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자명고의 모양혜와 풍만한 여성의 부활?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14. 16:17

드라마 '자명고'에서 최리(홍요섭)와 함께 낙랑국 혁명을 이끈 왕굉(나한일)에게 모양혜(고수희)라는 부인이 있다. 그녀는 거대한 몸집에 퉁퉁한 얼굴이다. 한마디로 미인은 아니다. 하지만 왕굉은 어느 누구보다도 그녀를 사랑하고, 부부 금슬도 좋다. 몸매 좋고 얼굴도 갸름한 여성보다 왕굉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는 무수한 미녀들이 나온다. 왕자실(이미숙), 모하소(김성령)는 최리의 부인들이고 송매설수(성현아)는 대무신왕(문성근)의 부인인데 모두 잘빠진 몸매에 갸름한 미인형 얼굴들이다. 물론 왕의 후궁들도 그렇다. 얼마전 종영된 '일지매'나 방영중인 '천추태후'에서 그려진 미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러한 미인형들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많겠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 갈수록 미인형은 비만형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기원전 32년 로마시대에 주조된 은화 동전을 연구가들이 조사해 보았더니 클레오파트라는 미인이 아니었다. 매부리코에 눈이 불룩하고 목이 굵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이른바 날씬형 미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희곡에서 클레오파트라를 최고의 미인으로 그린 것은 틀린 것이다. 양귀비는 날씬한 미인형이 아니라 비만여성이었다는 연구도 잘 알려져 있다. 당(唐)대에는 비만형이 각광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이른바 통통녀였다. 당나라 벽화에는 통통녀들이 많다. 유럽에서 화가들이 5세기쯤 그린 마리아상도 풍만했다.

풍만한 여성은 다산의 상징이기도 했다. 결핍의 시대에는 결핍되지 않은 존재를 추구한다. 먹지 못해서 마른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잘 먹어서 영양상태가 좋은 사람을 더 선호한다. 희소성의 가치라는 상식적인 원리가 작용한다. 현대로 넘어올수록 오히려 마른 몸매가 더욱 희소해졌기 때문에 마른 체형의 미인이 선호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서 다룬 ´금융위기가 가져온 뜻밖의 결과 13가지´가 화제가 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글래머 여성의 부활이었다. 플레이보이 모델의 나이와 체중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성숙한 이성을 찾는다는 연구가 있기도 하다.

1932~1955년 사이 불황일 때 더 성숙한 외모의 여배우들이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몸매는 굴곡이 없는 여배우들이 선호되었다. 굴곡이 많은 여성은 남성에게 소유의 대상이지만, 굴곡이 없는 몸매의 소유자는 의지하고 싶은 존재가 된다.

잡지 표지모델로 깡마른 모델보다 풍만한 글래머 스타일이 선호되는 것은 경제상황이 주는 불안감과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특히 풍만한 가슴이 선호된다. 여성의 가슴은 모성애를 상징하고 따뜻함, 안락함 등을 의미한다.

전쟁과 재난이 일어난 사회는 불안정하다.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불가능하다. 이런 때일수록 큰 가슴이 선호됐다는 주장도 있다. 안정된 사회일수록 교양과 법도가 중시되어 가슴을 감추었다는 것이다. 위기상황일수록 감각적인 콘텐츠가 쏟아지는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도 볼 수가 있겠다.

드라마 '자명고'에서 등장하는 모양혜는 당시 미인의 전형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왕후나 부인들은 미녀 축에도 들지 못했을 수도 있다. 모양혜를 두고 각 장수와 왕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도 있겠다. 더구나 천추태후가 무장처럼 전장에서 싸울 수 있으려면 상당한 몸집이어야 할지 모른다. 자칫 가부장적 질서는 벗어난 여성의 주체성, 능동성을 강조하지만 외모만큼은 그렇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어쨌든 풍만한 여성이 다시 부활한다는 것은 현재의 상황이 '결핍'의 시대임을 방증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한 사회 심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경제위기가 지나친 다이어트 열풍이 퇴조하는 긍정적 결과를 만드는데 작용했으면 싶기도 하다.

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