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의 와중에 다시 개의 식용에 관한 논란이 연례행사처럼 불거졌다. 이를 다루는 언론 보도의 기사는 매년 반복돠다 보니 달라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보신탕 논란은 사실상 보양 문화의 변화에서 지엽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근본적인 변화의 구조와 흐름을 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 개는 현행 법체계에서 가축이 아니며, 보양 문화 때문에 마치 가축처럼 개와 관련한 음식점이 유지되고 있다. 개를 그냥 죽일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지만 식용 목적의 도살일 경우에는 규제법이 없다. 애매한 경계지역에 보신탕 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관련단체는 개의 식용을 합법화하려 했지만 진전이 없다. 목소리가 강해지는 것은 오히려 반대쪽이다.
↑ 지난 2014년 7월 11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동물사랑실천협회와 동물을위한행동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개식용금지를 위한 인도주의 행동연합' 회원들이 복날 먹는 개고기는 문화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밝히며 경동시장과 중앙시장 등 재래시장의 개도살장 패쇄를 촉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매년 복날 시즌이 되면 개식용에 관한 반대 운동을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변수는 애견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애견이라는 말처럼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로 생각하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보신탕의 재료로 개고기를 사용하는 행위가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적 흐름을 볼 때 개고기를 보양식으로 사용하는 비율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구 구성 비율로 볼 때, 개식용문화에 익숙한 세대는 점차 밀려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사회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음식 영양 공급의 환경이 바뀐 탓이다.
예전에는 몸을 쉽게 보양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개를 음식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먹을 거리가 곤궁했기 때문에 집안에 있던 개를 잡아야 했던 슬픈 운명에 있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영양보충을 할 수 있는 가축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육체 노동이 심했던 일반 사람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점이었다. 사실 복날이라는 것도 더운 여름날 체력 소진을 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개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복날에 먹은 음식에 개만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계탕이 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이도 결국 현대적인 관점에서 검토가 필요하긴 마찬가지다. 닭이 반려동물이라도 되었다는 것일까. 닭을 반려동물이 아니더라도 동물보호협회에서 적극 지키려는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닭은 가축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바로 영양 공급의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보양식에는 대부분 육류 고기가 사용되었다. 그만큼 동물성 단백질이나 지방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동물성 고기류는 평소에도 넘쳐난다. 오히려 이런 음식을 덜 먹어야 몸에 더 좋은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고기를 덜 먹는 날이 복날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식물성 식품을 통해서 몸의 영양 불균형을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
또한 개인에 따라 몸의 보양이 각자 달라져야 한다. 영양상태는 물론이고 체질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관념적으로 보양을 해야 한다는 집단적 문화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몸에 대한 보양이 의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재정립하는 것을 의미하며 보양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미 많은 관련 기업들이 이에 대한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이런 흐름속에서 단지 개고기를 복날에 먹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핵심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단지 추상적인 동물보호의 관점이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실용적인관점에서 무엇이 더 이득인지를 밝혀주고 이에 맞추어 보양문화를 바꾸어나가는 노력이 명분이나 실제관점에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점은 시간의 문제일뿐,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트렌드 가운데 있다. 관성적인 세시풍속의 음식 문화가 아니라 실제 자신의 몸을 더 생각하는 인식이 현대인들에게는 강하기 때문이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