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극 왜 전반적으로 저조한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24. 01:23
비용 대비 이익이 신통치 않다. 예전과 같은 대작 사극은 '천추태후'에 불과하지만, 다른 드라마메 비해 자명고나 돌아온 일지매는 제작비가 꽤 들었다. 사극이 범람하다시피 하는 가운데 그래도 어느정도의 시청률이 나와주었지만 요즘은 별스럽지 않다.

왜 일까?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었기 때문일까?물론 그러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특별한 것 없는 내용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을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사극들은 기본적은 서사구조에서 나름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대중의 욕구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명고'는 호동과 낙랑공주의 이야기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러함에도 호동과 자명공주라는 구도로 전개하고 있다. 더구나 호동과 자명의 로맨스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대중들이 기대하는 것은 바로 호동과 낙랑의 로맨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철저하게 대중의 기대를 저버렸다.  낙랑과 자명은 이름은 언급되지만,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가늠할수 없는 방향으로 간다. 더욱 중요한 결함은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부 이야기가 너무 오래 이어진다는 점이다. 더구나 중년 연기자들의 연기와 자극적이고 미세한 연출력들은 이 속에 묻히고 말았다.

대중이 보고 싶은 것을 저버린 사극으로 '돌아온 일지매'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고우영의 원작 일지매에 너무 충실해버렸다. 작품의 기획의도는 이해가 가지만, 만화적 호흡과 드라마의 호흡이 다르다는 점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영상의 호흡은 만화와 같이 그렇게 산만하고 느리지 않다. 더구나 만화 일지매 자체가 산만하고, 홍길동과 같이 단일하게 명쾌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지 못하다. 무엇보다 70년대의 호흡과 2009년의 호흡은 다르다. 또한 일지매를 통해 대중이 기대하는 것은 일지매 자체의 매력이다. 아래적과 의적이라는 컨셉이 황인뢰의 영상미와 어떻게 결합하는가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황인뢰는 대중을 저버리고 자기의 장면 연출력과 원작의 재현에 매몰되었다. 심지어 일지매에게서 기대했던 활극과 의적활동은 부각되지도 않는다. 또한 원작에 충실할때 생기는 문제는 또 있었다. 원작이 주는 자극적이고 전율적인 폭력들은 금기를 넘어서는 길티플레저와 냉혹한 현실을 일깨우지만, 공중파에서 이런 일지매의 성인만화적 묘미를 살리는 것이 역부족이었다.

'천추태후'는  두 가지 점에서 여전히 대중의 욕구를 저버렸다. 민족주의 관점에서 거란과의 갈등을 너무 많이 부각시키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천추태후의 활동을 너무 가상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심각한 문제도 있다. 너무 충실한 사극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픽션에 가깝기 때문에 어중간한 콘텐츠가 되어 버렸다. 더구나 지나치게 여성성을 내세우다 못해 남성성에 '천추태후'가 함몰되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도 남성도 즐결볼 수있을 장점이 없어져 버렸다. 여성이 칼을 들고 전장을 누벼야 적극적인 여성상인지 의문인 것이다. 그것은 또다른 가부장적 논리에 다름아니다. 더구나 자주적인 고려국을 세우겠다는 천추태후는 결국 사랑에 매몰되어 자신의 이상을 그것에 종속시켜버린다. 연인에 연연하는 여성주인공이라는 이미지는 자주적 여성 리더의 이미지와 배치되고 곳곳에서 모순을 일으킨다.

또한 '천추태후'와 '자명고'는 팩션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대중욕구를 저버렸다. 팩션은 작은 역사적 사실에 픽션을 가미하는데, 대중들이 알고 싶은 것은 왜 그 작은 사건이 그렇게 일어났는지를 흥미있게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두 작품은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독자적인 작품을 써버린다. 이름만 빌려왔을 뿐 그내용은 전혀 그에 부합하지 않는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이나 '내조의 여왕'은 별스럽지 않다. '아내의 유혹'이나 '꽃보다 남자'는 더욱 별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들 콘텐츠에는 대중이 원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지금 방송되고 있거나 얼마전에 끝난 사극 작품들은 무엇인가 기록에 남을 만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작가주의의 과잉이 많이 느껴진다. 물론 그러한 드라마도 중요하지만, 공중 전파에서는 대중성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는 말아야 겠다. 그 대중성의 추구는 영합이 아니라 전달의 효율성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이다. 좋은 메세지도 그것이 대중의 흥미를 끌어서 잘 전달되는 것이 대중매체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그러한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