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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그룹 2NE1의 박봄은 무분별한 연예인 특종보도 행위들이 낳을 반인권적인 행태의 희생양일까(사진 = 한경DB) |
1998년 스페인의 한 신문이 변호사 곤살레스가 빚에 못이겨 자신의 집을 공매에 내놓은 내용을 웹에 실었다. 이 기사 이후에 구글에서 곤살레스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파산에 관한 정보가 가장 우선 떠올랐다. 물론 그는 파산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그는 오래전에 빚을 다 갚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갈수록 글로벌 검색 사이트인 구글의 영향력이 커졌고, 그에 대한 현실 오도의 정보는 그에 관한 편견을 낳았다. 곤살레스는 구글을 상대로 해당 기사를 삭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마침내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것이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한 판결이었다.
잊혀질 권리에 따를 때, 사실과 다른 내용이 특정 개인의 명예와 존엄을 해칠 때 그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삭제 요구할 수 있다. 물론 개인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까지 삭제 요구할 수 있는지 여전히 과제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범법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면 이런 유형의 정보들은 자기결정권에 따라 삭제되거나 노출이 제한돼야 할 것이다.
이는 언론사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의 자기정보통제권과 언론의 알권리가 충돌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사의 알권리가 공공 사안에 그쳐야 하며 해당 당사자의 인권을 고려할 필요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많은 언론 매체들은 박봄이 "4년 전 마약류의 일종인 암페타민을 밀반입하려다가 인천공항 세관에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특혜를 집중 제기했다. 마약류 위반에 입건 유예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마약관리법 위반 같은 공공의 사안에 대해서 언론은 보도해야 한다. 그러나 보도 내용의 팩트는 사실일지라도 본질이 사실과 달랐다. 포인트는 왜 입건유예됐는가 하는 점이다.
박봄은 어머니와 할머니를 통해 문제의 암페타민을 우울증 치료용으로 들여왔는데 그것이 국내에서는 마약류에 속했다. 일부 주장에 견주면, 치료용으로 들여왔기 때문에 문제가 안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명분은 개인이 쉽게 누구라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암페타민이 미국에서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고, 국내에 들여온 암페타민이 아주 소량만 사용된 것은 마약 용도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게 검찰의 수사 결과였다. 미국 병원의 처방전과 치료 기록이 분명했다.
이는 사적으로 약물을 사용한 것과 다른 문제였다. 많은 경우 입건이 되는 것은 자의적인 사적 용도의 반입이다. 또한 본격적인 마약류인 메스암페타민으로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본인이 마약으로 사용을 하지 않아도 타인을 위한 마약으로 유통시킬 의도도 없었음을 의미한다고 검찰은 판단했던 것이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60조에 따르면, 마약을 제조할 목적으로 그 원료가 되는 물질을 제조·수입·수출하거나, 제조·수입·수출할 목적으로 소지·소유한 자는 처벌을 받는다. 여기에서 마약을 제조할 목적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수사의 초점이 여기에 맞춰지는 이유다.
또한 제61조는 마약의 원료가 되는 물질을 매매, 매매의 알선, 수수한 자 또는 매매, 매매의 알선, 수수할 목적으로 소지·소유한 자에 대해서도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비록 자신이 직접 마약류를 사용하지 않아도 타인에게 그러한 수단을 제공한 사람도 처벌의 대상이 됨은 물론이다.
제62조는 마약을 사용하거나 금지된 마약사용 행위를 하기 위한 장소·시설·장비·자금 또는 운반수단을 타인에게 제공한 자도 처벌의 대상임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서 검찰은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마약으로 복용하지 않았으며, 마약을 제조할 목적도 없고 그것을 타인에게 제공할 의사도 없었다.
여기에서는 검찰의 법 해석 논리를 옹호 하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연예인 특종 보도 행위들이 낳을 반인권적인 행태에 경계를 말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보도 행태들이 있은 연후에 박봄을 검색하면 마약 밀반입이라는 내용의 기사만 우선적으로 뜰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미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 과도한 정보 왜곡이 특정 개인에게 '라벨링 효과' 즉 '낙인효과'를 일으킨 셈이 된다.
따라서 이렇게 부당한 정보라면 잊혀질 권리의 대상이 될 것이다. 특히 연예인들의 경우 이미지를 기반으로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자신의 준재론 차원의 토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이다. 박봄의 경우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일순간에 광범위하게 퍼졌고, 이에 대한 자료들에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박봄을 모르던 사람들까지도 마약을 연상하게 되었다. 앞으로 자료 검색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연예인들은 자신의 이미지 훼손과 유지 여부 때문에 특정 사안에 대해서 논란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많다. 많은 매체들은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서 연예인에 대한 의혹을 무작위로 제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 알권리 차원의 접근이라는 명분이 작용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개인의 이미지의 타격은 그 명분에 묻힌다. 만약 보도의 내용 가운데 문제가 있다면 사후 구제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지만 인터넷 시대에는 낡은 관념이 되고 있다.
문제는 정보의 바다, 디지털 공간에서 그 알권리를 통해 정작 알권리의 대상이 아님이 밝혀졌을 때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무방비 무대책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견지할 수 있는 방안이 잊혀질 권리인 셈이다.
많은 경우 사실과 다르거나 이미 오래전에 있었던 사안이 불거지는 경우 연예인들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이 아닌 내용들이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혀도 속수무책이었다. 방송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속내를 비쳐야 했다. 그래서 여전히 방송 예능 프로그램은 그들의 사건 사고에 관한 항변장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잊혀져야 할 정보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방송의 힘은 갈수록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도 없는 연예저널리즘에서 이번 박봄 보도 논란은 무분별하게 연예인에 관한 정보를 보도하는 것이 잊혀질 권리를 침해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잊혀질 권리는 연예인들과 같이 유명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곤살레스의 사례와 같이 일반 시민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따라서 연예인들에 관한 불리한 내용의 처리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김헌식 문화콘텐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