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기획-복고 전성시대>복고, 오래된 것들의 신나는 변주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9:46

<기획-복고 전성시대>복고, 오래된 것들의 신나는 변주



2007년 영화관. 70년대 스턴트맨 복장을 한 커트 러셀이 복고풍 자동차를 타고 추격전을 한다. 영화스타일도 과거 B급 영화의 스타일이다. 같은 날 저녁, 한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옛날 영화의 장면들을 각색해 코믹하게 재연해 보인다. 프로그램이 끝나니 젊은 모델들이 50~60년대 헤어와 복장을 하고 춤을 추는 광고가 나온다. 채널을 돌리자 패션 케이블 채널에서는 ‘복고풍’, ‘복고 콘셉트’라는 말이 수시로 등장한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자꾸만 빨라지는데, 여전히 오래된 것들을 향해 있는 우리들의 욕망이란 무엇 때문일까.

글_신비인ㆍ황민규 대학생기자(epicnoir@empal.com) <사진제공_에뛰드하우스>

◆ 복고란 과거의 답습이 아니라 재창조

‘복고’의 사전적 의미는 ‘과거의 체제나 사상, 전통 따위로 되돌아감 혹은 파괴된 것을 다시 본디의 상태로 고침’이다. 그러니 문화에서 복고라 하면 흔히 예전에 사용되던 문화 코드들을 현재 문화 콘텐츠에 채택해 재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단순한 과거의 재연은 복고가 아니라고 말한다. “과거의 문화코드를 그대로 재연하는 것은 퇴행이고 촌스러움이죠. 진정한 복고란 과거의 것들을 현재에 맞게 재생산 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과거 문화를 통해 현대 문화를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 이러한 의미에서 복고란 오히려 현대를 앞서나가는 문화코드라 정의할 수 있다. 지금의 복고는 과거와 미래 문화의 접점에 위치해 둘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최근 화장품 CF를 복고풍으로 연출한 김민수 CF 감독은 “예를 들면, 엄마가 처녀 때 입었던 묵은 옷을 그대로 꺼내 입는 것이 아니라, 손질하고 수선해서 내 몸과 시대에 맞춘 옷, 그것이 복고”라고 설명한다.

◆ 복고문화 전성시대

복고의 붐은 언제부터일까? 전문가들은 복고 유행의 시작을 1998년 IMF 직후로 추정한다. 당시 극심한 경제상황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과거를 추억하고자 하는 심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를 먼저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업들이다. 기업들의 복고 전략은 비용 효율 면에서도 당시 어려운 기업 환경과 맞아 떨어졌다. 복고를 내세운 광고와 상품들이 줄을 이어 출시되었고, 추억을 회상시키는 상품들은 큰 인기를 얻었다. 많은 광고에서 국민체조 음악이나 ‘희망의 나라’ 등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을 BGM으로 채택했다. 당시 전원주 씨가 만화영화 ‘짱가 주제가’에 맞춰 달리던 국제전화 광고는 크게 히트를 하기도 했다.

복고 열풍은 광고뿐만 아니라 문화 콘텐츠 전반에 걸쳐 퍼져나갔다. 진공관 엠프가 유행했고, 7080 추억의 콘서트 등도 생겨났다. 영화에서는 <내 마음의 풍금>, <박하사탕>, <춘향뎐> 등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황토 쌀독, 옹기 가마솥, 양은 냄비 같은 복고 생활품이 유행하는가 하면, 어릴 적 먹던 불량식품들이 다시 인기를 얻고, 화로구이와 보쌈 등의 전통음식들과 막걸리와 파전을 주 메뉴로 하는 전통 주점들이 대중화 되었다. 인테리어 소품으로는 한지와 대나무 등을 이용한 한국 전통 소품 및 서양 앤티크 소품이 큰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복고 열풍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상품 생산자나 문화 생산자가 제공하는 복고문화를 수동적으로 즐기던 수용자 태도에서 벗어나 스스로 복고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적극적 수용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과거 자료를 서로 공유하고 즐길 수 있게 되면서 ‘디지로그’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디지로그’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말한다. 즉, 디지털 시대의 복고문화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삶이 편리해지긴 했지만, 그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담긴 표현인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액션을 보여준 최근의 영화 <다이하드4.0>와 <본 얼티메이텀>의 흥행도 ‘디지로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 오래된 것이 가지는 매력

