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고상함의 시대는 갔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9:50

고상함의 시대는 갔다



불황기엔 원초적 감성을 자극하라~.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대중문화계는 원초적이고 충격적인 소재의 콘텐츠를 속속 내놓고 있다. 고상하고 새롭고 실험적인 내용보다는 강박적이고 극단적이며 복고적인 내용에 기대고 있다.

지금 영화계는 ‘뭘 해도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어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낯선 콘텐츠보다는 충격을 담고있는 소재로 일단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의존하게 되는 것은 섹슈얼리티와 동성애 같은 금기다. 이런 소재는 대중과 학계, 사회단체들의 논란을 불러일으켜 ‘노이즈 마케팅’을 가능하게 한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두 명의 남편과 살면서도 죄의식 없는 여자를 그리고 있고, ‘미인도’는 남자인 신윤복을 여자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모자라 신윤복과 김홍도가 높은 수위의 정사를 나눈다는 설정도 파격적이다. 조인성과 주진모의 동성애로 관심을 끄는 ‘쌍화점’을 비롯해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소년 소년을 만나다’ 등 동성애 코드가 담긴 영화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은 “고상함의 시대는 갔다. 사람들의 관심은 먹는 것, 섹스, 찌질한 것 같은 곳으로 기울게 된다”면서 “동성애 영화들도 동성애의 본질을 천착하지 않고 동성애의 외피를 빌어 몸과 섹스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성적인 코드를 강하게 담고있는 ‘미인도’도 불황기가 아니었다면 덜 화제가 됐을 것이다”고 말한다.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이도학 교수도 “신윤복을 여자로 만들고 신윤복과 김홍도가 정사를 나누는 것은 충격과 변화를 갈구하는 불황기 대중의 심리와 부합한다”면서 “이에 편승해 역사적 사실을 뒤집는 행위가 자주 나올 수 있다. 역사속 충신을 역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역적을 충신으로 설정하는 식의 역사 뒤집기가 잦아질 것이다”고 주장한다.

최근 열린 ‘2008 Mnet KM 뮤직페스티벌’에서 빅뱅의 탑과 이효리가 예상을 뒤엎고 ‘깜짝 키스’를 나눈 것도 대중에게 충격을 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이벤트다.

꽃미남들이 등장해 대중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문화상품들이 사라진 것도 불황기 대중문화계의 특징이다. 판타지는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소비되는 목록이다. 경제위기로 공포심에 눌려있는 대중은 판타지를 즐길 여유가 없다.

효용가치보다는 감성이 우선시되는 복고상품이 불황기에 먹히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MBC ‘에덴의 동쪽’ 같은 선 굵은 남성 신파극은 호황기라면 용도 폐기된 콘텐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 절절한 형제애, 복수 등 ‘복고 종합상자’의 강한 소재가 불황기에는 흡인력을 발휘한다.

서병기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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