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남긴 것, 길티 플레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5. 1. 12:25
수많은 매체들은 시청률만 나오면 대중추수주의를 보인다.
즉 시청률이 많이 나오면, 그것에 무슨 큰의미가 있는 것처럼 분석해내는 것이다.
'아내의 유혹'이 기존의 드라마 문법을 파괴했다는 지적은 어불성설이다.

 '아내의 유혹'은 드라마가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것으로 이는 후반부로 갈수록 심했다.
막장 드라마의 심리는 많이도 분석했다.
'이게 무슨 드라마야' 라며 보는 것이 길티 플레저 심리다.
단순히 자극적인 내용만이 주요인은 아닐 것이다.
보지 말아야하지 하면 더 보게 된다.
일종의 억합과 그에 따른 강화된 리액션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시간대를 앞당겨서 시청자의 외연을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직장인들도 많이 보는 드라마였다.
정말 보고 싶어서 보는 드라마는
아니라 의미없이 눈길을 주는 드라마였다.
워낙 그악스러우니까.
똑같은 시간대에 사람들은 티브에 눈길을
주고 있는 대한민국인은 너무나 많다.
일일드마마처럼 늘어지는 것도 이제는 올드하다.
하루는 힘든 노동속에 금방 간다.
어제의 식사시간은 방금전의 저녁식사 같다.
따라서 전개의 쾌속 질주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컨대, 한참 식당이 붐빌 시각에 '아내의 유혹'은 시작했고,
식사를 마치고 담배 한대 필 타이밍까지 방영했다.
정작 이러한 시청률의 행태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인들이
많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찍 퇴근을 하지 못하고,
식당에서 공공장소에서
'아내의 유혹'을 시청했다는 점이다.
그곳에서 멀거니 아무 의미없는
자극적인 내용에 하루간의
스트레스는 복수극에 몰입했다.
복수극에서 주인공은 자신이고
대상은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골치 아프게 한 민원인일 수도 있다.

집에 있는 이들은 어떤가.
7시에 집에는 아무도 없다.
그때 귀가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그 공허함 속에서 인생에 대한 복수는
자신을 그렇게 허허롭게 만든 이들에게
관념적으로 가해진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자면
'아내의 유혹'은 만화드라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친 찬사도
엄혹한 혹평도 의미가 적다.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간지럽힐 때
내용도 좋고 주제도 좋지만
시청률 때문에
수많은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고 싶다.
'아내의 유혹'은 무슨 드라마 발전에 기여했나.
말이 되나 결말이 화해라니.
김수현식 작법이 여기에서도 등장한다.
한참 부풀려 놓고 뜬금없이 봉합.
그래, 먹고 살기 위해 영합했을 뿐.
'더 리더'의 한나처럼

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