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헌식(중원대학교 사회문화대학 특임교수, 정보콘텐츠학 박사, 평론가)
이해준 감독의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김정연(정려원)은 자기만의 좁은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3년째.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고 관계의 단절을 철저하게 지켜왔다. 이른바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다. 오로지 하는 일이라면 한강을 보는 일. 그러던 가운데 아무도 보지 않는 밤섬에 갇혀 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막대한 빚을 지고 자살하려 한강에 뛰어든 김승근(정재영)은 밤섬에 표착하게 되는데 이제 마음이 달라졌는지 구조를 애타게 원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보는 이는 없다. 그 때문에 김정연은 마침내 집 밖으로 나오게 되고, 그를 구하는 데 크게 이바지를 한다. 영화는 매우 낭만적이고 희망에 찬 결말로 끝났다.
영화 ‘그녀’에서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가뜩이나 사람들과 만나지 않는 그는 오로지 사만다와만 대화를 나눈다. 다른 사람과 만나서 느끼지 않은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어떤 말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언제든지 마음에 드는 말을 건넨다.
다만,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8166명의 사람과 동시에 대화를 나누고, 수백명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말에 놀라고 당황하고 만다. 사람은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찾기 때문이다. 그녀라는 말 자체가 은어로 나만의 애인을 뜻한다.
영화 ‘그녀’의 시간적 배경이 2025년인데 2024년에 이르러 사만다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인공지능 서비스가 상당한 수준이 올랐다. 혼자 지내야 하는 사람들 노인이나 장애인은 인공지능 서비스 특히 대화형 AI가 상당히 외로움과 좌절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단 사회적 약자만이 이런 인공지능 서비스가 필요하거나 몰입하는 것은 아닌 상황이다. 바로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CNN은 최근 동아시아에서 시작한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유럽과 북미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물론 일본 한국 홍콩에서 특히 심각하다고 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을 언급했다. 하나는 성과주의 사회 풍토, 젊은 세대의 완벽주의, 그리고 핵가족화 때문이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심해졌다는 것. 이를 풀어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과주의는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물 중심의 평가를 말할 수 있는데, 사회적인 평가를 의미한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사회진출에서 어떤 직업을 갖는지가 중요해진다. 흔히 자랑할 만한 직업군이 될 것이다. 즉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주변에서 인정하는 직업군이 목표가 된다.
예컨대 고액 연봉자나 대기업 취직, 의사, 변호사 등등을 말할 수 있다. 이런 목표를 이루지 못할 때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좌절한다. 젊은 세대의 완벽주의는 이런 목표의 달성에 집중하는 현상이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는데 그에 따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반대로 어린 시절부터 높은 수준을 요구받던 그들은 이전 세대보다 나은 게 없다. 이런 와중에 어려움이나 고민에 빠졌을 때 대화할 사람조차 없는 상황이 된다. 따라서 사이버 공간으로 빠져들어 간다.
그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재난이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비자발적으로 갇히게 된 사람들은 비대면 문화에 익숙해졌고 은둔형 외톨이 현상 자체가 이에 묻혔다. 코로나19 엔데믹이 이뤄지면서 다시금 부각이 되는 셈이다.
코로나19 엔데믹에도 청년들은 방 안에서 비대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 모바일 서비스는 이에 더 적합하게 되었다. 인공지능 서비스도 하나의 예이다. 챗GPT는 모르는 게 없고 더 완벽하다. 그러니 더욱 다른 사람이 필요가 없을듯싶다. 더구나 이용자의 원하는 바를 잘 맞춰줄 것 같다. 은둔형 외톨이 청년 문제는 사회적 화두일 수밖에 없는데 인공지능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CNN은 인구 고령화, 출산율 저하, 노동력 감소에 따라 각 나라가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의 사회 재진입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 인공지능이 이바지할 수 있을까?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서비스는 그들에게 맞춤식 상품을 시도한다.
하지만 인공지능 서비스가 단순히 그들의 대화 상대로 실내 공간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세상 밖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하겠다. 공공적인 역할과 유도가 정책적 제도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영화 ‘김씨 표류기’와 영화 ‘그녀’의 융복합을 생각할 수 있다.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알아주고 그들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존재적 가치를 찾을 수 있게 보조하는 인공지능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인공지능은 모든 것을 다 처리해 주는 해결사이기에 과연 얼마나 청년들에게 성취감과 만족감을 줄지 알 수 없다. 오히려 좌절감과 무력감을 줄 가능성이 크다. 대신 자기 방 안에 갇힌 채 빅테크의 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이 될 위험이 큰 것이다. 영화 ‘세상밖으로’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