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시사와 문화]‘R의 시대’ 모방과 복고풍이 범람하는 시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9:48

[시사와 문화]‘R의 시대’ 모방과 복고풍이 범람하는 시대

복고풍 드라마 <에덴의 동쪽>.
‘R의 공포’라는 단어가 세계를 휩싸고 있다고 했을 때, 이는 주로 경제불황에 대한 것이다. 그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는 이미 사회 문화적으로 배회하는 R의 유령에 잡혀 있는지 모른다.

영화 <라듸오데이즈>나 <원스어폰어타임> <모던보이> <고고 70>등은 과거로 회귀(regression)했다. 영화와 TV에서는 사극이 범람하고 현대극에도 <에덴의 동쪽> 같은 시대극이 제작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의 반복(repetition)이 압권인 <에덴의 동쪽>의 신파조 대사와 진부한 설정은 과거 향수를 자극하며 통속극의 전형성으로 시청률을 높여주었다. 드라마, 영화 그리고 가요는 리메이크(remake)에 빠진 지 오래다. 원더걸스가 레트로(Retro) 3부작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등 가요계는 복고풍 댄스 리듬과 패션이 넘친다. 인기 있는 라디오 음악 프로뿐 아니라 웬만한 프로에서는 최신 곡보다 과거 노래들이 더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불어닥친 불황으로 영화사, 기획사들도 감축(retrenchment)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경제불황에 대한 반응으로 3R, 즉 리폼(Reform), 리사이클링(Recycling), 리필(Refill)이 사회적으로 부각되는 가운데, 방송국에서는 다시금 예전의 인물이나 프로그램 포맷을 재활용, 재충전하고 있다. 위험을 기피하는 심리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켰다.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 차원에서 드라마의 편수를 대폭 줄이는가(reduction)하면 연기자의 출연료를 줄였다. 이는 보아줄 수 있지만, 비판적인 대안 프로그램들을 사실상 폐지(retire)시키는 모험을 벌였다. 방송의 공영성과 공공성을 생각하지 않은 행태다. 2002년 노벨상 수상자 카네만과 트버츠키의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에서는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위험 선호적이라고 했던가. 공영성과 공공성을 포기하니 더 위험 선호적이 되어 무모한 선택임을 잊었다.

R의 시대에 모든 것은 움츠러들고 있다. 문화는 더욱 치명적이다. 미래 지향보다 과거 지향이다. 창조성과 다양성 추구보다는 모방과 재연 그리고 재생 반복이 봇물이다. 새로운 것의 시도보다는 최대한 이미 검증된 것을 차용하는 데 더욱 치중한다. 젊은 세대는 위축되며 독립적이며 진보적인 작품에 대한 공공 지원은 치명적인 위협을 받는다. 문화는 지체(retard)된다.

한쪽에서는 이러한 위기를 역설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예컨대, 이번 참에 투기적 금융의 탐욕이 문화 판에서 빠져나갈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심리학자 셀리그만의 말대로 무기력은 긍정의 심리를 통해 극복한다. 그러한 태도로 불황의 시기에 경제의 부활(Resurrection)이 준비되듯이 문화의 암흑기에 문예 부흥(Renaissance)의 씨앗은 뿌려지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방송의 공영성이나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지원은 마지막 씨앗이다.

김헌식<방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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