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자신의 약혼녀 이네즈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오묘한 매력을 지닌 아드리아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결국 현실로 돌아와서는 파리의 앤티크 숍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과 교감을 하게 되면서 비 내리는 파리의 거리 속으로 사라져간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미국 문학이나 근현대미술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나 상식이 뒷받침되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또한 오프닝 시퀀스부터 우디 앨런이 대놓고 보여주는 프랑스와 파리의 유명 관광지들에 대해서도 일정 수준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감독이 안내하는 풍물기행을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요즘 국내외 대중문화계의 지배적 코드 중 하나인 타임 슬립(time slip)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감독은 1920년대와 2010년대는 물론 ‘벨 에포크’라 명명된 시대인 1890년대부터 1900년대 초까지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또 무엇을 갈구하며 살고 있는지, 그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환상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할리우드의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인 길은 진정한 소설가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데, 이미 30년 전에도 우디 앨런은 <젤릭>이라는 영화를 통해 탈근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코믹하게 다룬 바 있다.
<젤릭>은 흑인들과 있을 때는 흑인으로, 유태인들과 있을 때는 유태인으로 모습이 바뀌는 한 남자의 카멜레온적 정체성에 관한 영화다. 어쩌면 <미드나잇 인 파리>의 길은 시간을 거스르는 유명 작가, 화가, 감독과의 교제를 통해 본격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영화가 파리라는 도시와 그것이 담지하고 있는 도시성, 역사, 문화를 아주 노골적인 톤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배경음악으로 깔린 샹송과 함께 마치 기록영화처럼 프랑스의 관광 명소를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파리는 비올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계속 강조하는 엔딩 신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도시 영화’라는 외피를 두른 채 실은 파리의 가볼 만한 관광 명소와 프랑스의 문화예술에 대한 환상을 파는 한 편의 홍보 필름이라고 읽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유럽의 특정 도시와 관광산업을 연결시키는 노골적인 시도는 그의 최신작인 <투 로마 위드 러브>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업적 이니셔티브가 유럽에서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우디 앨런의 작품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놀랍다. 아니 그가 대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상업적이고 현실적인 요소들에 개의치 않고 초연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
한국 영화의 경우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거닐던 1920~30년대의 경성이나 식민지 조선을 다룬 일련의 영화들이 지난 몇 년 사이에 만들어지긴 했지만, 정작 현대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본격 도시 영화는 없었다. 뉴욕, 런던, 파리 등의 ‘전통적인’ 글로벌 시티 못지않게 혼종적이면서도 뜨거운 대중문화와 공연예술을 거침없이 생산해내고 소비하는 거대 도시 서울에 대한 영화가 기다려진다.
<김영찬 | 한국외대 교수·문화연구>
정말 시간여행을 소재라한 타임슬립 드라마들이 많았죠.
올 여름 김희선 씨의 브라운관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신의" 역시
타임슬립의 소재라는데요.
타입슬립은 1994년 일본의 대중 작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5분 후의 세계> 에서
처음 등장한 신조어로 말 그대로 시간에 미끄러지다 라는 뜻인데요.
하지만 우리가 익숙한 타임머신을 이용한 기계적인 시간 여행이 아니라
알수 없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다른 시공간에 빠져 드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인 타임 슬리퍼 들은 원래 시대로 되돌아 오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게 되고 그게 극적인 재미를 더하는 장치로 활용되기도 한답니다.
이런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우리나라 처음의 드라마는
"천년지애" 가 원조격이랍니다.
노트북을 열며] 연애만 하는 한국 드라마?
공감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러나 시각을 좀 바꿔보면 한국 드라마들은 지겹도록 사랑 타령만 하지만, 모든 장르를 로맨스물로 귀결시키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뻗은 드라마 한류의 주요 장르도 로코(로맨틱 코미디)다. 가령 국내 최고 작가인 김수현 드라마는 해외에 거의 팔리지 않는다. '겨울새' 딱 한 편이 일본에 판매됐을 뿐이다. 사극은 역사적 경험이 다르니 당연히 별로 인기 없다. 국내에서는 시청률 즉효약인 '막장' 코드 연속극들도 별 재미 못 본다.
유럽 내 한류 전문가인 홍석경 프랑스 보르도대학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경향은 한국 드라마들이 “서구 대중문화 텍스트에서 완전히 사라진 로맨티시즘을 담고 있어 기존 서구 드라마에 식상한 팬들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아니 단순히 대중문화 텍스트뿐 아니라 서구의 남녀관계에서 점차 로맨티시즘이 사라지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고 말한다.
남녀가 사귀면 육체적 관계로 직행하는 서구와 달리 에로틱하기보다는 수줍은 연애감정의 밀당(밀고 당기기)을 전시하고 판타지를 극대화하는 우리 로맨스물에 서구 팬들이 향수와 매력을 느낀다는 분석이다.
지금 국내 로맨스 드라마는 엄청난 장르 포섭력을 보이며 진화해 가고 있다. 기혼 남녀의 로맨스를 통해 사실주의 문학이 이룩했던 것 못잖게, 한국 사회 속물주의에 대해 살 떨리는 보고서를 내놓는가 하면(JTBC '아내의 자격'), 로맨스를 통일이라는 사회 이슈와 결합하기도 한다(MBC '더 킹 투하츠').
과거를 빌려 현재에 대한 정치적 발언을 하는 사극도 억압이 많기에 더욱 극적인 사랑의 전개가 가능한 로맨스의 시대 장치로 종종 차출된다(MBC '해를 품은 달', KBS '공주의 남자'). 최근에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타임슬립(time slip)이 로코의 대세다. 조선에서 온 선비를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아니라 풍류를 아니 현대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연애 고수로 그려낸 tvN '인현왕후의 남자'가 대표적이다.
물론 장르 편식은 큰 문제다. 한류의 미래와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연애란 고통스러운 삶이 선사한 유일한, 최고의 판타지”라고 했던 이창동 감독의 말을 빌리면 글로벌 마켓에서 공인받은 바, 연애 판타지의 최상치를 제공하는 우리 드라마들을 타박할 일도 아니다 싶다.
연애 드라마만 판친다면 그건 현실에 진짜 사랑이 없거나, 연애 대리체험에 기대서라도 탈주하고 싶을 만큼 현실이 팍팍한 것 아닐까. 늘 그렇듯 진짜 문제는 TV 안이 아니라 TV 밖 현실에 있다.
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양성희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cooliekr/
나연주의 책말잇기
<테르마이 로마이>는 고대 로마와 현대 일본을 오가는 타임슬립 만화다.
시간여행 드라마가 판을 친다.
<옥탑방 왕세자>(SBS) <인현왕후의 남자>(tvN) <닥터 진>(MBC)…. 자그마치 세 편이다(지난주 종영한 <옥탑방 왕세자>도 재방송은 절찬리 방영 중). 그것도 한결같이 조선시대와 현대 한국을 넘나드는 콘셉트다. 게다가 전생의 연인은 어찌 그리 똑같은 미모로 환생을 하는지. 드라마 재방송을 하염없이 돌려보다 자문을 했다.
만약 내가 시간여행을 한데도 저렇게 빤한 델 갈까? 한데 말문이 막혔다. 가고 싶은 시대며 장소가 하나도 안 떠올랐다. 엉뚱하게도 수학능력시험을 보던 날이 생각났다. 염통을 쿡쿡 쑤시는 긴장감과 어이없이 찾아드는 졸음. 그날 2교시 수리영역을 망치고 나는 어떤 확신을 했다. 공부가 아니라 정신력의 문제야. 수학능력시험이란 거, 도저히 두 번은 못 치겠구나. 그래서 나는 재수를 포기했다. 이렇게 물렁한 인간이어서일까. 시간여행을 한들 내 인생이 뭐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는 딴마음만 든다.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내가 뭔들 제대로 고치기나 할까.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실제로 40년간 시간여행만 연구한 코네티컷대학의 물리학 교수나, 죽은 가수의 한정판 LP를 구하기 위해 고가의 시간여행을 작정하는 만화 <커피 한 잔 더>의 브리티시 록 광팬이 본다면 배가 불러도 한참 부른 작태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시간여행(Time Travel)’보다 ‘타임슬립(Time Slip)’ 체질인걸.
