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스타가 결혼한다면, 스타가 KAIST에 다닌다면, 스타가 평범한 사람이 된다면?
MBC ‘무한도전’, KBS2 ‘1박2일’을 비롯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인기가 주춤해지면서 스타들에게 가상 상황과 역할을 설정해주고 행동을 지켜보는 ‘버추얼(Virtual)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줄을 잇고 있다.
설 연휴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일 오후 5시 반)의 한 코너로 자리 잡은 ‘우리 결혼했어요’는 알렉스-신애, 정형돈-사오리, 앤디-솔비 등 네 쌍의 커플을 부부로 내세워 젊은 층의 연애 법칙을 들여다보는 ‘스타웨딩 이벤트’를 내세웠다. 오락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인 ‘짝짓기’의 가상 버전인 셈이다.
SBS ‘일요일이 좋다’(일 오후 5시 반)의 ‘체인지’는 ‘스타가 일반인이 된다면’이라는 설정으로 이효리 장나라 등이 일반인처럼 분장하고 나와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미팅을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케이블채널 Mnet ‘서인영의 카이스트’(목 오후 11시)에서도 쥬얼리의 서인영이 KAIST 청강생이 되어 수업을 듣는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출연 스타들에게 일정 역할을 주고 그에 맞춰 일상의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게 특징이다. ‘무한도전’이 ‘스타’의 성격을 전면에 드러내는 데 반해 ‘우리 결혼했어요’ 등은 가상 상황이나 역할을 내세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연출을 배제한 무형식의 리얼 버라이어티가 리얼을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짜인 각본과 연출에 따라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포맷에 식상해진 시청자들은 차라리 가짜라는 틀 속에서 스타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는 것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민소라(26) 씨는 “자기가 정한 캐릭터에 따라 집을 짓고 결혼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마치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심스’ 같다”고 말했다. 일부 시청자도 “각본에 따라 연기를 하는 짜 맞추기 시트콤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버추얼 버라이어티’ 속 스타의 모습이 실제인지 설정인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특히 ‘우리…’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6일 방영분에서 함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러 온 사오리를 버리고 농구 게임을 한 남편 정형돈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전성호 PD도 “처음엔 부부 가상 게임으로 시작했으나 출연자들을 비롯해 시청자들도 진짜 결혼했는지 방송인지 헷갈린다는 말을 한다”며 “출연자의 태도도 ‘내가 결혼하면 어떨까’에서 ‘결혼한 내가 어떻게 행동할까’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에서 어디까지가 가상의 설정이고 어디까지가 실제 상황일까.
하루 24시간 가상 부부들의 생활을 관찰하는 ‘우리…’는 지난달 30일 방영분에 카메라맨이 살짝 엿보이고 “실제 같은 아침 기상 장면을 찍기 위해 출연자들이 촬영 1시간 전 눈을 붙인다”는 설명이 나오기도 했다. 제작진은 “스케줄 때문에 하루 일과를 완벽하게 일상처럼 재현할 수는 없다”며 “제작 과정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