경제난과 무관하게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복고의 흐름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수용자 측면에서는, 회귀하고자 하는 인간의 영원한 본성인 ‘노스탤지어(nostalgia)’가 현대로 갈수록 더 짙어지고 있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추억과 향수가 일종의 정신적 안정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속도 경쟁 시대에서 과거를 반추한다는 것이 잠시 쉬어감의 의미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수용자들에게 오래된 것을 함께 나누는 일은 ‘공감과 공유’의 즐거움으로 확산된다. 과거 같은 세대, 같은 문화를 공유했던 사람들이 공통의 기억을 확인하는 작업 자체가 소속감을 제공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일부러 촌스러움을 즐기는 ‘키치문화’의 영향도 크다. 19세기 독일로부터 출발한 키치(kitsch)는 현재의 상식에서 벗어난 촌스러움과 저속함을 지닌 하위문화를 예술로 인정받게 만들었다. 이것은 몇 년 전 우리 문화의 한 키워드였던 ‘엽기문화’와도 이어진다. 추억을 갖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기성세대들의 복고문화가 키치적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부재도 반복되는 복고 문화의 원인이다. 김헌식 씨는 “새 상품과 새 아이디어를 사람들에게 인지시키려면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한다”며 “기존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지된 것을 재연한 상품은 쉽고 효율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흡수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신세대 아이돌 가수가 리메이크 곡을 냈을 때, (그 가수의 창작곡이 출시되었을 때와는 달리) 현재 그 가수를 좋아하는 어린 세대뿐만 아니라, 원곡을 잘 알고 좋아했던 기성세대까지 관심을 갖게 만들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문화 생산자인 미디어들은 미디어 수용자 층의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복고를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 뉴 미디어의 영향으로 젊은 수용자 층이 줄어들자 주 수용자 층인 기성세대에 초점을 맞춰 문화 콘텐츠를 제작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 것이다. 최근 방송에서 사극과 복고 콘셉트의 프로그램이 증가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 새로움을 위한 또 다른 자원

복고는 과거 문화를 반복함으로써 문화의 다양성과 창의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하지만 김헌식 씨는 이에 대해 “복고는 전통을 되짚고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이야기했다. 또 “과거의 현대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작업으로 과거의 것을 계승,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과거의 것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서도 계속 유용하다는 점이 전통에 대한 자신감을 부여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적 전통은 비단 우리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흐름과 궤적을 함께 해 온 모든 집합체들을 아우르는 말로 이해된다. 70~80년대를 유행했던 포크음악과 청바지 등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지만, 우리의 역사적 배경과 어울려 우리만의 의미를 가지는 새로운 문화로서의 역할을 했다. 이러한 문화들을 복고로 되짚고 현대적 의미를 찾아 나가는 작업은 우리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복고는 현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의 하나로 작용한다. 김민수 CF감독은 “복고는 현대를 앞서가는 세련된 스타일”이라고 규정한다. “광고의 타깃인 젊은 여성들이 광고 속에서 50~60년대의 향수를 느끼는 걸까요? 그들은 복고 자체를 익숙한 것으로 보거나 과거의 향수를 느끼는 대상으로 보기보다 단지 여러 스타일 중에 하나로 인식합니다. 즉, 아이콘화 된 것이죠.” 이러한 시각에서 현대의 복고는 ‘과거의 것’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해 ‘새로운’, ‘신선한’, ‘최첨단의’ 등과 같은 미래적 이미지를 다시 입는다. 김 감독은 “여러 대륙, 여러 시대의 과거를 복고의 재료로 삼을 수 있는데, 유독 자주 등장하는 특정 아이템이 있다는 것은 그것 속에 시대를 관통하는 호흡이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복고란 옛것을 되돌리는 작업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문화 코드를 뽑아내는 작업이라는 뜻이다.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복고란 어쩌면 허구의 개념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이 나온다.

트렌드의 순환 고리 속에서 먼 훗날, 과거의 것과 미래의 것은 돌고 돌아 서로 구분이 없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아이콘화 된 문화들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과거’라는 틀에 고정된 복고에 대한 기존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전통의 재해석을 통한 미래 문화의 창조, 즉 과거와 미래의 접점에서 그것을 연결시킬 수 있는 ‘복고’를 떠올려야만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 진정한 복고를 향하여

미래학자들은 미래 산업의 화두로 ‘재의미화’(repackage, re-signification)를 제시한다. 동일한 상품이라도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상품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옛날 버스 운전사들이 쓰던 잠자리 선글라스와 비가 쓰는 잠자리 선글라스는 그 상징의 의미가 전혀 다르고, 그래서 그것이 잘 팔리는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과거의 문화 역시 끊임없이 현대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고 재창조 될 것이다. 이는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의 발달은 과거 기억과 문화들을 서로 소통할 기회가 넓어짐을 의미한다.

복고가 이미 문화 생산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복고에 대한 개념 및 자료의 체계적인 정리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민수 감독은 “한국의 문화도 역사가 깊어지기 시작해 복고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면서 “점점 범위가 커지고 다양해지는 복고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사용하기 위해서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헌식 씨 역시 “현대 생활사 박물관의 건립 등을 이용해 복고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고문화를 미래의 문화로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관심으로 복고 문화를 수집하는 차원을 넘어,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우리나라의 문화 자료를 정리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헤럴드경제 자매지 캠퍼스헤럴드(www.camhe.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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