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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코드가 전세계적으로 통한 배경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7. 7. 10:11


지난 10일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유튜브 조회수 20억뷰를 돌파한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의 기회비용은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20채, 미국의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 3척 등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았다.

또한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은 4분12초 분량이고 이를 20억뷰에 대입해 계산하면 약 1억4000만시간 또는 1만6000년이다. 두바이의 세계 최고층 건물인 ‘부르즈 칼리파’ 6개, 영국의 고대 유적물 ‘스톤헨지’ 약 5개, 이집트 피라미드 4개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보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이렇게 건물 짓는 시간이나 규모와 견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세계 사람들이 ‘강남스타일’을 본 것은 재미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만 본 것이 아니라 반복시청한 점도 기회비용의 생산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교훈이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강남스타일’을 반복 플레이 하지 않았다.

즐거움과 생산성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회비용이라는 대체의 개념으로 볼 수 없다. 즉, 즐거움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야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문화가 가진 생산유발의 기능론이라고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는 음악과 스토리, 시각적 효과를 복합적으로 전하기 때문에 이런 생산유발효과를 낳는다. 만약 이런 시간을 뺏는다면 생산 효과는 저하된다.

싸이의 음악이나 뮤직비디오를 대하는 일반 유저들의 평가 기준은 ‘재미’다. 재미는 사회적 의식이나 메시지와 거리를 둘 수도 있다. 하지만 권위를 강조하는 평가자일수록 이런 사회적 의식이나 메시지를 좀 더 찾고자 할 것이다. 싸이에게서 이런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번지수를 잘 못 찾게 되는 셈이다.

문화란 끊임없이 바람직한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요구를 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기왕이면 좀 더 바람직한 점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자칫 싸이가 가진 긍정적인 코드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 긍정적인 코드는 재미와 유희이다. 재미와 유희가 앞서고, 그 다음에 다른 메시지와 의식이다.

한국에서 싸이의 음악은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지는 못했다. 일단 싸이 코드에 맞아야 하지만 그의 음악은 B급 코드가 강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싸이 스타일에 대해서 확고하지 못하다. 어떻게 보면 싸이의 코드는 한국의 전통적인 코드라기보다는 서양적인 코드를 가지고 있다.

싸이는 점잖지 못하고, 멋있지도 않으며 애수 어린 감정을 통해 마음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보통 우리 안에 가라앉아 있는 욕망들을 들쑤시고 그것을 수면 위로 떠올려낸다. 그래서 불편할 수 있다.

싸이의 악동과 같이 짓궂은 행위들은 전복적이고 도발적이다. 그것은 그의 팝 스타일이 가지고 있는 실험적이면서 낯선 것들이다. 악동뮤지션 남매는 진짜 악동이 아니라 그 이미지만 차용하고 있지만, 싸이는 그 자체가 악동이다.

그러나 악동은 질서를 파괴하지 않으면, 그 체제를 위협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슬쩍슬쩍 드러내면서 조롱하고 이를 당한 사람들의 행태를 보며 즐김을 누린다. 싸이의 악동은 조롱당할 법한 이들에게는 불편함을 주지만, 그런 캐릭터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나 감정이입 할 수 있는 이용자들에게는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절대 이후의 싸이의 음악들이 넘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강남스타일은 오랜 동안의 경험과 노하우가 한 번에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남스타일’을 넘어서는 음악이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싸이가 선택한 방식은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순차적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싸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 환경에서는 음원과 이에 따른 뮤직 비디오의 발표만으로도 ‘스노우 볼 효과’(snow ball effect)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발표되는 곡들이 ‘강남스타일’을 넘지 못하지만, 싸이의 음악을 찾는 이들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마다 싸이는 많은 매체들이 반드시 다뤄야 하는 뮤지션이 된다. 확실하게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이 당분간 유지될 수밖에 없다.

싸이가 대차고 과감한 면이 세계를 무대로 삼기에 유리한 면이 있기에 세계무대에 어울리는 점이 있다. 한국이나 아시아에서는 이렇게 싸이처럼 선보이는 동양의 남자가수 쇼맨십은 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싸이가 혼자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더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세계, 개별성과 보편성을 같이 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한 점이다.

싸이의 음악과 뮤직 비디오는 대단한 게 아니며 대단할 수도 없다. 그것을 찾는 사람들의 목적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잘 다루지 않는 이면의 현상들을 집어내어 유희적으로 다뤄주면, 그의 역할은 이에 족하다. 그럴수록 열광의 마니아 코드는 반복적 리플레이의 절대 기회비용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것이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오직 한국에서는 아니 세계에서는 싸이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