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덕만의 남자들이 이상하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9. 29. 10:08

비담은 여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청률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비담은 이상 성격의 남자로 부각되었다. 나중에 상대등으로 선덕여왕에게 반란을 일으킨 자이기 때문에 그점에 초점을 맞추려면 그럴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착취적 나르시스트이기 때문이다. 선한 심성의 주인공은 아니기 때문에 시청자는 그에게서 멀어진다. 중요한 것은 연출과 대본이 그를 오락가락하게 그려내고 있다. 악인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결코 미워할 없는 악인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마땅한 명분이 없다. 오락가락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캐릭터에 긍정적으로 몰입하기가 버겁다. 그것은 김남길의 연기와는 별개의 문제겠다.

한편 김춘추는 훈남으로 등장했다. 그의 캐릭터를 생각하자면 드라마의 시청률을 높여줄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는 가식적인 웃음을 지닌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야욕을 숨기며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려는 권력 지향형 성격을 보여준다. 그의 순수하지 못한 이중적인 행태는 오히려 실망감을 준다. 나중에 덕만이 그를 품겠지만, 순수한 심성으로 옳은 일을 추구하는 캐릭터는 아니게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다.

문노의 캐릭터 만큼 허허롭게 구축된 것도 없다. 더구나 허망한 죽음은 몰입감을 떨어뜨린다. 그는 비담에 대한 입장과 평가에 확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오락가락하다가 맥 없이 죽는다. 그가 국선으로 선덕여왕에 대해서 확실한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자신 혼자만의 고민을 하다가 쓸쓸하게 퇴장했다. 비담에 대한 태도는 국선이라는 비범한 인물에 맞지 않았다. 더구나 덕만에 관한 계시를 받은 이가 덕만을 불신하고 덕만을 시험하다가 자신의 생각에만 빠져있는 상태에서 암살당하니 좋은 소스를 제발로 찬 격이다.

김유신은 어떨까. 그는 결국 자기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 덕만에게서 따나갔다. 명분이야 덕만과 대업을 위한다는 것이었지만, 결국 말을 갈아탔다. 아니 어차피 김유신을 우직한 인물로 그려내는 것이 맞지 않았다. 그만큼 처세를 잘한 이는 한국 역사상 드물다. 그런 인물에게 애써 의미부여를 하니 무리가 따르며 이는 대중의 기존 인식체계를 위반하는 것이며 몰입감을 떨어뜨린다.

이제 우직한 덕만의 남자들은 거의 없었다. 덕만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감정이입할 수 있는 계제가 없다. 더구나 알천랑과 같은 인물도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에게 멋진 남자들이 몰려들어 수호천사의 역할을 해주며 덕만의 꿈을 실현시켜줄 것같은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에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분위기가 모두 깨졌다. 그런 가운데 덕만 공주의 영향력이나 위치도 애매해졌다. 더구나 궁에서 모습은 김춘추에게 그 중심축이 이동했다. 덕만이 갑자기 모호해졌다. 김춘추는 왜 갑자기 이렇게 큰 중심무게를 갖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장기화되는 것은 극의 집중화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김춘추를 통해 여성 시청자의 관심을 끌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김춘추라는 캐릭터를 선한 캐릭터가 될 수 없다. 김유신이나 김춘추의 공통적인 점은 여기에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비담의 등장이 선하고 멋진 남성 캐릭터로 궁금증과 몰입감을 증대시켰지만, 이제 비담은 그 효용력을 상실했다. 

결국 드라마 '선덕여왕'은 산만하고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형태로 서사구조를 끌어가고 있다. 어린 김춘추의 등장은 나중에 덕만에 협력하는 큰 복선을 위해 박아두었겠지만, 당분간 이대로는 고충의 대상이 될 것이다. 덕만이 김춘추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단지 몇마디 말이 아니라 덕만이 온갖 고통과 난국을헤쳐온 삶의 지혜속에서 나와야 한다.

물론 선덕여왕이 이런 남자들의 힘으로 시청률을 올린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미실과 선덕의 대결이 긴장감 있게 진행되지 못하고, 소강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몰입감을 증대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긴장감 있는 덕만과 미실의 대결 소스마저 떨어진다면 시청률은 더 떨어질수밖에 없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