타임슬립은 알 수 없는 연유로 다른 시공간에 빠져드는 걸 말한다.
시간여행의 하위개념이다. 타임슬리퍼(Time Slipper)는 대개 원래 시대로 되돌아오기까지 죽도록 고생을 하지만 그게 또 재미다.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무전여행이 더 흥미진진한 것처럼. <테르마이 로마이>도 그런 헐렁한 재미가 있는 만화다. ‘테르마이’란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을 뜻한다.
때는 고대 로마, 테르마이 설계기사 루시우스는 테르마이에서 색다른 목욕시설을 고심하던 중 원인 모를 소용돌이에 휘말려 낯선 목욕탕에 도착하게 된다. 휘황찬란한 화산(후지산) 벽화가 야외에 나온 듯한 기분을 자아내고, 목욕 후 소젖음료(요구르트) 한 모금이 기막힌 청량감을 선사하는 신천지, 바로 현대 일본의 목욕탕이다. 이후 루시우스는 시도 때도 없이 욕조 바닥을 통해 ‘점잖고 영리한 평안족’의 목욕탕으로 예기치 못한 타임슬립을 한다.
샤워기와 비데부터 도장을 채우면 사은품을 주는 목욕탕 쿠폰제까지. 관건은 그가 현대 문명의 이기에 얼마나 순수하게 감동받고 그걸 고대 로마에서 얼마나 착실하게 써먹느냐다.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한 저자 야마자키 마리는 이탈리아인의 선조 로마인과 모국 일본인의 습성에 아주 빠삭해서 온천에 환장한 두 나라 사람들에 얽힌 사사롭고 민망하고 야한 이야기를 잘도 쭉쭉 맛깔나게 뽑아낸다.
한국어판은 2권, 일본에서는 3권까지 나왔다. 지난 4월 말 동명 영화판이 일본 극장가를 휩쓸기도 했다. 어째서인지 황제를 포함한 고대 로마인 배역은 죄다 일본인. 주인공 루시우스 역은 ‘무려’ 아베 히로시가 맡았다.
나연주의 책말잇기
<테르마이 로마이>는 고대 로마와 현대 일본을 오가는 타임슬립 만화다.
<옥탑방 왕세자>(SBS) <인현왕후의 남자>(tvN) <닥터 진>(MBC)…. 자그마치 세 편이다(지난주 종영한 <옥탑방 왕세자>도 재방송은 절찬리 방영 중). 그것도 한결같이 조선시대와 현대 한국을 넘나드는 콘셉트다. 게다가 전생의 연인은 어찌 그리 똑같은 미모로 환생을 하는지. 드라마 재방송을 하염없이 돌려보다 자문을 했다.
만약 내가 시간여행을 한데도 저렇게 빤한 델 갈까? 한데 말문이 막혔다. 가고 싶은 시대며 장소가 하나도 안 떠올랐다. 엉뚱하게도 수학능력시험을 보던 날이 생각났다. 염통을 쿡쿡 쑤시는 긴장감과 어이없이 찾아드는 졸음. 그날 2교시 수리영역을 망치고 나는 어떤 확신을 했다. 공부가 아니라 정신력의 문제야. 수학능력시험이란 거, 도저히 두 번은 못 치겠구나. 그래서 나는 재수를 포기했다. 이렇게 물렁한 인간이어서일까. 시간여행을 한들 내 인생이 뭐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는 딴마음만 든다.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내가 뭔들 제대로 고치기나 할까.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실제로 40년간 시간여행만 연구한 코네티컷대학의 물리학 교수나, 죽은 가수의 한정판 LP를 구하기 위해 고가의 시간여행을 작정하는 만화 <커피 한 잔 더>의 브리티시 록 광팬이 본다면 배가 불러도 한참 부른 작태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시간여행(Time Travel)’보다 ‘타임슬립(Time Slip)’ 체질인걸.
타임슬립은 알 수 없는 연유로 다른 시공간에 빠져드는 걸 말한다.
시간여행의 하위개념이다. 타임슬리퍼(Time Slipper)는 대개 원래 시대로 되돌아오기까지 죽도록 고생을 하지만 그게 또 재미다.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무전여행이 더 흥미진진한 것처럼. <테르마이 로마이>도 그런 헐렁한 재미가 있는 만화다. ‘테르마이’란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을 뜻한다.
때는 고대 로마, 테르마이 설계기사 루시우스는 테르마이에서 색다른 목욕시설을 고심하던 중 원인 모를 소용돌이에 휘말려 낯선 목욕탕에 도착하게 된다. 휘황찬란한 화산(후지산) 벽화가 야외에 나온 듯한 기분을 자아내고, 목욕 후 소젖음료(요구르트) 한 모금이 기막힌 청량감을 선사하는 신천지, 바로 현대 일본의 목욕탕이다. 이후 루시우스는 시도 때도 없이 욕조 바닥을 통해 ‘점잖고 영리한 평안족’의 목욕탕으로 예기치 못한 타임슬립을 한다.
샤워기와 비데부터 도장을 채우면 사은품을 주는 목욕탕 쿠폰제까지. 관건은 그가 현대 문명의 이기에 얼마나 순수하게 감동받고 그걸 고대 로마에서 얼마나 착실하게 써먹느냐다.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한 저자 야마자키 마리는 이탈리아인의 선조 로마인과 모국 일본인의 습성에 아주 빠삭해서 온천에 환장한 두 나라 사람들에 얽힌 사사롭고 민망하고 야한 이야기를 잘도 쭉쭉 맛깔나게 뽑아낸다.
한국어판은 2권, 일본에서는 3권까지 나왔다. 지난 4월 말 동명 영화판이 일본 극장가를 휩쓸기도 했다. 어째서인지 황제를 포함한 고대 로마인 배역은 죄다 일본인. 주인공 루시우스 역은 ‘무려’ 아베 히로시가 맡았다.
시간 비틀면 사랑은 더 절절한 것
'옥탑방 왕세자'에 이어 '인현왕후의 남자' 등 잇단 시간여행 드라마
인현왕후를 지키려던 조선의 선비가 2012년으로 온 이야기를 담은 tvN '인현왕후의 남자'.
어느 날 한복차림의 남자가 불쑥 나타나 “대체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면 천천히 훑어보자. 안방극장을 찾아온 타임슬립(Time slip·시간여행) 드라마에서처럼 시간여행자가 나타난 걸지도 모르니.
시간을 거스른 사랑이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달 21일 첫 방영 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여온 '옥탑방 왕세자'(SBS)에 이어 18일에는 '인현왕후의 남자'(tvN)도 시작했다.
두 드라마 모두 조선의 남자가 2012년 서울로 와 사랑을 이룬다.
'옥탑방 왕세자'(SBS)에서도 조선의 왕이 현대로 날아 왔다. '옥탑방 왕세자' 속 조선의 왕 이각(박유천)은 세자빈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현재로 오고, '인현왕후의 남자'의 홍문관 교리 김붕도(지현우)도 인현왕후를 필사적으로 지키려다 위험에 처해 300년을 건너 뛴다.
5월에는 또 다른 타임슬립 드라마인 '타임슬립 닥터진'(MBC)도 방영을 앞두고 있다. 송승헌·이범수·박민영 주연으로 2012년 대한민국의 의사가 1860년대 조선으로 가 의사로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고려시대 무사가 현대 여의사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신의'(SBS)는 8월 방영이 예정돼 있다.
