얻게 되고, 이는 마치 시청자가 스스로가 성취감을 맛보는 것과 같았다. 학습은 만인이 원하는 성취대상이기 때문에 이를 이루어가는 주인공은 마치 시청자가 그 성취를 이루어가는 듯한 대리적 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동이는 이러한 쾌감을 선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동이가 배울 것은 음악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찰 업무자체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미 웬만한 수사관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학습을 통한 업적의 성취가 아니라 이미 갖추어진 능력을 통한 업적의 달성이다. 이는 단계적 성취가 주는 즐거움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장금이보다 다른 점은 동이가 자칫 정치적 전략의 한가운데 속으로 들어가는 점이다. 이는 희빈 장씨가 동이를 발탁하는 대목에서 어쩌면 내포하고 있는 극적 장치에서 거꾸로 알 수 있다. 장씨는 동이-숙빈 최씨만이 아니라 그녀가 임신한 아이-영조까지도 죽이려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드라마 < 동이 > 는 장씨가 동이를 적극적으로 키워주는 인물로 설정했다. 

이러한 설정이야말로 더 극적인 장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자신을 발탁하고 지원해준 인물이 자신의 원수의 하나이고 자신과 대척점에 있을 수밖에 없는 서사 구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역사적 사실을 잘못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은 설득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처음부터 단선적인 대립구도가 명확했던 < 대장금 > 과는 차별화된다. 이분법적 선악구도라는 고질병을 탈피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어쨌든 드라마 < 동이 > 에서 중요한 것은 < 대장금 > 과 달리 음악이나 의학과 같은 생활 미시사가 아니라 결국 권력의 싸움에서 누가 더 뛰어난 지략으로 승리하는가다. 그렇다면 드라마 < 이산 > 에 이어 < 동이 > 에서도 < 대장금 > 과 같은 일상 미시사의 적극적 반영으로 대중적 몰입을 획기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그림도 그랬거니와 음악도 하나의 그럴듯한 장식에 머물러 버린다. 

물론 이러한 장르는 음식이나 의학과는 달리 고차원적이라 비현실적이니 대중드라마에서 불리한 조건을 이미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치열한 두뇌 싸움이 어떻게 펼쳐질 지가 관건이고 이는 단순히 약자가 성공해가는 석세스스토리라는 단순한 코드로는 한계에 이를 수 있음을 내포한다. 이미 그러한 작품들은 빈번하게 노출되었고 그것에만 그치면 대중적 식상함이 성찬을 이룰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