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경영 이론과 사고법 100

언더도그마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2. 8. 13. 10:01

인간은 유명인 불행에서 기쁨을 느낀다?

약자는 고결, 강자는 비난대상
개천서 용 된 언더도그는 응원
유명인 되면 바로 등 돌려
부조리한 인간의 이중성 해부


#이라크 전쟁 당시 한 시민단체가 이라크에서 반전시위를 하던 중 이라크군에 인질로 잡혔다. 이들은 자신들이 비판했던 다국적군에 의해 구출됐는데도 사건의 근본원인은 다국적군의 불법적인 이라크 점령에 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심지어 동료 중 한 명이 살해됐는데도 말이다.

#2007년 사우스 플로리다대학의 조셉 반델로는 간단한 실험을 하나 했다. 대상자를 A, B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양측의 시각으로 설명한 한 쪽짜리 글을 읽게 했다. 그 뒤 A그룹에는 이스라엘이 커 보이는 지도를 보여주고, B그룹에는 이스라엘이 작아 보이는 지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양측의 갈등에서 어느 쪽을 언더도그(Underdogㆍ약자)로 볼 수 있는지 물었다. 이스라엘이 커 보이는 지도를 본 A그룹은 70%가 팔레스타인을 언더도그로 판단했다. 작은 이스라엘 지도를 본 B그룹은 62.1%가 이스라엘을 언더도그로 인식했다. 같은 정보지만 상대적인 크기에 따라 지지 정도가 달라진 것이다.

두 사례는 언더도그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사실이나 옳고 그름에서 떠나있다는 점에서 위험스러워 보인다.

미국 보수단체 티파티 패이트리어츠의 전략가인 마이클 프렐이 쓴 ‘언더도그마’(지식갤러리)는 언더도그마의 특성과 작동방식, 폐해와 활용까지 인간의 부조리한(?) 측면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언더도그마란 힘이 약한 사람이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고결하며, 힘이 강한 사람은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믿음이다. 힘이 약하다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약자 편에 서고 그 약자에게 선함과 고결함을 부여하는 것이다.

저자는 9ㆍ11 테러를 통해 언더도그마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세밀히 살핀다. 9ㆍ11테러 당시, 미디어들은 건물에서 떨어지고 있는 한 회사원의 모습을 비추며 미국이 희생자, 언더도그가 됐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이내 ‘미국이 진짜 테러리스트다’ 식 구호에 자리를 내준다. 회사원 이미지가 미디어에서 사라지고 테러리스트란 표현도 바뀌기 시작한다. 곧 미국과 테러리스트, 양측이 도덕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퍼진다.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은 미국 외교정책이 초래한 당연하고 이해할 만한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테러리스트에 대한 동정심도 생겨난다. 9ㆍ11 테러에서 언더도그마의 마지막 단계는 죄 없는 사람들이 탄 항공기를 죄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빌딩과 충돌시킴으로써 미국에 용감하게 저항했다는 테러리스트 행위를 숭고하게 포장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에 음모론이 등장하며, 미국 국민의 36%, 1억900만명이 9ㆍ11테러가 내부소행이라고 믿는 단계로 완성된다.

세계 금융위기, 중동 갈등, 환경운동, 반미주의, 새로운 반유대주의, 중국의 부상 문제뿐만 아니라 유명인의 불행에서 얻는 기쁨, 작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대형마트 반대운동, TV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 등도 언더도그마로 해석이 가능하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수전 보일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TV앞에 앉는 심리에도 언더도그마의 심리가 있다. 행동패턴 전문가인 앤서니 라빈스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을 하게 된다. 하나는 위험을 감수하며 스스로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상대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누군가가 갑자기 중요해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언더도그마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이 된’ 언더도그를 응원하지만 성공한 유명인이 되면 곧바로 등을 돌리고 매 발톱을 드러낸다.

이 공격을 피하려면 겸손함과 자선활동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만들고 퍼뜨려야 한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 방면에 도사다. 정치인들의 약자, 보통사람 전략도 궤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약자에게 무조건적인 도덕적 우위를 제공할까. 저자는 이런 언더도그마의 속성은 아이의 성장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아이들이 10~15년, 많게는 35년까지 부모에게 의존하는 기간 때문에 누군가 자신 위에 군림한다고 느끼게 되며, 이런 피해의식이 힘없는 언더도그가 어떤 기분인지 알게 하기 때문에 무의식적 동조의식을 갖는다는 해석이다.