◆사극의 끊임없는 진화=타임슬립물은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는 설정상 기본적으로 '사극'의 뼈대를 갖추고 있다. 드라마 한류에서 가장 경쟁력을 갖춘 장르인 사극이 진화하는 과정 속에서 타임슬립물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윤석진 드라마평론가는 “최근 몇 년 동안 역사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가장 가까운 과거인 조선은 물론 고려·신라·고구려까지 다룰 수 있는 소재는 대부분 다뤘다.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팩션도 대거 쏟아져 나왔고, 올 초에는 '해를 품은 달'처럼 완전한 허구인 픽션이 나오기도 했다. 이젠 과거와 현재가 섞인 타임슬립물로 장르 분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랑에는 장벽이 필요해=관련 드라마 모두 멜로 요소가 빠지지 않는다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인현왕후의 남자'를 기획한 김영규 PD는 “로맨틱 코미디는 대부분 재벌 남자가 평범한 여자를 만나는 설정이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그런 (계급적) 장벽을 넘어서, 그보다 더 어려운 시간적 장벽을 두면 주인공의 사랑을 더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장벽을 두면, 그들의 사랑이 상대적으로 더 절절해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낯설게 바라보는 재미=“치맥(치킨과 맥주)만큼은 조선으로 꼭 가지고 가고 싶소”라고 진지하게 말하고, 변기 물로 불을 끄려는 조선 남자들('옥탑방 왕세자'). 유치하지만 어쩔 수 없이 웃음이 터지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볼 수 있어서다.
윤석진 평론가는 “낯선 시각으로 끊임없이 현재를 대상화해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걸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 타임슬립물은 상대적으로 웃음을 줄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나오는 '운명의 굴레' '환생' 코드는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윤 평론가는 “장르는 진화하고 있지만 신데렐라 스토리에 기반한 설정은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타임슬립(Time Slip)=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여행을 뜻하는 조어(造語)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백투 더 퓨처'(1985년)로 대표되는 시간여행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이미 단골소재다. 일본에서도 '타임슬립 닥터진' '롱러브레터 표류교실' '몹걸' 등 타임슬립 드라마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영화로는 2009년 전국 관객 611만 명을 동원한 '전우치'가 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임주리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ohmaju/
[J-Hot]
‘타임 슬립(Time Slip)’이란 ‘시간이 미끄러지다’는 뜻으로 현실의 시공간을 초월해 미래나 과거의 세계로 옮겨지는 현상을 말한다. 인기리에 방영된 <인현왕후의 남자> <옥탑방 왕세자>에 이어 2012년 대한민국 의사가 1860년대 조선으로 이동하는 <닥터 진>, 고려시대 무사가 현대 여의사와 사랑에 빠지는 <신의>까지 기다리고 있다. 조선시대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타임 슬립’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드라마에서 영화까지, 대중문화를 점령한 타임 슬립 판타지를 살펴본다.
조선시대 킹카와 현대 똑순이의 벼락 같은 만남
타임 슬립 제대로 살린 설정으로 호기심 자극
매력적인 조상님과의 깨알 같은 연애 코드
“볼 거 다 봤으면서 이제야 나간다고?”(최희진)
“볼 거 다 봤으니 이제 나가는 거요.”(김붕도)
“헐!”(박하)
“헐값이 아니란 말이다”(이각)
공중전화를 뚫을 듯한 큰 키에, 귀여운 눈웃음, 웃음을 유발하는 예의 바른 경어체. 학문과 무술에 능하고 여자를 대하는 태도도 완전무결한 김붕도에게 반한 최희진. 그녀는 드라마 속에서 “일부다처제에 기생도 있었고. 지금보다 여자를 잘 알면 잘 알았지 몰랐을 리 없잖아”라며 그에 대한 마음을 넌지시 밝힌다. ‘현대판 작별인사’라며 김붕도에게 입을 맞춘 희진은 김붕도가 조선시대 아버지의 유물을 팔아 자신에게 사준 자동차 안에서 키스를 나눈다. “내가 만나는 남자가 언제 태어났을지도 모를 조상님이라니.”(희진) 키스 후 멋쩍어 차의 목적이 스킨십 때문이라고 말하는 유인나를 향해 “나도 이 차를 잘 샀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소”라고 말하는 김붕도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쏘냐.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평소 측근들에게도 ‘잔망스러운 것’ ‘무엄하다’ 등 하오체를 활용했다는 <옥탑방 왕세자>의 박유천은 “입을 다물지 않으면 입을 다스리겠다, 눈을 감지 않으면 눈도 다스리겠다”는 명대사로 ‘옥녀 폐인’을 양산했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자동차를 탔느냐!” “삼족을 멸할 것이다” 같은 이각의 대사는 이미 팬들에 의해 어록으로 만들어질 정도. 톡톡 튀는 대사가 엄숙한 하오체를 만나 마니아를 열광시켰다. 신분이나 재력의 차이가 현대 드라마의 사랑에 대한 장벽이었다면 타임 슬립 드라마에 등장하는 시간이라는 장벽은 그보다 더 애틋하고 절절하게 눈물샘을 자극시켰다.
조선시대 선수들에게 배우는 작업의 정석과 명대사
2. 학문과 무술에 능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성격.
3. 조선시대 킹카 선비는 현대로 와도 킹카다. 과묵함과 배려를 동시에 보여주는 태도.
4. 과묵한 사극 톤으로 여심을 흔드는 고도의 작업술.
5. 유교와 예의를 숭상하다가도 갑작스럽게 시도하는 스킨십.
“어제 하루 종일 가슴이 쪼그라들고 두근거리고 답답하고 터질 것 같고 숨을 쉬어도 답답한 나를 내가 모르겠기에 하루 종일 미치는 줄 알았다. 소릴 지르고 발길질을 해도 시원치를 않았다. 이제 알았다. 나는 하루 종일 네가 보고 싶었던 거였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이각 박유천 분)
“인현왕후 얼굴을 보려고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무엇을 못하겠소. 내가 책임지면 되겠소?”(김붕도 지현우 분)
“내 몸이 이상하다. 내 몸이 보이지 않았다. 너를 안을 수 없었단 말이다.” (이각)
“처자의 입술에 거품이 묻은 게 인, 내가 닦아 주는 것이 과, 이것이 인과요.” (김붕도)
“가만히 누워 있거라. 입을 다물지 않으면 입을 다스리겠다. 눈을 감지 않으면 눈도 다스리겠다.”(이각)
“왜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왜 이리 애간장을 태운단 말이냐. 내 허락도 없이 어딜 간단 말이냐!”(이각)
“처음으로 처자가 미인이라고 생각했소.”(김붕도)
타임 슬립으로 비튼 신데렐라 스토리
1920년대 파리에서 만난 헤밍웨이 & 과거로 떠난 윌 스미스
왜 타임 슬립인가?
그렇다면 왜 이렇게 타임 슬립이 인기일까? 이미 조선, 고려, 삼국 시대를 제철마다 모두 다룬 국내 사극 드라마가 소재 면에서 더 이상 뽑아 쓸 것이 없어졌다는 데서 어느 정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극은 <선덕여왕> 등의 정통사극에서 <뿌리 깊은 나무><추노><공주의 남자>처럼 스타일리시 사극으로, <성균관스캔들> 같은 코믹 퓨전 사극으로 진화해 왔다. 그러다 아예 <해를 품은 달>처럼 허구를 기반으로 한 팩션 사극이 나오더니 이제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타임 슬립’ 사극을 등장시킨 것. 이같은 현상을 두고 좀 더 신선한 것, 좀 더 새로운 것을 원하는 시청자 눈높이에 맞춰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진화한 장르에 비해 여전히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 떼지어 몰려오는 ‘타임 슬립’ 콘텐츠에도 시청자가 질릴 수 있다는 사실은 주지해야 할 것이다. 물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말을 타다가도 달콤한 작업 멘트를 날리는 남자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것이 변함없는 시청률 상승포인트임은 분명하지만.
