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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연출된 군대 토크의 위험성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1. 19. 13:00


자화자찬 군대 토크, 방송에서 없애야 한다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전쟁을 상품화 하는 나라, 진짜 사나이는 존재하는가?
[0호] 2013년 07월 22일 (월)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media@mediatoday.co.kr
이번에 발생한 사설 해병대 캠프 익사 사고에서 고교생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아 희생이 컸다. 그런데 그들은 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을까? 캠프 측의 안전 불감증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주최 측에서 구명조끼의 중요성을 몰라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럼 예산을 아끼기 위해 구명조끼를 제대로 구비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구명조끼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어도 착용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교관이 무자격자이고, 그래서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그것은 비단 자격, 무자격자 그리고 개인의 선택과 판단의 개별성과 흠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왜 착용시키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병영 체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말이 병영이지 전쟁 나아가 전투 훈련 프로그램이다. 더구나 해병대 프로그램을 사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병대라는 브랜드를 내걸어야 장사가 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이 브랜드로 수많은 해병대 캠프가 열린다. 그렇다면 왜 병영 캠프, 해병대 체험 프로그램은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게 할까.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 그것은 그래야 진짜 사나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진짜 사나이란 용감한 병사, 진짜 군인다운 군인을 말한다. 군인은 어떠한 위험한 상황에서도 용감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훈련은 힘들고 고통스럽게 이뤄져야하고 이를 능히 극복하여야 용감한 군인이다. 그리고 사나이, 남자는 그런 것쯤은 능히 인내해야 한다.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진짜 사나이’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데이브 그로스먼과 로런 크리스텐슨은 전투(On combat)에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 4분의 1이 바지에 오줌을 싸고 8분의 1은 대변을 속옷에 묻혔다. 최전선에서 전투를 수행한 병사들의 50%가 소변을 25%가 대변을 보았다. 미국의 공식 보고서인 '아메리칸 솔저'에 담긴 내용이다. 더구나 정신장애에 걸린 이들이 사망한 병사보다 많았다. 약 50개 사단의 병력이 정신 장애인이 되었다.(On killing, 1985) 무엇보다 소총수의 85%는 총 한방 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
 
마셜 준장의 ‘Men Against Fire’(1946)에 따르면 총을 쏜 병사는 15-20%에 불과했다. 장동건, 오다기리 조 주연의 한국 영화 ‘My Way’에도 등장했던 노르망디 작전 당시 2%의 병사만이 아무런 외상없이 능동적인 공격 태도를 보였다. 즉 아무렇지도 않게 전쟁터를 누비는 이들은 오히려 이상한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예컨대 데이브 그로스먼과 로런 크리스텐슨은 혼자 적기 352대를 격추한 독일군 조종사 에리히 하르트만은 사이코 패스라고 했다. 영웅으로 불리는 람보와 코만도는 살인기계 내지 사이코 패스일 수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태(장동건)는 남과 북을 오가며 전쟁 영웅이 되었지만, 그는 한 마디로 미쳐 있었다. 자신이 지키려했던 동생도 미처 못 알아볼 정도로 기계적으로 사람을 살육하고 있었다. 지난 7월 13일, 영국 공영방송 BBC가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작전을 수행하다 숨진 영국군 장병보다 자살 장병 수가 더 많다고 보도했다. 결론은 전쟁에서 진짜 사나이, 용감한 병사 그리고 전쟁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허구의 이미지 이며 가상의 환타지이다.
 
이번 사태에서 심각한 것은 모든 것을 사설 업체의 문제로 한정하는 것이다. 정말 문제는 전쟁을 상품화 하는 행태들이며 이는 사설 업체만이 아니라 국방부의 정책에도 문제가 있다.
 
예컨대, 해병대가 브랜드 선점 효과를 가진 것은 일반 군인과 다른 진짜 군인이라는 치우친 생각 때문이다. 무자격자 교관이라도 해병대는 뭔가 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식에 배어 있는 편견 때문에 일어난다. 어린이라도 보병 캠프가 아니라 해병대 캠프에 가면 자랑스러워한다. 부모나 교사들조차 심하게 학생들을 캠프에서 대할지라도 용인하게 된다. 
 
해병대는 다른 곳에서 해병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그것은 상표등록을 통해서였다. 상표등록은 상업 활동의 상징이자 실체이다. 이는 해병대 자체가 아니라 전쟁 상품의 상표를 말한다. 다른 병사들을 저열하게 만들어야 의미가 있는 이 브랜드를 유지하고 그 안에 소속되는 자부심을 간접적으로라도 얻으려면, 구명조끼 따위를 착용하지 않아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파도가 좀 높기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정도는 헤쳐내야 치열한 인생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비약의 심리’가 난무한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 그런 행태는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키는데도 말이다. 그럼 해병대원은 어떤 이들일까. 영화 ‘풀 메탈 재킷’(Full Metal Jacket, 1987)에서는 해병대에서 필요한 병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병은 로봇을 원하지 않는다, 두려움 없는 킬러를 요구한다.”
 