저자는 언더도그마의 역사를 권력투쟁의 역사로 해석한다. 평등해지려는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m.com


 

[인문사회]강약에 대한 편견, 약자는 언제나 도덕적 우위인가

◇언더도그마/마이클 프렐 지음·박수민 옮김/268쪽·1만3000원·지식갤러리

[동아일보]

미국에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동성애자들’이란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반미,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팔레스타인에서는 동성애자를 범법자로 간주해 잔인하게 학대하고 광장에서 처형한다. 반면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동성애자 축제 퍼레이드가 열리는 유일한 나라다. 이슬람계 레즈비언 작가 어샤드 만지는 “미국의 동성애자들은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을 위해 자신들의 정체성마저 철저히 내팽개쳤다”고 말한다.

왜 인권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나 독재자들을 옹호할까. 비행기를 납치해 미국 건물을 공격하거나, 동성애자의 몸을 생매장해 얼굴에 돌을 던져 죽여도, 선량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아동을 자살폭탄 공격에 이용해도 관계없다. ‘강한 자’(미국)에게 맞서 싸우는 ‘약한 자’로서의 유대감 때문이다.

미국 보수단체 티파티 패트리어츠의 전략가인 저자는 ‘가진 자’(overdog)와 ‘못 가진 자’(underdog) 사이의 ‘힘의 축’이 어떻게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의 개념을 대체해 이 시대의 쟁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는지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언더도그마(underdogma)’란 약자는 도덕적 우위에 있고, 강자는 경멸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뜻한다.

언더도그마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에도 나온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힘없는 다윗을 영웅으로, 힘센 골리앗은 악으로 생각해 왔다. 1923년부터 2009년까지 월드시리즈에서 27회나 우승한 뉴욕 양키스는 ‘악의 제국’으로 불린다. 심지어 세계자연보호기금 전 총재인 필립 공은 “다시 태어난다면 세계의 인구밀도를 낮추기 위해 인체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인간의 수를 줄여야 인간보다 힘이 약한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대해서도 주택 소유가 미국 시민들의 권리라는 환상을 심어준 정치적 언더도그마가 개입했다고 분석했다.

처음엔 언더도그로 인기를 얻다가, 힘센 오버도그로 변하는 순간 대중으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수많은 추종자가 따르던 애플은 2010년 5월 ‘시장자본 총액에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를 추월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공격의 대상이 됐다. 영국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한 수전 보일은 우승을 못했기 때문에 첫 앨범이 300만 장이나 팔릴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저자는 “현대의 정치인과 기업은 대중의 눈을 속여 ‘언더도그’가 되기 위해 갖은 연극을 해댄다”고 분석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평]`언더도그마"…강자는 비난받을 수밖에 없나

언더도그(underdog)는 객관적 실력이 열세여서 성공할 가능성이 작은 약자를 뜻한다. 반대로 오버도그(overdog)는 절대 강자다. 언더도그마(underdogma)는 ‘언더도그는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고결하며, 오버도그는 힘이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미국 보수단체 티파티 패트리어츠의 전략가인 마이클 프렐이 쓴 ‘언더도그마’는 이런 인식의 허구성을 비판한 책이다.

언더도그마의 개념을 ‘아무리 사악하거나 부도덕하더라도 항상 언더도그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

9·11 테러 때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절반에 가까운 미국인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언더도그마주의자가 이처럼 미국과 테러리스트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방법 중 하나는 양측이 도덕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퍼트리는 것이다. 군사 행동과 테러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논리다. 이런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을 살상하기 위해 아동을 자살폭탄 공격에 이용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마저 갖고 있으니 합리적인 사고라고 보기 어렵다. 언더도그마주의자들은 심지어 자신들을 인질로 삼았던 이슬람 테러분자를 사살하고 자신들을 구해준 경찰을 비난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친환경 언더도그마주의자들은 반인간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힘센 오버도그라는 것이다. 인간을 지구상에서 가장 큰 해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언더도그마가 정당하다면 생태계에서 최강자인 인간은 다른 생물을 위해 사라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은 언더도그였다. 홀로코스트는 이런 느낌을 강화했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다.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일이 널리 유행하게 된 것이다. 효율적이고 전투로 단련된 기술이 이스라엘을 오버도그로 바꿨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힘센 미국이다. 이스라엘이 오버도그가 되면서 팔레스타인이 새롭게 언더도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월가의 탐욕에서 찾지만 실상은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 정부 내 언더도그마주의자들이 은행에 리스크가 큰 대출을 해주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돈 없는 대출자들을 위해 대출을 지원함으로써 그릇된 행위에 대해 대가를 치르지 않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결국 파국을 맞은 것이다.

