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슈스케2´ 허각 우승, 대중민주주의 승리이자 과제
2010.10.26 09:57
[김헌식 문화평론가]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루스벨트가 공화당 후보 랜던에게 패한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개표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열세였던 루즈벨트가 강력한 당선 후보자 랜던을 이겨버린 것이다. 이 선거 사례는 언더독 현상을 설명할 때 즐겨 사용되고는 한다.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는 이길만한 사람을 지지 하기보다는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이를 지지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약자를 지지해서 결국 승리자로 만든다. 그래서 숨겨진 승리자라는 말도 같이 따라붙는다. 이와 반대로 이길만한 사람을 밀어주는 현상은 편승효과라고 규정된다. 이를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라고 일컫는다. 사람들이 음악대에 몰려든 사람을 보고 다시 모여들어 큰 흐름을 이루듯이 이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에 편승하는 군중심리 현상을 말한다.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개표결과 주요 언론사나 여론조사기관의 사전 여론조사는 어김없이 빗나갔다. 2010년 지방선거에는 이른바 ´언더독 효과´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었다. 선거 1주일 전 발표한 여론조사와 실제 득표율의 차이가 너무 크게 나타났다. 여당이 압승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야당의 선전이었다. 이 때의 언더덕 효과 주장은 될 만한 사람들을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동정표, 연민표가 작용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최근 끝난 < 슈퍼스타K 2 > 결과에도 밴드웨건 효과가 아니라 언더독 효과가 나타났다는 분석이 있다.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존 박은 이른바 꽃미남으로 예선에서 결승까지 승승장구했다. 지난해에도 결국에는 외모가 뛰어난 후보가 우승했었기 때문에 대세는 존 박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허각이었다. 그는 얼굴이 꽃미남이 아니고 몸도 그렇게 빼어나지는 않다. 하지만 가창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허각이 우승하게 된 분석 가운데 아저씨들이 허각을 지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여성과 아저씨로 대결을 몰고 간 것이지만, 허각에게 동정 혹은 연민의 표가 작용했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허각의 가족사가 크게 감정을 동요시켰다. 사실 이 부분은 노래실력과는 관계가 없다. 허각에 대한 동정적 지지는 자발적인 공유감이 무의식적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슈퍼스타 K > 의 명분은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외모가 부족하다고 떨어지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다. 그 불공정을 참지못하고 바꾸려는 행태가 집단적으로 가능했던 것 즉, 허각의 우승은 문자 투표 반영비율이 60%나 되기 때문에 능히 가능한 일이었다. 2010년에 허각이 우승을 함으로써 내년에는 수많은 지원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의 슈퍼스타 K의 흥행은 내년까지도 담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언더독 효과가 우승한 사람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기는 힘들다. 우승자는 대중가수로 활동하게 되는데 그 활동의 영역은 철저한 상업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상업의 공간에서는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으로 버틸 수만은 없다. 뭔가 빼어난 결과물을 항상 보여주어야 한다. 언더독 효과로 정치에 진입한 정치인들이 급격한 지지자 이탈을 낳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폴 포츠를 많이 언급하지만, 과연 허각이 같은 비교의 대상인지 따져 볼 필요는 있다. 한국의 대중가요시장은 영국과는 많이 다르다. 환경적 요건을 고려하는 것은 한국인의 심리와도 맞닿아 있겠다.
