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Trend]부드러운 터프가이 격투기 선수 추성훈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9:47

 | 기사입력 2008-11-14 10:23 | 최종수정 2008-11-21 10:41  
[동아일보]

《“꺅∼ 추성훈이야!” 6일 낮 경기 안산시 상록구 안산문화원. 삐죽삐죽한 헤어스타일의 ‘고슴도치’ 같은 그가 등장했다. 그를 발견한 아줌마들은 김장을 담그다 말고 고무장갑을 벗어던진 채 열광했다. 재일교포 4세, 전 부산시청 소속 유도 선수, 그리고 귀화한 이종격투기(K-1) 선수 아키야마 요시히로. 수많은 수식어를 뒤로한 채 그는 지금 ‘욘사마’ 부럽지 않은 33세의 연예스타로 우뚝 서있다.》

연예스타로 우뚝선 격투기선수 추성훈

‘날것’ 같은 구릿빛 피부와 터프함, 이와 대조적으로 장난기 가득한 소년 이미지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추성훈은 이날 자신이 광고 모델로 출연한 김치냉장고 ‘딤채’의 김장 담그기 행사에 참가해 빨간색 앞치마를 두르고 양념을 버무렸다.

추성훈은 올해 초 MBC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 코너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패션쇼 모델, 가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광고계에서도 주목받았다. 맥주, 김치냉장고, 음료, 자동차, 화장품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7개월 만에 10편 남짓한 광고에 출연하며 ‘2008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김태희, 이영애 등 CF 퀸들을 물리치고 올해의 모델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7년 전 국내 유도계의 텃세를 탓하며 일본에 귀화한 그는 격투기 선수를 넘어 어느덧 ‘문화 아이콘’이 됐다. 그를 입고, 먹고, 마시는 시대. 그의 주먹은 이제 무시무시한 무기가 아니다.

아줌마들의 환호 속에서 그는 지금의 인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국내 일간지로서는 처음으로 그의 속내를 취재할 수 있었다. “반갑다”며 건넨 그의 손은 돌덩어리 같았다.

“인기요? 솔직히 실감 못하겠어요. 한국에 살거나 명동 같은 데를 돌아다녔다면 느낄 수 있었겠죠. 하지만 한국에서 활동이 끝나면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서요…. 그냥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 정도?”

―운동과 연예활동 중 어느 쪽이 어려운가요.

“글쎄요. 광고나 연예활동도 결국 ‘싸움’이라 생각해요. 다만 격투기는 상대가 한 명이지만 이건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과 싸운다는 느낌이에요. 처음에는 연예활동이 쉬운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 번에 10시간씩 몰아서 하더라고요. 운동은 조금씩 쉴 수도 있는데…. 진짜 힘들어요.”

―연예인 추성훈으로서 추구하는 이미지가 있나요.

“뭐랄까…. 한국과 일본의 차이이기도 한데, 일본은 ‘고독한 파이터’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최대한 날카로운 모습을 연출하라고 해요. 반면 한국은 친근하고 편안한 제 본모습을 많이 강조하더라고요. 전 사실 고독하지 않거든요. 커피도 혼자서 못 마셔요.”

터프함 속의 부드러움. 이 대조적인 것들을 절묘하게 한몸에 담아내면서 추성훈은 떴다. ‘추성훈 효과’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가 모델로 나온 기아자동차의 ‘로체 이노베이션’은 6월부터 판매를 시작해 지금까지 2만5000대 가까이 팔렸다. 기대 이상의 성과다. 빙그레 ‘바나나 우유’ 역시 4월 추성훈을 모델로 기용한 뒤 매출액이 10% 증가했다. 그가 부른 ‘하나의 사랑’ 디지털 싱글은 3월 21일 공개되자마자 ‘싸이월드’에서 하루 만에 5000건이나 팔리며 현재까지 6만8000건의 다운로드 기록을 세웠다.

추성훈의 무엇이 우리를 열광케 했을까.

광고대행사 이노션의 이병국 차장은 “최근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스토리 텔링’ 모델이 인기”라며 “아픔을 딛고 일어선 추성훈의 과거사가 광고를 통해 하나의 캐릭터가 됐다”고 말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디자인은 심플하지만 기능은 복잡한 상품을 좋아하는 것처럼 겉모습은 거칠고 날것에 가깝지만 감성은 부드러운 그의 양면성에 끌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추성훈이 30, 40대 여성 사이에서 최고의 ‘훈남’으로 꼽히는 데 대해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그에게는 여성이 선호하는 우직함과 순수함, 다시 말하자면 ‘돌쇠’ 이미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운동선수로는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한국을 떠났지만 문화적으로는 이런 벽을 뚫은 셈인데,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한국에 호적도 없는 나를 반겨주니 감사할 뿐이죠. 지금은 사람들과 친해지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예나 지금이나 전 유도가 최고예요. 한국에 유도 도장을 만들어 애들을 가르치는 게 제 목표예요. 지금의 활동이 언젠가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연예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본말(本末)이 전도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게다가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요. 당신은 늘 ‘정체성’과 싸우는 하이에나 같아요.

“다른 나라에서 활동한다면 혼란스럽겠지만 한국이잖아요. 전 항상 한국은 모국이고 일본은 내가 자란 곳이라 생각해요. 연예활동 하는 건 틈틈이 유도나 이종격투기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봐주세요. 어차피 24시간 운동할 순 없잖아요.”

―인기가 떨어지는 게 두렵지는 않나요.

“물론 떨어지면 싫겠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은 높으니까 좋아요. 중요한 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 뚝심이죠. 난 날 믿어요.”

서른 중반에 다시 한국을 찾은 파이터는 스스로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는 한국인 어머니의 역할도 컸다. 10년째 아들을 위해 사골국물을 끓이는 어머니는 스타가 된 아들에게 “기회가 있으면 한국에서 열심히 일해라”고 조언한다.

한때 한국을, 한국인을 미워했을 법한 그에게 물었다. 더 이상 슬프지 않은지. “무즈카시이네(어렵네요)”라며 고개를 숙인 그는 몇 분이 지나서야 입을 뗐다.

“음…. 그런 것 같아요. 시합에서 져도, 사람들이 뭐라 해도 ‘난 행복하다’라고 주문을 외거든요. 한국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기쁨이에요. 언젠간 남자답게 하와이 바닷가에서 20m짜리 파도를 타보고 싶어요. 그러다 죽을 수도 있지만 괜찮아요. 전 행복하니까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