설립 초기 소도시 사람들이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할 기회를 준다고 환영받았던 월마트는 대형 소매점이 되면서 졸지에 나쁜 기업이 됐다.

그러나 대기업이 언더도그마의 비난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전략은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폭스바겐은 1959년 ‘작게 생각하라(THINK SMALL)’ 광고로 비틀 차를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차로 만들었다. 언더도그마를 거꾸로 활용한 것이다. 이 광고는 광고잡지 애드버타이징 에이지가 순위를 매긴 세기의 광고 100개 중 1위를 차지했다.

도요타도 유사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세계 1위 자동차 업체를 다투는 도요타는 세계 시장 장악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기업의 목표라고 강조한다.

이 책의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자 프렐이 티파티 전략가라는 점에서 이 책은 극우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넉넉한 재정으로 막대한 돈을 선수 스카우트에 투입해 초호화 진용을 갖춘 영국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나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 맞서는 약팀을 응원하는 것이 과연 비난받을 일인지 의문이다.

더구나 오버도그라고 해서 무조건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시각도 공감하기 어렵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나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은 억만장자로 오버도그임이 분명하지만 시기와 질투는커녕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탐욕과는 거리가 먼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버도그도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성철환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cwsung@mk.co.kr]

 

 

 

 

 

 

[Cover Story] 오버도그 vs 언더도그…선악 가르는 기준은 아니죠!

약자는 언제나 옳을까?

인간은 흔히 ‘이성적 동물’에 비유된다. ‘만물의 영장’이라고도 불린다. 굳이 데카르트나 칸트 같은 철학자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확연히 구분된다. 인간이란 존재가 고귀한 것도 바로 이성이나 합리성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모든 현상을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편견이나 선입견은 이성을 흐리게 하는 ‘사고의 오물들’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삶의 방식 역시 그만큼 복합하고 다양해진다.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는 갈수록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이클 프렐의 저서 ‘언더도그마’(underdogma)는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맹목적 신념은 건강한 사회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언더도그마적 존재?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나라 속담은 인간의 한 속성을 잘 풍자한다.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남의 불행에서 얻는 행복) 등 세계적으로 ‘남이 잘되는 것을 배아파하는’ 인간의 심리를 비꼰 말들은 무수히 많다. 러시아에서 전해오는 옛날 이야기는 이런 인간의 심리를 잘 묘사한다. 우연히 마술램프를 발견한 농부가 램프를 문지르자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농부는 “이웃집에 젓소가 한 마리 생겼는데 가족이 다 먹고도 남을 만큼 우유를 얻었고 결국 부자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자 요정이 “그럼 이웃집처럼 젓소를 한 마리 구해드릴까요? 아니면 두 마리라도?”하고 묻는다. 농부가 대답한다. “아니, 이웃집 젓소를 죽여주면 좋겠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의 행복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맹목적으로 약자를 선으로 보고, 강자를 악으로 보는 이분법적 생각(언더도그마)도 근본적 뿌리는 여기에 있다. 감동을 주는 영화의 기본 시나리오는 선한 약자가 악한 강자를 물리치는 것이다. 신데렐라, 콩쥐팥쥐, 다윗과 골리앗의 공통점은 강자는 악하다는 것이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대중에게 ‘나는 행복하다’는 말보다 ‘어릴 적 불행한 이야기’를 들고 나온다.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인간성’을 더 어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마이크 프렐은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를 불행한 과거를 얘기해 대중의 인기를 끄는 대표적 인물로 꼽는다. 강자(overdog)보다 약자(underdog)가 이미지 관리가 더 쉽다는 논리다.

 

#권력은 언제나 타도 대상?