타임 슬립 완꼬남 4인4색 캐릭터 스터디
<옥탑방 왕세자> 이각(박유천) 조선시대 왕세자 & 2012년 (주)홈&쇼핑 후계자 용태용
<인현왕후의 남자> 김붕도(지현우) 조선시대 홍문관 교리 & 2012년 대학원생 김붕도
<닥터 진> 진혁(송승헌) 조선시대 대한대학병원 최연소 신경외과 과장 & 1860년 조선시대 양의
IQ 180의 천재로 최연소 의대 입학, 수술 성공률 100%의 신화를 이어가는 천재 외과의사.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전의 조선시대로 타임 슬립해 악전고투를 벌인다.
<신의> 최영(이민호) 공민왕의 호위부대 대장 최영
고려시대 남자 치고 긴 팔과 다리. 노국공주를 구하기 위해 하늘로 통하는 천혈을 타고 21세기로 와 성형외과 의사 은수를 데려간다. 공민왕(류덕환 분)을 모시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킹메이커.
[글 박찬은 기자 자료제공 영화사 숲 스타우스엔터테인먼트 SBS MBC KBS tvN CJ E&M 일러스트 김민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30호(12.06.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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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을 하는 타임슬립(Time-slip)이라는 점에서 현재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SBS ‘옥탑방 왕세자’와 (이하 ‘옥세자’)궤도를 같이 하고 있는데, 비슷한 설정인 만큼 여러모로 비교가 되고 있다.
연출을 맡은 김병수 PD는 16일 오후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호텔에서 열린 ‘인현왕후의 남자’ 제작발표회에서 “한국 역사에서 가장 ‘핫’한 스토리인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살던 시대로 돌아가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지가됐다”라며 “조선시대의 정치적 음모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현대에서는 달달한 로맨스를 그려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옥세자’와 비교가 되는데, 타임슬립이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옥세자’가 환생이라는 점에 코드를 둔 코미디에 가깝다면 우리는 로맨스를 더 부각시키고 사극 분량이 많다는 점이 다르다”라며 “특히 현재와 과거를 오갈 때 색감에 차이를 분명히 둬서 이해하기 쉽게 연출할 계획”이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인현왕후의 남자’는 ‘순풍 산부인과’와 ‘거침없이 하이킥’ 등을 집필한 송재정이 대본을 맡고 ‘별순검’과 ‘뱀파이어 검사’ 등을 연출한 김병수 PD가 메가폰을 잡았다.
배우 지현우는 인현왕후의 복위를 위해 시간을 뛰어넘는 조선시대 선배 김붕도 역을 맡았고 유인나는 2012년 무명 배우의 설움을 겪는 최희진으로 분해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을 펼친다.
또한 김진우는 바람둥이 톱스타이자 유인나의 옛 연인인 한동민 역을 맡아 지현우와 삼각관계를 이루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예정이다.
액션과 코믹을 넘나들며 색다른 재미와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할 ‘인현왕후의 남자’는 다른 타임슬립 드라마와는 달리, 시공을 이동해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닌 신비의 부적의 힘으로 수시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박진감 넘치는 설정을 갖췄다.
각종 음모와 사건을 파헤치는 흥미진진한 조선시대의 이야기와 코믹하고 달달한 현재의 비중을 50대 50으로 균형을 맞춰 긴장감과 재미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선사하겠다는 전략이다.
‘인현왕후의 남자’는 ‘일년에 열두 남자’ 후속으로 오는 18일 첫 방송되며 지현우와 유인나, 김진우, 박영린, 가득희, 진예솔 등이 출연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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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답하라 1997> tvN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응답하라 1997>의 포스터 |
ⓒ tvN |
지난 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드라마, 잊지 못하는 그 첫사랑 같은 드라마, 사랑 이야기는 넘치고 넘치는 요즘이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7>은 여느 드라마들과는 다른 차원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준다. 고작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인데도, 추억의 향수를 물씬 풍기는 이 드라마의 정체는 뭘까?
굳이 'HOT'와 '젝스키스'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 순수하고 때론 어설프기에 더욱 잊혀지지 않는 첫사랑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에는 그대로 담겨 있다. 이러한 "첫사랑"중의 하나에, '오빠들'을 향한 소녀들의 마음도 들어가 있는 것이다.
▲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한 장면 |
ⓒ tvN |
과거를 추억하며 '팬심'까지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
"사람은 가까이 있는 꿈에 만족해야 한다. 멀리 있는 것에 욕심내봤자 힘들고 속만 쓰릴 뿐이니까. 공허한 열정은 가슴앓이만 남을 뿐이니까. 그래서 세상 가장 미련한 짓이 짝사랑이다. 그래도 그 미련한 짝사랑이 해볼만한 이유는 그 열정이 아주 가끔은 기적을 만들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멀리멀리 돌아 이루어 지기도 하고 설령,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꿈 근처에 머물며 행복해 질 기회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응답하라 1997> 태웅의 대사중에서-
비단 이러한 사랑 이야기 뿐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응답하라 1997>에 더욱 빠져들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1990년대 후반의 격정기를 보낸 '우리 세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현재 드라마의 주 시청자층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필자를 포함해 우리 세대 최고의 아이돌이었던 'HOT'와 '젝스키스' 팬들간의 신경전은 그 때 그 당시의 현실감 있는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한다.
'젝스키스'가 해체하던 날, 팬들이 리포터 '조영구'의 차를 젝스키스 기획사의 사장 차인 줄 오해해 반파시킨 사건을 포함해, '드림콘서트'에서 팬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는 이야기 등, 돌이켜보면 저땐 왜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웠을까 생각하고 웃으며 지난날을 돌이켜보게 된다. 또한, '팬픽'이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아이돌 그룹의 팬이라면 한 번 쯤 써 보았을 '팬픽'에 관한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극하고 청소년기로 돌아가게끔 해준다.
▲ tvN <응답하라 1997>의 '정은지'. |
ⓒ tvN |
당시의 시대 상황까지도 반영돼... IMF 경제난 실감나게 그려내
그렇다고 <응답하라 1997>이 희대의 투톱 아이돌이었던 'HOT'와 '젝스키스' 팬들의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IMF 외환위기의 등장 배경을 언급하며, 시청자들에게 현재의 한국 경제 상황과 당대를 비교하게끔 만든다. 이는 어찌 보면 그 때 당시보다 현재의 경제 난국이 더 심각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90년대 후반 가요들이 더한 향수 불러일으켜
또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요소 중 하나로, 드라마의 배경음악이 한 몫 한다고도 할 수 있다. J.S의 "종로에서", 리아의 "눈물", 이지훈의 "왜 하늘은", 터보의 "회상"까지 당대의 히트곡들이 속속 등장하며 '명곡들의 귀환'을 실감케 한다. 앞으로 해당 드라마의 작가들이 어떠한 명곡들을 시청자들에게 들려줄 지 무척 기대가 된다.
이렇듯 과거의 향수를 그대로 재현해 낸 <응답하라 1997>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과거와 현재,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의 이유를 과거의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재미와 감동 그리고 의외의 반전까지도 담고 있는 제작진의 연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응답하라 1997>의 한 장면. 윤윤제(서인국 분)와 성시원(정은지 분) |
ⓒ CJ E&M |
가수 출신 연기자들의 탄탄한 연기력도 돋보여, '부산 사투리'도 전혀 안 어색해
제작진의 연출 뿐 아니라 '가수 출신 연기자'들의 연기도 돋보인다. 극 중 주인공을 맡고 있는 '서인국'과 '은지원', 그리고 '정은지', '호야' 등 가수 출신 연기자들은 "연기력 논란"도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 평소에 아이돌 그룹 출신 연기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시청자들은, 이들의 연기를 보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본인들에게 스스로 놀랐을 것이다.
