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조작을 권하고 연출을 원하는 사회 ´왜?´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9:13

<김헌식 칼럼>조작을 권하고 연출을 원하는 사회 ´왜?´

 2010.10.30 08:31

 




[김헌식 문화평론가]연인이 처음 만나서 하는 일은 분위기 좋은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이나 향기로운 차를 마시거나 극장이나 공연장, 전시회에서 좋은 작품을 접하는 일이다. 놀이 동산이나 테마 파크, 축제나 페스티벌에 참여하기도 한다. 모두 경험(Experience) 혹은 체험을 하는 일이다. 체험은 곧 추억이 되고 추억은 디즈니동산처럼 하나의 또 다른 상품이 되어 지속적으로 소비된다. 체험은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문화상품이나 문화산업을 움직이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자연환경을 감상하는 등과 같이 있는 그대로를 겪어내는 것과 달리 대부분의 체험의 대상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관광 상품으로 개발한다는 표현은 자연환경 자체에도 인간의 손이 미쳤음을 의미한다. 결국 사람들은 대상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 있고 그 상태에서 체험을 즐기고자 한다. 허구의 상황임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체험을 통해 자신이 목적으로 한 경험적 심리 상태를 얻으려고 한다. 경험적 심리상태는 즐거움일 수도 카타르시스를 통한 마음의 정화일 수도 있다. 위안과 치유도 결국 이러한 심리적 경험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허구가 가짜이기 때문에 나쁘거나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조지프 파인(B. Joseph Pine II)은 < 체험의 경제학 > (The Experience Economy)에서 체험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다. 이 책은 당연히 체험의 중요한 경제적 의미와 그 상황을 전달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런데 이 체험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 혹은 수단으로 연출이나 연기를 매우 많은 부분에 걸쳐서 설파한다. 이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개념이 되겠다. 

기존의 체험은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를 가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체험은 일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드러날 수 없다. 일상 깊숙하게 연출과 연기가 개입되어 있다. 인생 자체가 연극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 누군가 그 삶에 개입해서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용인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런 극적 연출을 통해서라도 무엇인가 색다른 경험을 하겠다는 것이 현대인들이다. 가상과 실제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무엇인가 얻으려 하는 것이다. 

이를 말해주는 영화가 바로 < 시라노; 연애 조작단 > 이다. 행위 역할이론(Role Theory in Action)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각자 맡은 역할에 맡게 행동하는 것이 사회구성원이다. 그러한 구성원들의 역할은 하나의 연극과도 같을 수도 있다. < 시라노; 연애조작단 > 의 활동은 일정한 역할을 배분하고 그것을 하나의 연극과 같이 수행해 낸다. 하지만 그 역할들은 시시때때로 뒤바뀐다. 누가 가상의 상황 속 아바타인지, 누가 조종자인지 뒤집힌다. 다만, 목적은 분명하다. 

연애에 서툰 사람들의 사랑을 완성시켜주는데, 의뢰인은 연애조작단의 말을 마치 아바타가 되어 따라야 한다. MBC < 뜨거운 형제들-아바타 소개팅 > 에서도 비슷한 컨셉이 확인된다. 소개팅녀 앞에서 명령하는 사람의 말대로 해야 한다. < 시라노; 연애조작단 > 에서는 진지함과 코믹스러움이 엎치락뒤치락하지만 < 뜨거운 형제들 > 에서는 내내 즐거움과 폭소가 유도 된다. 더구나 이미 출연자들은 가상의 설정 상황을 이미 알고 임한다. 중요한 것은 체험이고 그 체험에서 느껴지는 본질과 진심을 읽어내려 한다. 

< 시라노;연애조작단 > 의 여자주인공도 결국 꾸며진 상황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곧 그 아바타같은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또 다른 여성은 모든 것이 가상의 상황, 꾸며진 연애설정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엄청난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두 여성에서 차이는 남성에게서 나타난다. 한 여성의 남성은 끝까지 자신의 사랑을 유지했다. 하지만 다른 남성은 그 사랑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만다. 영화의 내용만 보자면, 그 남성은 자신의 진심을 잃었다. 그래서 여성이 연애를 꾸며낸 조작단에 분노하게 된다. 조작이란 결국 본질 혹은 진실이 있을 때 그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가상의 상황에서나 실제의 현실에서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본질일 것이다. 그것이 허구이건 진짜이건 그 가운데를 관통하는 '진실'이 있다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연출이나 연기, 나아가 조작하는 것은 바로 본질이나 진실 그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외양이다. 당의정을 입은 쓴 알약일 수도 있고, 먹기 좋은 물약일 수도 있겠다. 체험의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점일 것이다. 그럴 때 즐거움과 웃음이 의미가 있는 것이겠다. 국가 주요 리더에게 바라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 지금이다. 어떤 경험과 체험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는 본질과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