 

약자는 무조건적으로 옳고, 강자는 항상 악하다고 맹신하는 ‘언더도그마’는 인간의 본성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의 ‘강자=악, 약자=선’이라는 상투적 구도가 무의식적으로 이런 맹목적인 선악판단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또한 경험에서 축적된 무의식이 강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약소국들을 괴롭힌 강대국들의 역사, 노예를 억압한 백인들의 야만성, 가난한 자들의 인권을 유린한 부자들의 횡포, 중소기업을 압박한 대기업들의 뉴스 등이 강한자는 언제나 옳지 않다는 편견을 심화시켰을 수도 있다. 언더도그마는 약자에 대한 본능적 동정, 학습, 경험 등이 어우러진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약자에게 맹목적으로 동정심을 느끼고 강자에게 무조건적으로 반감을 갖는 사례는 이스라엘이 대표적이다. 유대인들이 수천년간 조국이 없어 ‘지구의 미아’로 이곳저곳을 떠돌땐 그들은 동정의 대상이었고 선(善)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2차대전 후 꿈에 그리던 나라가 세워지고 중동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이스라엘 역시 ‘강자=악’이라는 구도를 깨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이 쌓은 장벽은 ‘이스라엘 판 인종정책’이라고 분노했지만 이집트가 똑같은 이유로 세운 장벽은 ‘자국민 보호의 상징’으로 여겼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잠시 ‘동정을 받는 국가’가 됐지만 불과 몇 개월 뒤에는 언더도그마에 의해 테러리스트들보다 더 악한 국가로 내몰렸다. 언더도그마는 힘의 상징인 권력을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힘은 곧 악’이라는 맹목적 편견 때문이다.

#환경은 언제나 약자일까?

언더도그마는 환경과 인간을 대립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강자인 인간은 언제나 약자인 환경을 파괴만 한다고 생각한다. 극단적 언더도그마는 인간과 대자연의 균형을 바로 잡으려면 지구상의 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울 에를리히는 1968년 베스트셀러 ‘인구 폭탄’이라는 책에서 “인구대책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출산율을 낮추는 산아제한이고, 또 하나는 기아나 전쟁, 전염병 등을 통해 사망률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경보다는 인간의 가치를 더 아래에 둔 것이다. 그는 세상에는 인간이 편안하게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에 충분한 공간과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자연과 인간은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며 함께 살아가야 할 지구촌의 동반자다. 자연과 인간이 갈등할 때 맹목적으로 인간만이 옳지 않다는 생각 역시 언더도그마적 편견일 수 있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약자는 언제나 옳은가

[테마 읽기] 대중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다. 단, 그전까지 시도된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한다면.”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말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악(次惡)이라서 택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대중에 대한 평가와도 닿아 있다.

선거의 계절, 출판계도 민주주의와 대중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아내느라 분주하다. 그 중 ‘내 안의 어두운 본성’을 드러내는 책과 ‘우리 마음 속의 보다 나은 천사’를 일깨우는 책을 나란히 소개한다. 미국 내외 보수 정치인의 선거 전략가인 포럴의 책이 성악설(性惡說)이라면 미 원로 교육운동가인 파머의 책은 성선설(性善說)에 가깝다.

언더도그마

마이클 포럴 지음|박수민 옮김|지식갤러리|268쪽|1만3000원

강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 이성적 판단까지 흐릴 수 있어

이야기는 '언더도그(underdog)'란 단어에서 시작된다. 쉽게 말해 패자 혹은 약자다. 그런 약자를 무조건 옳다고 편드는 것이 언더도그마(underdogma). 약자는 그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고결하며, 강자는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믿음을 말한다. 약자에 대한 선의의 동정심과는 다르다. 힘의 강약에 따라 '반사적'으로 편들거나 비난한다는 점에서 이성은 속수무책이다.

2007년 사우스플로리다대 연구진의 실험 결과를 보자. 사람들에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설명한 글을 읽힌 다음, A그룹에는 이스라엘이 커 보이는 지도를, B그룹에는 작아 보이는 지도를 보여줬다. 그 결과 A그룹의 70%가 팔레스타인을 약자로 판단했고, 53.5%가 팔레스타인을 편들었다. 반면 B그룹은 62.1%가 이스라엘을 약자로 봤으며 76.7%가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사실과 관계없이 직관적인 크기로 약자를 판단하고 반사적으로 동정심을 보인 것이다.

독일어에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란 단어가 있다. '남의 불행에서 얻는 행복'이란 뜻. 우리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 않는가. 세계 20여개 언어에 이와 비슷하게 강자를 비난하는 표현이 있다. 대중은 성경의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눕힌 이야기나 복싱 영화 '로키'에 열광하고 신데렐라 같은 반전(反轉) 동화나 드라마에 매료된다.