또한, 드라마의 배경이 '부산'인 만큼 연기자들도 사투리를 쓴다. 이러한 경우 '사투리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논란이 있을 법 한데, <응답하라 1997>의 연기자들은 정말 그 지역 사람들인 것 마냥 자연스럽게 부산 사투리를 구사한다. 특히 '에이핑크'의 '정은지'의 사투리 연기는, 현지인들에게 극찬을 받을 정도이다. 이렇듯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에 대한 편견도 없어주고, 연기력 논란도 없는 <응답할 1997>은 "우리 세대의 추억을 아름답게 회상하게 만드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극중 주인공 삼순이는, "추억은 추억일 뿐이에요. 추억은 아무런 힘도 없어요."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삼순에게 희진은 "추억은 지워지지 않아요."라며 일침을 가한다. 이렇듯, 추억은 지워지지 않고 생각할수록 더욱 아련한 기억을 자아낸다. <응답하라 1997>이 방영되는 동안, 시청자들의 '추억 여행'은 계속 될 것이다. 10여년 후, <응답하라 2012>가 제작된다면 어떨까? 지금을 추억하며 엷은 미소를 짓고 있을 그 날을 상상해 본다.
[일간스포츠 정지원] 최근 안방극장에 '타임슬립'(Time-Slip,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속속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판타지를 배척하던 드라마 시장에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셈이다. 2003년 '천년지애' 이후 10년 가까이 감감무소식이던 시간여행 소재 드라마가 갑자기 많아지게 된 이유는 뭘까? 또 안방극장에 소개됐으며, 방송을 준비 중인 타임슬립 소재 드라마는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알아봤다.
SBS '옥탑방 왕세자'
사랑하는 세자빈을 잃어버린 조선 왕세자 이각이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21세기의 서울에서 새로운 연인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최근 안방극장에 타임슬립 드라마의 붐을 일으킨 대표적인 작품. 조선시대 왕세자와 네 명의 신하들이 2012년 서울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 눈길을 끌었다. 사극에 등장하는 문어체 대사와 딱딱한 표정연기를 현대극에 도입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진 절절한 로맨스에 미스터리를 추가해 두 배의 재미를 줬다.
SBS '천년지애'
남부여의 공주가 시간을 거슬러 현대에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드라마. 과거에 얽혀있던 인연의 끈을 2000년대를 배경으로 풀어내면서 호기심을 자아냈다.
국내 최초로 타임슬립을 소재로 도입한 드라마. 걸그룹 핑클 출신으로 연기자 전환을 선언한 성유리의 첫 번째 히트작이다. 고대 남부여의 공주가 현대로 날아와 과거 자신과 얽혀 있던 남자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재치 있게 풀어냈다. 공주 성유리가 현대문명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풀어내는가 하면 절절한 멜로와 액션까지 가미해 큰 인기를 끌었다. 앞서 1996년 흥행에 성공한 영화 '은행나무침대'와 유사한 설정. 안방극장에서 드문 소재라 방송 전 우려의 시선을 받았지만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흥행에 성공을 거뒀다.
MBC '닥터진'
2012년의 대한민국 최고 의사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그린 의학드라마
현대의 인물이 과거로 날아가 역사를 바꾼다는 전형적인 타임슬립 소재 드라마에 의학이라는 첨가제를 투입했다. 2000년대 첨단의학을 배운 의사가 조선시대로 날아가 재능을 발휘한다는 흥미로운 내용으로 방송 전부터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방송 초반부터 조선시대에 떨어진 의사 송승헌이 수술도구도 없이 망치와 정을 들고 환자의 뇌수술을 감행하는 등 눈길을 끄는 장면들을 내보내 몰입도를 높였다.
SBS '신의'
고려시대의 무사와 현대의 여의사가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는 과정을 그리는 드라마
2000년대에 살던 의사가 고려시대에 떨어진다는 설정이 '닥터 진'과 유사해 두 드라마 제작진 사이에 감정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수차례 내용을 수정하고 캐스팅을 바꾸는 등 난항을 거친 끝에 현재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현대에 살던 여의사가 고려시대 무사에게 납치돼 과거로 날아간 후 현지에서 만난 스무 살짜리 공민왕을 고려의 왕으로 즉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을 그릴 예정이다.
tvN '인현왕후의 남자'
내용 : 인현왕후의 복위를 위해 300년을 거슬러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조선시대 선비와 2012년 인현왕후 역을 맡은 무명 여배우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했는데도 2%대를 뛰어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공을 거뒀다. 무엇보다 내용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으며 높은 화제성으로 이슈가 됐다. 조선시대 남자와 2012년에 살던 여자가 만나 로맨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애틋하게 그려내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부적을 사용해 자유자재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설정을 통해 다른 타임슬립 소재 드라마와 차별화를 선언했다. 빠른 전개와 감각적인 영상미로 '웰 메이드 드라마'란 말을 들었다.
○…'타임슬립'은?
인류의 시간여행 꿈 대리만족
시간을 거스른다는 뜻의 타임슬립이란 용어는 1994년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류가 소설 '5분 후의 세계'에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앞서 SF문학사를 대표하는 작가 필립.K 딕이 1964년에 '화성의 타임슬립'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일본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가 '타임슬립'이란 제목의 소설을 냈다.
2009년 일본의 만화 '타임슬립 닥터진'까지 히트를 치면서 타임슬립이란 단어는 시간여행을 일컫는 대표적인 용어가 됐다. 국내에 타임슬립이란 말이 심심찮게 등장하게 된 것도 '타임슬립 닥터진'이 국내 제작진에 의해 드라마화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부터다. 이처럼 시간여행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의학드라마의 장르적 특성을 적용하고 여기에 트렌디한 멜로까지 가미해 다양한 작품들이 기획되면서 젊은 층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 냈고 타임슬립이란 단어 역시 특별한 설명 없이도 편하게쓸 수 있는 조어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타임슬립 소재 드라마가 갑자기 많아진 이유는 뭘까?
