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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이냐 정통이냐, 사극에 담긴 역사 접근법 감상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6. 1. 12. 00:07

얼마 전까지 사극은 등장인물이 단촐했다. 사극 ‘장사의 신-객주 2015’를 들어 설명하자면, 천봉삼(장혁), 길소개(유오성), 매월(김민정), 조소사(한채아) 등이 중심인물이고, 다른 등장인물들은 조연에 머물거나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사극 '장사의 신'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의 비중 또한 가볍지가 않다.

 

 

이렇게 달라진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기존의 단촐한 인물의 사극은 퓨전 사극 스타일이다. 인물을 단순하게 좁혀서 집중도를 높였다. 특히, 소재에서는 사랑과 성공에 초점을 맞추거나 아예 장르적인 측면 예컨대 추리나 액션, 환상 기법을 많이 부각시켰다. 이제는 웬만한 장르적 차별성으로는 통하지 않으니 뱀파이어나 초현실 공간의 설정까지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극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대개 사극은 흔히 익숙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데 갈수록 이런 퓨전사극은 이미 알고있는 상식적 역사에서 많이 벗어나버렸다. 그래도 ‘해를 품은 달’이나 ‘공주의 남자’의 남자들은 역사적 사실 이면의 픽션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주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런 드라마가 통했던 것은 개연성 있는 스토리에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퓨전사극은 주요 인물 구성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주인공을 잘못 설정하면 대중적인 주목을 받는데 실패하고 만다. 더구나 이러한 주인공들은 대개 젊은 배우들이 맡게 되는데 당연히 시청자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위험 부담이 존재한다. 이를 보완할수 있는 방법이 주조연에 관록있는 연기파 중노년 배우들을 포진시키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등장인물이 많아지고 서사의 폭과 길이가 늘어난다. 하지만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서 시청자들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극이 바로 '육룡이 나르샤'이다. 이방원(유아인), 분이(신세경), 이방지(변요한), 무휼(윤균상)과 같은 젊은 배우들 외에도 김명민, 천호진 등 다양한 중장년 배우들이 등장한다. 초인적이거나 환상적인 장면이나 공간적인 설정이 등장하기 때문에 퓨전사극의 맥락은 그대로 잇고 있다.

 

등장인물만 보면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정통사극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통사극의계보를 잇고 있는 것은 ‘장사의 신-객주 2015’다. 이 사극은 어떻게 보면 정통사극이라고 볼 수 없을 지 모른다. 정통 사극이라고 하면 대개 정치사극이어서 공간적 배경이 궁궐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왕권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사의 신-객주 2015’에는 왕이나 궁궐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로 시장을 중심으로 한 상인 권력가들이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정통사극이 권력관계의 상호적 관계를 중심에 둔다면 이 사극도 정통사극이다. 상업을 둘러싼 정치권력 게임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스토리 사극처럼 천봉삼이 장사로 성공하는 길을 압축적으로 보여줄만도 한데 사극 ‘상도’ 같은 방식의 히어로 스토리와도 거리가 있다. 즉 이병훈 방식의 사극형태와 거리가 있는 것이다.

 

‘장사의 신-객주 2015’가 기획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정통사극 ‘정도전’의 대중적 성공이 한몫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궁궐 사극이 아니라 민초사극을 하나 만든 것이 바로 ‘장사의 신-객주2015’이다. 과거 장길산이나 홍길동과 같이 혁명을 말할 수 없으니 뭇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상업 즉 돈벌이에 관한 내용을 사극에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 상업과 권력에 대한 내용은 내내 답답한 면이 있다. 사극의 배경이 결국 조선시대이기 때문이다. 상업이 누대이래 가장 억압된 나라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서사의 제한성은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청나라나 일본과 교역을 하는 스케일이 좀 넓은 공간적 배경이나 다양한 소재, 에피소드가 기대될만한것이 못된다. 서울의 육의점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극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확실하게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확보하고 있는 것은 동의하고 있는상황이다. 텔레비전 사극은 그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을 해왔다. 특히 올드미디어라는 인식을 벗어나기 위해 트렌디하고 젊은 감각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런면에서 인기웹툰을 적극 드라마로 만든 ‘밤을 걷는 선비’를 그 사례로 꼽을 수가 있다. 어느정도 검증이 된 작품을 드라마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좋은 결과를 기대할만 했다.

 

다만 인터넷, 모바일에서 인기를 끈 콘텐츠라고 해도 텔레비전 특히 지상파가 지니고 있는 매체적 속성을 간과하는 것은 부정적인 결과를 얼마든지 낳을 수가 있다. 뱀파이어 코드가 새로운 세대에게는 신문화적 취향이면서 공유의 연대감을 낳을 수 있지만 기성 세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당장에 문화적 취향이나 익숙한 기호가 이동하거나 변화해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 점차 변화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친숙할만한 절대시간과 접촉 기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일희일비 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드라마 ‘장영실’은 독특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정통사극을 표방하는 듯 하지만, 가 스토리 컨셉은 퓨전사극에 가깝기 때문이다. 퓨전 사극에서는 개인의 관심사와 그것을 통한 성공을 주로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석세스 드라마의 경향을 지닌다. 비록 나라와 정치라는 거창한 명분보다는 주로 전문분야나 생활 문화 차원의 소재가 등장하는 것이 많다. 예컨대 의학, 요리, 범죄 수사, 그림, 음악, 의상 등이 등장했던 이유이다. 드라마 ‘장영실’에서는 천문관측을 포함한 과학 발명에 관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애초에 영토수복이나 정치담론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며 어떻게 보면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가운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수 있는 자아 실현에 더 관심이 많은 현대적인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상상을 넘는 무공이나 초능력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나 역량이 더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정통사극에 가깝다. 장영실을 둘러싼 정치적 계파의 갈등과 알력 싸움은 여전하고, 다만, 과학기술에 관한 점에 집중한다. 당시의 역사적 사실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검증이나 근거 자료의 엄밀함이따라야 하기 때문에 역시 정통사극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퓨전사극이 인기냐 정통사극의 부활이냐라는 이분법적인 분석은 별로 신통치 않을 것이다. 드라마의 작법의 테크닉과 연출은 평준화되었다. 흥행공식도 이제 웬만큼 다 공유하고 있다. 결국 세계관의 문제이며 관점의 전환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식체계를 흔들면서 역사속 진실을 드러내는사극은 없어졌다. 팩션 사극에서 보인 희망은 사실 기반 사극이라는 정통사극의 아류로 회귀하여 버렸고 테크닉만 뛰어난 프로들의 향연은 시청자들은 인식적으로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마음 속 감동의 울림조차 테크닉으로 유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