왜 그런가. 저자는 누구나 겪는 성장 과정에서 체득된 습성 같은 것이라 설명한다. 우리는 작고 무력한 상태에서 크고 힘 있는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다. 그 과정에서 약자의 기분을 느껴봤고 힘센 존재에 의한 피해 의식을 키워왔다. 언더도그마는 일종의 동병상련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인 것도 같은 이치다. 언더도그 아마추어가 메이저 음반사와의 계약을 꿈꾸며 열창하는 모습에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정작 우승자의 음반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뉴스에서도 무명이 일약 스타가 되거나 유명인이 추락하는 기사가 단연 인기다. 오늘날 '악당'은 부자와 권력자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3등석의 가난한 청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은 여주인공의 사랑을 받는 반면, 1등석의 부유하고 괴팍한 사람들은 구명보트를 차지해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물에 빠져 죽게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정치인들이 서민 점퍼를 입고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드골은 "정치인은 주인이 되기 위해 하인의 자세를 취한다"고 했다.

언더도그마는 이제 전통적인 좌-우 이념을 대체해 우리 시대 쟁점을 보는 기준이 됐다. 문제는 언더도그마가 '주의(ism)'로 고착될 때다. 약자는 어떤 행동을 해도 무조건 정당하고 강자는 어찌 됐건 조롱의 대상이 된다. 언더도그마가 판치는 곳에 음모론도 기승이다. 강자는 흔히 음흉한 '빅 브러더'로 묘사된다.

이 언더도그마를 어찌할 것인가. 저자는 누그러뜨리거나 껴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약자를 잘 다독거리고 격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 스스로는 비이성적인 언더도그마에 대해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연료로 굴러간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파머 지음|김찬호 옮김|글항아리|328쪽|1만5000원

극좌·극우는 늘 존재… 70%의 열린 마음이 공동체를 이끈다

앞에서 말한 ‘언더도그마’는 이 책에서는 마음이 병든 상태로 분류된다. 마음이야말로 그동안 무시돼온 민주주의의 인프라다. 따라서 고장 난 민주주의를 되살리려면 마음의 습관부터 재건해야 한다.

마음이 병든 것은 내적인 공허함 때문이다. 그 결과 거짓되고 해로운 의미 체계에 쉽게 현혹된다. 광고를 앞세운 소비주의가 하나, 다른 하나가 ‘희생양 만들기’다. 그 점에서 저자는 이 시대의 정치를 ‘상심한(brokenhearted) 자들의 정치’라 부른다. 정치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분파적이고 양극적이 되어 모두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마음이 지닌 힘을 믿는다. 모범 답례로 제시되는 것은 뜻밖에도 저자가 뉴욕에서 조우한 택시 기사의 말이다. “어떤 손님이 탈지 전혀 알 수 없지요. 그래서 조금 위험하기는 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을 만날 수가 있어요. 거기에서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답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면 도움이 되지 상처가 되지는 않아요. 대중은 늘 신선하지요.”

저자는 이 택시 기사야말로 민주시민의 덕목인 개방성과 당당함, 겸손함을 겸비했다고 본다. 민주주의도 같다. 서로간에 많은 차이에도 불구, 다양한 사람과 만날 기회를 얻고 타인들이 내 삶을 풍부하고 활력 있게 만들어준다는 믿음 속에서 배우며 앞으로 함께 나아간다. 타자를 두려워하거나 악마화하지 않고 차이가 빚어내는 긴장을 끌어안아야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갈등을 연료로 삼는 발전소가 민주주의다.

인간이나 정치의 본성 탓에 도저히 대화 불능인 사람들도 늘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대화해도 합의에 이를 수 없는 사람들이 좌·우파에 각각 15~20% 정도 있다. 1787년 미국 제헌회의에서도 55명 대의원 중 39명만 최종 문서에 서명했다. 30%는 동의 못한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60~70%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란 얘기다. 이 정도면 민주주의가 곤경을 벗어나는 데 충분하다.

저자는 오늘날 정치인들이 언어폭력의 수위를 높이며 몸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고, 그들이 매일 걸어서 출근하면 좀 더 나은 지도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모습은 의회나 정치권이 아니다. 거리의 카페이고 공원이고 광장이다. 이곳에서는 낯선 사람들이 눈인사하고 대화를 주고받는다. 저자는 이런 시민들의 접촉과 대화, 유대감을 키워갈 수 있는 공간을 의식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두 책은 마치 사전에 역할 분담을 한 것처럼 동일한 실체의 앞뒷면을 조명한다. 고장 난 대중 민주사회를 앞에 두고 어떤 진단과 처방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인가, 읽는 내내 숙고하게 된다. 둘 중 어느 하나를 덮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 그런 점에서 두 책은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그렇듯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전병근 기자 bkj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