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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아르 영화가 흥행 참패한 이유 몇 가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7. 7. 10:07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여자 친구인 슈퍼모델 이리나샤크가 지난 달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 하람이 납치한 여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토플레스 시위를 펼치고 있다.(사진 = 이리나샤크 페이스북)


지난 5월,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여자 친구인 슈퍼모델 이리나샤크는 토플리스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 거리에 나선 이유는 시위를 벌이기 위해서였다. 난데없이 이리나샤크가 토플리스 시위를 벌인 이유는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 하람이 납치한 여학생들의 석방을 주장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여성이 상반신을 드러내는 시위는 대중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토플리스’(topless)다. 우크라이나에서 결성된 급진적 여성주의 그룹 '페멘(FEMEN)'은 토플리스 시위를 통해 여권신장을 구가하는 단체로 이름이 높다. 하지만 특정 목적이 아니라 여성의 노출 자체를 주장하기 위해 활용된다.

무엇보다 토플리스 시위는 말 그대로 여성의 상반신 노출을 주장하는데 활용된다.

최근 할리우드 배우 브루스 윌리스와 데미 무어 사이의 딸 스카우트 윌리스는 길거리 토플리스 시위에 나섰다. 스카우트 윌리스는 여성 누드를 금지하는 인스타그램(Instagram)의 정책에 항의했다. 무엇보다 인스타그램에는 유방암 환자의 가슴조차 게재할 수 없게 돼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스 영국 선발대회에 출전할 예정이었던 22세 조지아 에덴은 유방암 캠페인용으로 쓰일 상반신 탈의 사진을 찍었다가 출전금지 처분을 받았다.

토플리스 관점에서 보면 이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이었다. 토플리스 옹호자들 사이에서는 여성의 가슴노출금지는 남성과 비교했을 때, 차별이라는 주장이 이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남성은 상반신을 노출해도 되지만 여성은 안 된다는 불문율을 더 문제 삼는다. 더구나 노출을 성폭행의 원인으로 삼아 여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현실도 분노의 대상이었다.

최근, 브라질에서는 국책연구소에서 발표한 내용을 겨냥해 집중적인 토플리스 시위가 벌어졌다. 국책연구소 응용경제연구소(IPEA)의 설문조사 발표내용 때문이었다. 그 내용 가운데 핵심은 ‘여성의 노출이 성폭행을 부른다’는 것이었다. 발표 결과에 반발한 브라질 여성들이 온라인상에서 상반신을 드러낸 채 ‘나는 강간당할 이유가 없다’는 글귀를 몸에 적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이는 브라질 전역으로 확산됐다. 노출을 했다고 강간의 이유가 된다면 노출이 합법화된다면 이는 거꾸로 강간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논리를 펴는 것이다. 즉 만약 공공연하게 가슴을 드러낸 채 다닌다면, 노출을 했다는 이유로 강간의 이유가 되는 일이 없는 셈이다. 실제로 뉴욕시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상반신 탈의를 규제하지 않는다. 뉴욕의 경우라면, 노출이 심하다는 이유로 강간이 피해여성에게 전가되는 일은 없을 듯하다.

어쨌든 매년 세계적으로 여성들의 상반신 노출을 권리로 주장하는 ‘고 토플리스 데이’(Go Topless Day)가 열리고 있으며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도 이 같은 운동이 정착될 것인가. 물론 한국에서도 여성의 상반신 노출이 문제없어진다면, 노출이 강간의 원인이라는 구실은 설자리를 잃을 것이다.

영화시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노출에 의존하는 영화들에게 말이다.

영화 ‘인간중독’과 ‘황제를 위하여’는 한국 팬들에게 상당한 실망감을 안겨줬다. ‘인간중독’은 이색적인 멜로 영화로, ‘황제를 위하여’는 정통 느와르 장르를 표방했지만 모두 노출과 베드신을 앞에 내세웠다. 차라리 영화 ‘우는 남자’처럼 느와르에 승부를 걸었다면 덜하리라 싶다.

영화 ‘인간중독’은 송승헌과 임지연의 베드신으로 화제를 모았고, 이어 개봉한 ‘황제를 위하여’도 이민기와 이태임의 베드신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파격적인 노출 장면에 너무 야하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이러한 점들은 영화 홍보를 위해 관객들의 눈을 어지럽히기도 했다.

그런데 그 파격적이고 야한 기준이 뭘까? 엉덩이만 나오거나 복부만 나오면 이런 평가가 내려졌을까? 남성의 몸이 벗겨진다고 야할까? 무엇이 볼 게 있단 말인가. 기준은 여배우의 가슴이었다. 가슴이 노출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너무 야하다 파격적인 노출신이라는 평가가 갈리는 것이다. 할애 시간은 물론 가슴의 각도나 노출 정도가 중요해질 것이다. 물론 여배우들의 가슴이기 때문이다.

만약 토플리스가 공공연한 사회라면 영화에 대해서 이런 평가가 내려지기 힘들 것이다. 더 이상 가슴이 섹슈얼리티의 대상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영화의 홍보내용에 이런 상투적인 문구들이 사라질지 모르겠다. 또한 관객들이 우롱을 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겠다.

영화 ‘인간중독’과 ‘황제를 위하여’는 여러 가지 면에서 관객들을 실망시킨 영화이다. 이렇게 크게 어필하는 점이 없을수록 여배우들의 노출은 마케팅의 대상이 된다. 정확하게는 여배우들의 가슴노출이 상품의 대상이 된다.

토플리스 운동이 성공적으로 정착한다고 하면 값싼 흥행몰이를 위해 여성들의 가슴 노출을 가지고 관객들을 우롱하는 일들이 없어질까.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 여성과 스타 여성들의 가치는 다르게 상품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팝 문화 마케터들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존엄차원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신비적인 마케팅 차원에서 가치를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3년 할리우드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토플리스 사진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3만5000파운드(약 6000만원)에 낙찰됐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빈약한 스토리와 주제의식, 플롯을 여성의 가슴에 의존해 돌파하는 것은 한국 영화의 발전에도 그리 좋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토플리스 운동은 긍정적일지 모르겠다. 김태희 같은 배우가 아니라 신인배우들의 가슴을 적어도 상품화하는 것을 억제하는데, 토플리스 효과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페멘(Femen)은 말했다. 자본 때문에 여성의 신체적 자유가 박탈당했다고.

이는 평범한 여성들만이 아니라 여배우들도 신체적 자유가 박탈당했기는 마찬가지다. 좋은 평가를 받든 그렇지 않은 세간의 몸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은 몸의 자유만이 아니라 영혼의 자유마저 스스로 박탈해야 말이다.

그 대가는 누구에게나 돌아갈까. 현실에서는 정말 수많은 여성들 중에 매우 극소수가 그 대가를 받고 나머지는 부자유의 고통 속에 희생된다.

글/김헌식 문화콘텐츠학 박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