드라마 관계자들은 '새로운 것을 찾는 시청자들의 취향에 맞게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옥탑방 왕세자'에 이어 '신의'를 제작 중인 SBS의 김영섭 드라마 국장은 “과거에는 조금만 비현실적인 내용이 나오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였다. 타임 슬립 소재의 '천년지애'가 성공을 거뒀지만 당시 지상파 최초로 주말에 편성되면서 경쟁작 없이 방송돼 더 주목받은 면도 있다. 그 뒤로 유사소재 작품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흥행성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들은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 및 영화를 통해 '가상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타임슬립이란 소재를 써도 '말이 된다'라고 생각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라면서 “시청자들의 포용력이 넓어졌다는 것은 제작진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그만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앞서 '시크릿 가든' 등 판타지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방송사에서도 장르와 소재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타임슬립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캐릭터 역시 변화무쌍해 두 배의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닥터진'의 또 다른 관계자도 “인간이 날고 싶다는 욕망으로 비행기를 만들어 낸 것과 달리 시간여행은 쉽게 이뤄지지 못할 꿈이다. 이론적으로도 많은 결함이 있는 시간여행의 꿈을 드라마와 영화가 대리만족시켜주고 있다”라면서 “이제 완성도 높은 영화를 통해 길들여진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밀도가 높은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지원 기자 cinezzang@joongang.co.kr
[뉴스엔 황유영 기자] 또 뻔한 타임슬립 드라마? 타임슬립은 거들뿐이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드라마아 다양한 장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다. 시공을 초월해 고려로 간 유은수(김희선 분)는 시종일관 좌충우돌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역사 속 실존인물 최영(이민호 분)과의 로맨스도 서서히 무르익고 있다. 공민왕(류덕환 분)과 기철(유오성 분)의 대립은 그 어떤 정치 드라마보다 탄탄한 구성으로 긴장감을 만든다. 화려한 액션은 물론 음공, 화공 등 무협지 속 장면을 그대로 옮겨왔다. SBS 월화드라마 '신의'는 한 두가지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운 드라마다. 유은수의 좌충우돌은 시트콤이고 최영, 유은수의 관계는 멜로다. 액션은 무협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타임슬립을 주 소재로 사용하고 사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어떤 장르 안에도 갇혀있지 않다. '신의'는 방영전 MBC '닥터진'과 유쾌하지 않은 논쟁이 있었다. '닥터진' 제작사 측에서 타임슬립, 사극 등의 설정이 비슷하다며 문제제기를 했던 것. 막상 뚜껑을 연 두 드라마는 설정의 유사함을 제외하면 차이점이 더 크게 부각된다. '신의'는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를 다양한 장르로 변주하는데서 특별한 장기를 보여주고 있다. 베테랑 송지나 작가는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를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풀어나간다. 타임슬립을 통해 고려시대로 간 현대 속물 여의사 유은수는 정치 드라마, 로맨스, 시트콤의 소재가 됐다. 유은수의 시선으로 보는 고려시대를 통해 정치의 문제를 되짚고 대중이 원하는 진짜 지도자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 유은수가 타임슬립을 했기 때문에 기철(유오성 분)과 당당하게 대립할 수 있다. 공력을 사용하는 다소 황당한 무협지적인 설정들도 역사극 안에 녹아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에 유은수 외에도 타임슬립을 한 의사가 있다는 암시를 통해 미스터리까지 녹이고 있다.(사진=SBS '신의' 캡처) 황유영 alice@ |
‘응답하라 1997’ 시청자와 함께가는 신개념 타임슬립 2012-08-31 15:17:59 | ||
[뉴스엔 최신애 기자] 타임슬립 드라마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요즘이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김희선 이민호 주연의 '신의'는 물론, 앞서 종영한 '닥터진', '옥탑방 왕세자', '인현왕후의 남자' 등도 타임슬립을 주제로 이야기를 꾸려나갔던 드라마다. 타임슬립(Time slip)이란 용어는 1994년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5분후의 세계'에서 처음 등장한 신조어로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타임머신과 같은 기계적인 시간 여행이 아니라 자연스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고가는 시간여행을 뜻한다. 올해 들어 유독 많았고 또 계속되고 있는 판타지성 타임슬립 드라마들의 총출동에 시청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허나 이제는 소재가 다를뿐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 이야기들에 지겨움을 느끼는 시청자들도 많아졌다. 이같은 지겨움증 속에 소위 '추억팔이 드라마'로 불리는 tvN '응답하라 1997'(이하 응답)이 등장했다. '응답'은 실제 타임슬립 소재를 다루는 드라마는 아니나, 그 행태가 독특해 시청자 사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1997년으로 돌아가 그때 그 시절을 그대로 비춰주고 있는 '응답'은 2012년 현재 시점과 맞물리며 이야기를 진행중이다. 2012년 고교동창회에서 도학찬(은지원 분)과 모유정(신소율 분)이 결혼 소식을 알리며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1997년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이다. 이에 자연스레 시간여행이 시작됐다. 그들의 고교시절엔 H.O.T 토니안에 열광했던 소녀 성시원(정은지 분)이 있었고 그녀를 짝사랑하는 소년 윤윤제(서인국 분)와 친구들이 있었다. 이로써 첫사랑의 아련하고 절절한 기억, 또 유품과도 같은 추억들이 공존하며 오롯이 그 시절로의 여행이 가능하다. 이 여행에는 극중 인물들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함께 데려가고 있다. 이에 '응답'이 타임슬립이란 소재의 다른 형태로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지난 8월 28일 방송된 '응답' 12회에서는 6년이란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소꿉친구인 윤제로부터 고백을 받은 시원이 그 마음을 거절했다. 이에 윤제는 시원에게 절교선언을 했고 이후 6년이란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다. 극에서는 시원이 대학진학을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 안의 모습과 함께 차창밖으로 세월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시원은 차창밖을 바라보며 독백으로 "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한 인류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2000년엔 젝스키스가 돌연 해체를 선언했고 2001년엔 H.O.T가 해체했고 하늘이 무너졌다"고 했다. 이어 차창밖으로 2002년이란 자막이 지나가며 "대한민국이 4강에 진출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있었고, 2003년엔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또 KTX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빨리 갈수 있었다"며 "이렇게 대망의 21세기가 시작됐고 우리의 90년대는 끝난줄 알았다"고 시원의 말이 마무리됐다. 그러더니 곧장 2005년 서울에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됐다. 1999년 시원의 대학 입학부터 2005년까지 6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드라마에서 이같은 시간의 흐름이 종종 있어 왔으나 이렇게 친절하게 각 년도별로 있었던 이야기를 다 설명한 사례는 드물다. 이것이 바로 '응답'만이 가진 타임슬립의 묘미가 될수 있다. 이에 시청자들 역시 호평이다. 시청자들은 "울렁증 한번 올라오지 않는 타임슬립이다", "완전 그때 그시절로 돌아갈수 있는 유일한 드라마", "미끄러지듯 과거로의 회귀..대단하다", "케이블 드라마란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 "뻔히 옛날에 모두 있었던 것들인데 왜이렇게 궁금하지?", "추억 속에 파묻힐 수 있어 즐거운 과거 여행" 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응답'은 6년이란 긴 시간동안 단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시원과 윤제가 한 커피숍에서 우연히 만난 채 끝나 시청자들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박창우 기자]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드라마에 있어 가정은 무한한 소재를 제공해준다. SBS <옥탑방 왕세자>, tvN <인현왕후의 남자>, MBC <닥터진>에 이어 최근 SBS에서 선보인 <신의>까지. 이른바 '타임슬립' 드라마가 꾸준히 제작될 수 있는 이유 역시 'if(가정)'의 힘이 크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타임슬립'의 시간여행은 그 설정자체가 판타지에 근거하는 까닭에 '왜'라는 질문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왜' 왕세자 이각은 300년을 거슬러 21세기 대한민국으로 왔고, '왜' 진혁은 거꾸로 조선말기로 가게 됐을까 의문을 제기하면,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고는 "드라마니까…" 밖에 없다. 우연히 자기가 사는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로 떨어진 주인공들에게 타임슬립의 '목적'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저 우연의 연속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의 시간여행은 결국 극 초반 웃음코드로 활용되고 중반부나 후반부에 이르러 사실은 이런 비밀이 있었더라와 같은 공식을 취하게 된다. 기존 타임슬립 드라마가 멜로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MBC <닥터진>은 확실히 진일보한 타임슬립 드라마라고 평가할 수 있다. 비록 무책임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닥터진>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굳이 카오스이론이나 평행이론과 같은 세계관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진혁의 고민에 같이 고민하고 흥선대원군의 변화에 함께 초조해했다. 미래에서 온 진혁의 관여에도 불구하고, 과연 역사는 '기록된 역사'대로 흘러갈 것인가? 이 하나의 질문을 던진 것만으로도 <닥터진>은 기존 '타임슬립'의 한계를 충분히 뛰어 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신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동안의 타임슬립에 없던 목적의식을 <신의>는 극 초반부에서 적극적으로 들고 나왔다. 그러니까 <신의>에서 일어나는 '타임슬립'은 우연이 아니다. 조금 더 적극적인 개념이다.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신의>는 '환자를 살릴 신의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매우 명쾌한 답을 내 놓는다. 물론 <신의>에서 최영(이민호 분)은 21세기 대한민국을 그저 화타가 사는 하늘나라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배경이 과거에서 현재가 되었든, 반대로 현재에서 과거가 되었든 '타임슬립'에 목적이 더해진다면 그 상상력의 폭이 훨씬 더 넓어진다는데 있다.
