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꿀벅지 없는 천추태후, 아쉬운 고려의 매력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9. 27. 18:08

-고려의 일상사에서 여성의 리더십은 어떠했을까?

‘꿀벅지’는 꿀과 허벅지의 합성어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한 신조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성희롱이라는 말이 나왔다. 꿀 맛나게 맛있는 허벅지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꿀벅지’라는 호칭을 들은 여성이 비판적으로 문제제기한 사람이 무안하게 허벅지라 불리는 것을 고마워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러한 호칭이 대중적 주목의 신호로 혹은 팬들의 지지로 받아들여진 것인가. 성적 눈요깃감이 되어서 일단 대중적 주목을 받아야 하는 것이 연예인들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그냥 넘기기에는 씁쓸한 면이 있다. 가장 허약한 시각을 이용해 이런 비본질적을 것에 집착하고, 여성의 상품화를 반대하는 선의의 목소리마저 상품화에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적 대상화에서 벗어나 여성의 전인격성 나아가 주체적인 능력을 더 탐색하려는 노력은 대중매체의 대표 격인 텔레비전에도 있었다. 최근 여성 사극이 이에 해당한다.

 

그 가운데 하나인 <천추태후>가 종영에 이르렀다.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데는 많은 역량이 소요되는데 적어도 여성을 피동적인 성적 대상이 아니라 역사를 움직인 위인으로 여성을 그리려고 노력했던 점은 평가해 주어야 한다. 천추태후는 남자들의 시선이나 자극하는 대상물로 전락한 여성주인공은 거리가 멀다. 너무 적극적이어서 김치양의 난을 불러왔는지 모른다.

 

천추태후는 처음부터 허벅지를 내놓거나 장신구에 분 냄새를 풍기기보다는 활과 창을 들고 피비린내 나는 전장 터를 누비거나 권력싸움의 한가운데에 서서 정치를 좌지우지 한다. 사실 드라마 <천추태후>는 기대하는 바가 컸다. 이는 천추태후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과 개연적 상상력을 기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려사회가 가지는 의미 때문이기도 했다. 고려는 귀족 사회였지만, 여성은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했고,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았다. 따라서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이야기도 많다. 여성이 성적 대상화가 되기보다는 남성이 그러한 위치에 처할 판이었다.

 

이같은 맥락에서 <천추태후>는 그러한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고려 여성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기상보다는 천추태후 자체에만 그러한 기질이 모아졌다. 개인에게 모아지니 결국은 고려의 사회와 문화는 거세되었다. 일상사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복장과 등장인물만 고려이지 고려만의 풍속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또한 200년 고려의 기틀을 잡은 천추태후의 실질적인 집권기의 치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집권과 위기, 그리고 다시 복위의 과정에만 집중했다. 단지 만족해야하는 것은 유교주의자들이 왜곡된 천추태후의 재복원이었다. 한편 요나라의 등장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 거란과 고려의 대결구도에 몰아넣은 것은 민족주의적 감정에 기댄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예상치 못하게 분산효과와 감쇄효과를 낳았다. 우선 천추태후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고려와 요나라의 대결에 너무 많은 분량이 집중되었다. 압축적 서사전개와 인물의 간략성이 대세인 사극트렌드에도 맞지 않았다. 집중화에서 분산화가 이루어진 장쾌한 서사의 구성은 그 폭이 넓어진 만큼 천추태후에 쏟아져야할 힘이 감쇄되었다.

 

오히려 요나라 소태후(심혜진)의 카리스마를 더욱 부각하게 했다. 소태후는 무술이나 완력을 쓰지 않고도 동북아를 호령한 인물로 탄생했다. 오히려 천추태후보다 더 확실한 국정철학과 리더십을 보이는 존재가 되었다.

 

미안하게도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으로 천추태후를 복원하겠다는 열정과 의욕이 구체적인 형상력과 상상력을 앞선 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고려사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천추태후가 되는지 모른다. 고려 사회는 오히려 현대사회에 맞는 면이 많다. 이러한 점은 영화 ‘쌍화점’에서 착안된 것이기도 하다. 귀족사회는 화려한 패션과 장신구, 색감을 자랑한다. 이는 현대인들의 문화적 감각과 맞아떨어질 수 있는 부분이 크다. 여기에 고려사회는 상대적으로 남녀가 대등한 사회였고, 연애와 결혼이 자유스러운 면이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창작적 가능성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드라마 <탐나는도다>와 같은 퓨전사극은 아니라고해도 앞으로 고려사극은 궁 중심의 사극에서 벗어나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일상 미시사를 사극에 결합시키는 작업이 요즘의 시대적 특징이라면 고려사회는 조선보다는 더 자유로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 고려사회의 예술적 자유분방함은 제대로 그려진 적이 없으며, 심지어 고려 상인들의 방대한 스케일의 활동도 제대로 그린 적이 없다. 사극에서 고려하면 언제나 전쟁과 전투, 그리고 내란과 모반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드라마 <서동요>의 선화공주나 드라마 <선덕여왕>의 덕만과 미실, 그리고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를 생각해보면,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는 있는데, 미시사와 연결된 고려의 여성만이 비어있다. 그것을 천추태후가 조금은 채워주었지만, 아직은 디딤돌 수준이었다.

 

여성의 관점에서 고려를 해석한다면 훨씬 자유와 다양성을 담보하면서 현대와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 시대의 여성은 ‘꿀벅지’나 보여주는 대상화 된 존재는 아니었을 정도로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버거운 몸에 갖은 활극을 하면서 주체적인 여성을 만들어내는 사극 연출은 새로운 단계를 위한 토양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