이 정도는 이겨내야 인생 전투에서 살아남는다? ‘비약의 심리’는 역작용을 부른다
 
이러한 전투와 전쟁의 용인 현상은 단순히 병영 캠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쳐 이런 전쟁과 전투의 심리는 제도적, 관습적 기제로 구축되어 작동해 왔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말을 남자아이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자라며 이는 극기 훈련이나 병영 캠프가 창궐하는 이유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공간에서는 안전이 소홀하게 취급된다. 정말 그 공간의 상황을 잘 극복하면 성공적인 인생을 열까.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많은 전역 병사들은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갱단에서 활동 했다. 걸프전이나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용감한 병사들은 대거 사회부적응이나 정신장애에 시달렸다. 만약, 인생의 문제가 얼차려를 잘 받고 낙하나 유격 훈련을 잘 받는다고 해결된 다면 못할 일이 없다. 많은 문제들은 오히려 솔루션을 어떻게 찾아가는가, 관계성을 잘 풀어가는 가에 달렸다.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
 
<일밤>의 ‘진짜 사나이’의 경우에도 결국 전쟁의 속성을 간과하며, 특정한 이미지에 의존한다. 그것은 전우애와 담대함의 사나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병사들로 거대한 전쟁판을 위해 투입되는 전쟁 수행 물자이다. 총을 들고 포탄을 만지고 산을 뛰어야만 군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더구나 그런 병사가 많을수록 오히려 현대 전쟁은 실패한다. 군 조직은 매우 복잡 하고 전문화 되어 있음을 호도할 뿐이다. 더구나 이런 프로그램은 동료와 참여자들의 휴머니즘과 재미 요소를 부각하여 전쟁의 본질을 은폐하여 버린다. 대국민 홍보용 예능 프로그램이니 본질주의 속성에서 부정적인 점을 드러낼 리 없다. 이렇게 홍보가 될수록 그 담당자는 승진을 하게 된다. 육군과 해군, 공군 그리고 경찰청을 막론하고 또 하나의 전쟁이다. 국방부의 연예병사 제도가 없어졌으니 이제 경찰청으로 몰리게 생겼다. 
 
무엇보다 ‘진짜사나이’ 같은 방식의 방송에서는 군인이 단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며, 그에 부여된 역할에 충실한 그 관점만 보여주면 충분하고, 그들이 수행하게 될 전투, 전쟁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현대전의 시초인 1차 세계대전 당시 용감하게 싸운 병사들의 무용담은 많지만, 진지전 때문에 연대 병력 전체가 몰살당하는 일이 흔했다. 이는 대량살상무기의 현대전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진짜 사나이’ 멤버의 수백 수 천 배의 병사가 한꺼번에 죽는 것이 전쟁이다. 한 개 사단의 해병대가 몽땅 죽을 수도 있다.
 
출연자들은 어차피 방송 프로그램이 끝나면 되돌아오기 때문에 그들이 맞게 될 상황이 어렵거나 고통스러워도 오히려 찬사의 대상이 될 텐데 염려해야 할 것은 출연한 이들의 부상이다. 고교생들의 병영 프로그램 참여에는 구명조끼조차 없지만, 유명한 연예인들의 현장에는 좀 더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일반 병사들이 전쟁을 수행 할 때 조끼 타령을 할 때는 즉결 처분을 당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수 천 명의 남학생, 심지어 여성ㅡ10대 소녀 그리고 어머니들이 이런 전쟁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극기 훈련 나아가 아들을 위한 교육적인 동기부터 장차 직업 군인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소구한다. 이는 군 생활을 대단히 낭만화 추상화한다. 군 생활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 이를 자극 하는 말에 낚인 행태들이다. 모두 군인이란 육체적인 고통을 가학하여야 훌륭한 존재라는 편견에서 발생한다. 
 
군대 생활을 힘들게 했다는 자화자찬식의 방송 토크들은 일단 방송 미디어에서 없애야 한다. 고통을 강조하며 다른 이들의 군 생활을 폄하하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유형의 군복무라도 그것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다양성의 이해이면서 가학으로 청년들을 내모는 전쟁 상업화가 저지르는 무분별함의 살육에 대한 견제다. 
 
군대 생활에 대한 자화자찬식 토크, 방송에서 없애야 한다
 
본질을 담지 못하는 병영 프로그램이라는 방식 전쟁 수행 캠프는 사라져야 한다. 이는 방송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에서 전 국민이 보아야할 것은 휴머니즘을 통한 군대의 코믹과 유희가 아니다. 전쟁의 허구성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
 
1990년대 말, 만화가 탁영호는 전쟁놀이를 즐기고 전쟁 영웅을 숭배하는 청소년에게 전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한편의 만화로 일깨웠다. 그 고통은 자유의 박탈 그 자체였다.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수동적 상태, 반기계화의 상태는 결국 전쟁과 전쟁영웅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비록 만화 이야기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살펴봐야할 전쟁관련 콘텐츠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전쟁 체험이 아니라 평화학이 더 필요하고 전쟁이 아니라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이기는 방법의 탐구가 교육적이다. 정말 필요하다면, 안보에서는 첨단 테크놀로지 개발에 종사하는 이들이 더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다. 물리적 고통을 많이 가하거나 감내하는 이들이 최고의 군인은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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