이준익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이 루저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루저 영화를 계속 만든다고 했다. < 슈퍼스타 K > 를 움직이는 심리는 바로 강자를 이기는 자신들의 대표자 '약자의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한국인들은 유난히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한다. 그것은 나라 자체가 약자의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2010년 < 파이낸셜타임스 > 는 "한국은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니다"(South Korea is no longer the underdog, FT 2.25)라는 지적을 한 바가 있다. 약소국은 아닐지언정 아주 강자는 아닐 것이다. 여하간 한국사회에서 약자의 심리는 한국의 사회문화, 경제, 정치적 현상을 분석하는 데 중요하다. 다만, 약자에 대한 배려와 포용은 훌륭한 미덕이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옳은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언더독 현상은 비합리적인 판단과 행위를 낳을 수 있으며 장기적이지 못한 한계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그 사람을 위하는 행동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정치와 정책에서 부메랑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밴드웨건 효과도 그렇지만 언더독 효과로 스타가 되는 이들이나 정치계에 등극하는 이들의 근본적인 한계이자 화두가 되며 이는 대중민주주의의 과제이기도 하다.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는 이길만한 사람을 지지 하기보다는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이를 지지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약자를 지지해서 결국 승리자로 만든다. 그래서 숨겨진 승리자라는 말도 같이 따라붙는다. 이와 반대로 이길만한 사람을 밀어주는 현상은 편승효과라고 규정된다. 이를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라고 일컫는다. 사람들이 음악대에 몰려든 사람을 보고 다시 모여들어 큰 흐름을 이루듯이 이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에 편승하는 군중심리 현상을 말한다.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개표결과 주요 언론사나 여론조사기관의 사전 여론조사는 어김없이 빗나갔다. 2010년 지방선거에는 이른바 ´언더독 효과´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었다. 선거 1주일 전 발표한 여론조사와 실제 득표율의 차이가 너무 크게 나타났다. 여당이 압승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야당의 선전이었다. 이 때의 언더덕 효과 주장은 될 만한 사람들을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동정표, 연민표가 작용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최근 끝난 < 슈퍼스타K 2 > 결과에도 밴드웨건 효과가 아니라 언더독 효과가 나타났다는 분석이 있다.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존 박은 이른바 꽃미남으로 예선에서 결승까지 승승장구했다. 지난해에도 결국에는 외모가 뛰어난 후보가 우승했었기 때문에 대세는 존 박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허각이었다. 그는 얼굴이 꽃미남이 아니고 몸도 그렇게 빼어나지는 않다. 하지만 가창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허각이 우승하게 된 분석 가운데 아저씨들이 허각을 지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여성과 아저씨로 대결을 몰고 간 것이지만, 허각에게 동정 혹은 연민의 표가 작용했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허각의 가족사가 크게 감정을 동요시켰다. 사실 이 부분은 노래실력과는 관계가 없다. 허각에 대한 동정적 지지는 자발적인 공유감이 무의식적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슈퍼스타 K > 의 명분은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외모가 부족하다고 떨어지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다. 그 불공정을 참지못하고 바꾸려는 행태가 집단적으로 가능했던 것 즉, 허각의 우승은 문자 투표 반영비율이 60%나 되기 때문에 능히 가능한 일이었다. 2010년에 허각이 우승을 함으로써 내년에는 수많은 지원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의 슈퍼스타 K의 흥행은 내년까지도 담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언더독 효과가 우승한 사람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기는 힘들다. 우승자는 대중가수로 활동하게 되는데 그 활동의 영역은 철저한 상업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상업의 공간에서는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으로 버틸 수만은 없다. 뭔가 빼어난 결과물을 항상 보여주어야 한다. 언더독 효과로 정치에 진입한 정치인들이 급격한 지지자 이탈을 낳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폴 포츠를 많이 언급하지만, 과연 허각이 같은 비교의 대상인지 따져 볼 필요는 있다. 한국의 대중가요시장은 영국과는 많이 다르다. 환경적 요건을 고려하는 것은 한국인의 심리와도 맞닿아 있겠다.
이준익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이 루저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루저 영화를 계속 만든다고 했다. < 슈퍼스타 K > 를 움직이는 심리는 바로 강자를 이기는 자신들의 대표자 '약자의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한국인들은 유난히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한다. 그것은 나라 자체가 약자의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2010년 < 파이낸셜타임스 > 는 "한국은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니다"(South Korea is no longer the underdog, FT 2.25)라는 지적을 한 바가 있다. 약소국은 아닐지언정 아주 강자는 아닐 것이다. 여하간 한국사회에서 약자의 심리는 한국의 사회문화, 경제, 정치적 현상을 분석하는 데 중요하다. 다만, 약자에 대한 배려와 포용은 훌륭한 미덕이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옳은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언더독 현상은 비합리적인 판단과 행위를 낳을 수 있으며 장기적이지 못한 한계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그 사람을 위하는 행동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정치와 정책에서 부메랑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밴드웨건 효과도 그렇지만 언더독 효과로 스타가 되는 이들이나 정치계에 등극하는 이들의 근본적인 한계이자 화두가 되며 이는 대중민주주의의 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