가령,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사건이나 혹은 사회 변혁의 큰 계기가 되었던 일들을 이 '타임슬립'과 연계시키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그 반대로 지금 우리사회에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싶은 과거 역사 인물을 현대로 데리고 오는 설정도 가능하다. <신의>의 경우에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아마도 <닥터진> 진혁의 경우처럼 은수(김희선 분)가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까지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닥터진>은 조선말기라는 가까운 과거였던 반면, <신의>는 고려 공민왕 시대라는 훨씬 먼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신의>가 선보인 '타임슬립'에는 그 목적과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이며, 결코 여기가 '타임슬립'의 끝은 아니라는 점이다. 단순한 시간이동에서 출발하여 역사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이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차원으로까지 '타임슬립'은 자기 발전을 꾀하고 있다. 분명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드라마에 있어 '가정'은 무한한 소재를 제공한다. '타임슬립'에 더 많은 'if'가 더해질 때, 시청자의 눈과 귀는 더 즐거워질 것이 분명하다. '자기 복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발전'을 꾀하는 더 많은 '타임슬립' 드라마가 생겨나길 기대해본다. |
유행 타임슬립드라마 현실서 진짜 가능할까? 2012-08-15 09:41:10 | ||
타임슬립 드라마는 현실서 진짜 가능할까? 타임슬립 드라마들이 인기다. 최근 종영한 MBC '닥터진'과 방송을 시작한 SBS '신의' 모두 과거로 돌아간 현대인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그린다. 과연 이런 일이 현실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드라마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현실성은 제로에 가깝다. 타임머신이라는 장치의 유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가 변하면 현재 역시 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조그마한 상황의 변화는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변화가 상상 이상일 것이라는 추론은 당연하다. 역사의 나비효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렇게 작은 부분이 아니다. 한명의 일상의 변화는 후대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 여러분들 역시 태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나 역사적 인물들과의 접촉과 활약을 다룬 드라마인만큼 그 결과는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터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은 현실이 아니고 또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는 뜻이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다. 그래서 재미있고 흥미롭다.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만약 그때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이다. 물론 이는 학문적 영역에서는 절대 배제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타임슬립 드라마의 재미는 여기서 시작된다. 현실성은 제로지만 그렇다고 이를 진짜로 현실로 받아들여선 드라마를 볼 재미가 사라진다. 그래도 반문하고 싶은건? 과거로 날아간 주인공들이 현대로 다시 돌아온대로 그 현대가 그 현대가 아니라는 점이요. 그 주인공 자체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또 다른 재미다. [뉴스엔 엔터테인먼트 부]
최근 영화와 드라마의 핵심 키워드는 '시간 여행'이다. < 맨 인 블랙 3 > < 미드나잇 인 파리 > , 드라마 < 옥탑방 왕세자 > (SBS) < 인현왕후의 남자 > (tvN) < 닥터 진 > (MBC) 등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영화와 드라마의 시계가 단단히 고장났다. 타임 슬립을 소재로 한 작품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임 슬립(Time-Sleep)은 '시간이 미끄러지다'라는 의미. 종종 '시간 여행'을 뜻하는 타임 트래블(Time Travel)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최근 개봉작 중 10년 만에 찾아온 < 맨 인 블랙 3 > 와 우디 앨런 감독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선보이는 < 미드나잇 인 파리 > 가 그 좋은 예다. 왜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자꾸만 과거로 떠나려는 작품이 많아지는 걸까. < 맨 인 블랙 3 > 에서 제이(윌 스미스)는 외계인의 침공으로 지구가 위기를 겪자 이를 막아볼 목적으로 1969년으로 돌아간다. 그런가 하면 < 미드나잇 인 파리 > 의 소설가 길 펜더(오웬 윌슨)는 약혼녀이네즈(레이첼 맥애덤스)와 파리에 왔다가 매일 밤 12시 그의 앞에 홀연히 나타난 클래식 푸조를 타고 1920년대로 옮겨간다. 직접적인 타임 슬립은 아니지만 시대 자체를 주인공처럼 다루며 관객을 향수에 젖게 만드는 영화들도 이 목록에 넣을 만하다. 이미 지난해 < 써니 > (2011)는 중년의 여고 동창들이 1980년대의 학창시절을 회상한다는 내용으로 8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 문화계 전반에 복고 열풍을 불러온 적이 있다. 올 상반기 최고 이슈작인 < 건축학개론 > 은 30대 중반의 남녀 주인공이 대학 새내기 시절의 첫사랑을 추억하는 내용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변두리였던 1990년대를 문화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한국 영화가 아직 타입 슬립에 큰 관심이 없는 것에 비해, 드라마는 시간 여행에 단단히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21세기의 서울로 날아온(?) 왕세자 이각(박유천)의 이야기를 다룬 < 옥탑방 왕세자 > (SBS)는 타입 슬립 열풍을 선도했다. 그러자 부적 한 장으로 2012년의 미래를 제 집 안방 드나들듯 넘나드는 조선시대 선비 김붕도(지현우)가 등장했다. < 인현왕후의 남자 > (tvN)는 마침 실제 인현왕후의 시대에 살던 선비 김붕도가 우연히 드라마에서 인현왕후를 연기하는 배우 희진(유인나)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판타지 멜로드라마로 < 옥탑방 왕세자 > 의 뒤를 이어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질세라 천재 의사 진혁(송승헌)이 1860년대의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그린 < 닥터 진 > (MBC)도 타입 슬립 대열에 합류했다. < 옥탑방 왕세자 > 로 재미를 본 SBS는 시대를 더욱 앞당겨 고려 시대의 무사 최영(이민호)과 현대의 여의사 은수(김희선)가 만나는 < 신의 > 를 8월부터 방영할 예정이다. 타입 슬립 열풍은 비단 한국에서만 부는 게 아니다. 일본에서도 최근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 한 편이 큰 인기를 모았다. 고대 로마의 목욕탕 설계사가 욕조의 수수께끼 구멍을 통해 현대의 일본을 오가는 설정의 < 테르마이 로마이 > (야마자키 마리의 원작 만화는 국내에도 출간됐다)가 50억 엔 이상의 흥행 수입을 올린 것. 사실 타임 슬립은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나가 좋아할 만한 소재로 각광받아 왔다. 1895년 영국의 소설가 H. G. 웰스가 < 타임머신 > 으로 시간 여행이란 탁월한 상상력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이래, 타임 슬립은 언제나 사랑받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타입 슬립이 보는 이들의 재미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유는 시간의 분열, 즉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개념(시간)의 '비틀림'이 내러티브의 동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평론가 차우진은 "시간의 연속성은 컨트롤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상상력이다. 절대적인 상황에서의 분열, 다시 말해 시간의 연속성에 오류가 발생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흥미를 끈다.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야기의 원천이었다"며 시간 여행 이야기가 매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실제로 타임 슬립 작품들은 하나같이 시간 여행을 통한 '문명의 충돌' 에피소드를 극 전면에 배치해 손쉽게 보는 이의 몰입을 유도한다. 예컨대 < 옥탑방 왕세자 > 의 이각이 현대의 서울로 넘어와 과거에 그 자신이 기거하던 창덕궁 대문 앞에서 "이리 오너라, 누구 없느냐?"며 호통 치는 장면이나, < 맨 인 블랙 3 > 의 제이가 1969년으로 돌아가 흑인이 자가용을 몬다는 이유로 인종 차별을 당하는 장면 등은 극 중 인물들이 겪는 절실함과는 별도로 시간의 모순이 유발하는 웃음을 참기 힘들게 만든다. 관객은 지금 자신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극 중 인물이 의외의 반응을 보이는 모습에 재미를 느낀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장근영은 '사고 실험'이라는 표현을 쓴다. "사고 실험을 통해 사람들은 시간대를 바꿈으로써 현재를 재발견하고 일상을 재조명한다. 가령 지금의 우리에게 평범한 행동이나 물건들이 과거로 옮겨가면 엄청난 것으로 다가가는 것처럼 말이다." < 닥터 진 > 이 다루는 내용이 바로 이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 닥터 진 > 의 진혁은 페니실린 부작용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난처한 처지에 몰린다. 하지만 그가 이미 회생 가망성이 없는 환자들을 차례로 살려내 명성을 얻은 뒤다. 지금은 항생제가 보편화됐지만 진혁이 옮겨간 1860년대의 조선에는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진혁은 1910년대가 돼서야 개발되는 페니실린을 사용해 종양 제거 수술을 하고, 염증에 걸린 조씨 부인(장영남), 화상을 입은 영래(박민영)를 치료한다. 하지만 진혁은 시대를 앞서간 의술을 행한 결과로 뒤바뀌게 될 역사가 두렵기만 하다. 우리는 때로 과거의 원인에 간섭을 가해 현실의 결과를 바꾸고 싶다는 욕구를 갖는다. 그리고 역사라는 만고불변의 개념 앞에서 기원(起原)에 다가가고 싶다는 더 큰 욕망을 느끼게 된다. < 닥터 진 > 은 무라카미 모토카의 만화 < 타임슬립 닥터 진 > 이 원작이다. 일본에서 원작 만화를 드라마로 옮긴 < 진 > (TBS, 2009) 시즌 1과 2011년 방영된 시즌 2 모두 큰 인기를 모았다. 의사 미나가타 진(오오사와 타카오)이 우연한 계기로 메이지 유신을 앞둔 막부시대 말기에 떨어져 좌충우돌한다는 설정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두 드라마는 역사를 다루는 태도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한국의 < 닥터 진 > 은 페니실린의 발견에 따른 역사적 사실을 변용해 극적인 드라마를 이루는 반면, 일본은 고증에 충실하며 정확한 역사 재현에 더 공을 들인다. 일본의 < 진 > 시리즈를 두고 심리학자 장근영은 "새로운 방식의 역사 교육"이라고 말한다. 타임 슬립이라는 좀 더 유연하고 재미있는 방식을 활용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의 근대화가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역사를 교육시킨다는 것이다(박스 1 참조). 한국의 진혁이 현대에서나 과거에서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일본의 미나가타 진이 그저 열심히 일하는 의사로 설정된 것도 그 차이를 반영한다. 따라서 역사 교육의 도구가 되는 타임 슬립 작품들은 당연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시간 배경으로 선호할 수밖에 없다. 시간 배경이 될 역사적 시대가 정해지면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창조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자료 수집은 물론 이야기 구성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드라마 제작 환경이 열악한 한국에서 사극이 선호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역사를 향해 간다는 것은 그 기원과 맞닥뜨리는 간접 체험이나 다름없다. 일본의 < 진 > 시리즈처럼 현재의 일본을 가능케 한 메이지 유신을 재조명하기도 하고, < 맨 인 블랙 3 > 처럼 아폴로 11호가 발사되던 1969년 7월 15일로 돌아가 우주 강국의 위용도 뽐내기도 한다. 그리고 '황금시대'로 명명되는 미국 문화의 호시절을 추억하기도 한다. 조금 다른 예를 들면,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 프로메테우스 > 를 통해 < 에이리언 > (1979) 그 이전으로 돌아간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리들리 스코트 감독은 두 작품이 별개라고 말했지만, < 프로메테우스 > 가 공개된 지금 이 영화가 < 에이리언 > 의 프리퀄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는 왜 < 에이리언 > 시리즈의 타입 슬립이라 할 만한 < 프로메테우스 > 를 만들게 된 것일까. SF 크리처 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속편 세 편을 거쳐 <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 (2004)와 프랜차이즈 스핀 오프로 변주하는 과정을 보면서,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느꼈을 심정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시리즈의 창조자로서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변주에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리들리 스코트 감독을 < 프로메테우스 > 라는 '기원'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인류 기원의 충격적 비밀이 밝혀진다'는 포스터 문구는 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타입 슬립의 유행을 역으로 생각하면 현실의 '어떤 것'의 부재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타임 슬립이 시간의 분열을 전제하는 것처럼 시간 여행 영화의 밑바탕에는 세대 간의 분열이 자리 잡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 진 > 시리즈가 역사에 도통 관심을 갖지 않는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기성세대의 방편인 것처럼 말이다. 현재의 한국도 서로 융화되지 못하는 세대 간의 골이 무척이나 깊은 편이다. 문화 쪽으로 한정하면 한국은 지금 격변기에 놓여 있다. 일단 199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보자. 가요계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혜성처럼 나타나면서 화려한 비주얼이 동반된 댄스 음악 일색으로 재편됐다. 영화계는 기획 영화의 등장과 대기업 자본의 유입으로 능력 있는 신인 감독, 신인 프로듀서들이대거 발굴됐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X세대'라는 신인류였다. 지금의 상황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돌이 점령한 K팝 신은 한국을 넘어 세계를 사로잡았고, 작가 영화를 통해 세계적으로 발돋움한 충무로는 지금 산업 논리에 입각한 맞춤형 영화들로 압도적인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문화적 부흥을 이뤘지만 워낙 젊은 세대 위주로 소비가 이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외되고 도태되는 세대가 등장했다. 이해영 감독은 이런 관점에서 < 건축학개론 > 의 흥행을 흥미롭게 분석한다. "새로운 아이템이 쏟아지고 있지만 특정 세대에게만 소구되는 까닭에 어느 세대에게는 공란처럼 남겨진 지점이 생겼다. < 건축학개론 > 은 CD 플레이어, 무스,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으로 대변되는 1990년대 문화를 끌어들여 3040세대의 소외된 감성을 직접적으로 건드렸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 건축학개론 > 의 흥행 배경에는 현대 첨단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를 '황금기'로 기억하는 기성세대의 향수가 흐른다. < 미드나잇 인 파리 > 는 이에 대한 굉장히 사려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프랑스로 여행 온 소설가 길은 파리의 낭만을 음미하려는 자신과 달리 화려함만 즐기려는 약혼녀 이네즈가 못마땅하다. 그러던 차에 그는 밤 12시면 나타나는 클래식 푸조를 타고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F.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피카소와 같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란! 그렇게 우연히 피카소의 애인 아드리아나(마리옹 코티아르)를 만나지만 그녀는 길과 달리 1890년대를 동경한다. 1920년대야말로 황금시대라며 열변을 토하는 길에게 아드리아나는 이렇게 얘기한다. "당신이 여기 살면 여기가 현실이에요. 그럼 당신은 또 다른 세계를 동경하게 되겠죠." 이처럼 타임 슬립은 사람들에게 현 실 도피의 쾌감을 제공하지만 그 쾌감의 끝에서 깨닫게 되는 감정은 결국 현실에 대한 인정이다.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종국엔 현실을 살아갈 힘을 충전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장르는 존재 의의를 갖는다. < 건축학개론 > 의 30대 승민(엄태웅)이 성숙하지 못했던 과거 첫사랑의 기억을 정면에서 응시한 후에야 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타입 슬립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사랑받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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