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복고 열풍은 중장년층의 문화착취?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14. 16:21

복고 열풍은 중장년층의 문화착취?

2008년 11월 미국 베일러 의대 연구진은 아메바가 먹이가 부족하면 자신과 유사한 개체와 합체한다는 연구결과를 생물학 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 에 발표한 바 있다. 이 연구를 두고 어떤 이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는 아메바도 가족을 찾고 의존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아메바도 그런데 하물며 인간은 오죽할까.

MBC 월화드라마 '내조의 여왕'은 직장인과 가족, 첫사랑의 기억이 얽혀 있다. 전업 주부의 고민과 샐러리맨들의 애환이 얽혀있다.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반목의 에피소드는 모두 과거의 사랑에 전적으로 기인한다. 과거의 사랑에 얽혀 있는 것은 수목 드라마 '미워도 다시 한번'에도 등장한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은 40대 배우 전인화, 최명길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이 볼만하다. 각자의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중심에 중년의 삼각사랑이 이야기를 짜임새있게 긴장감을 준다. 20대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돌아선 순간 비판이 쏟아진 점은 이 중년의 감수성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을 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드라마 '자명고'가 눈길을 받는 것은 이미숙, 문성근, 홍요섭을 필두로 한 중년 연기자들의 농익은 연기 대결이다.

시대와 소재, 캐릭터는 다종하지만, 결국 드라마 속 인물들은 가족이라는 틀 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상황의 곤란은 가족에게 회귀하도록 한다.'애자 언니 민자','춘자네 경사났네','천하일색 박정금','달콤한 인생'도 중년의 사랑과 가족이야기 안에 있었다. MBC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는 중년 그들의 이야기가 전면에 나왔다.

드라마만이 아니라 개그도 그래서 최양락, 이봉원, 박미선, 조혜련 등의 선전은 바로 중년의 웃음 코드가 회귀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대중문화 선호적이고 능동적인 중년 군(群)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들은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일반 문화예술장르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런데 중년의 코드, 감수성 하면 가족을 떼어놓을 수 없는 모양이다.

열렬한 중년들의 호평을 받은 ´친정엄마와 2박3일´의 바통을 이어받은 듯한 '손숙의 어머니'는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중년여성을 타켓으로 했다. '민들레 바람 되어'호평을 받으며 장기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중년의 감수성을 건드려주었기 때문이다. '오랜 친구 이야기'는 중년의 늦은 사랑고백을 다루고 있다. 다음 달 연극배우 윤석화가 중년의 사랑을 그린 2인극 ´시간이 흘러가듯´을 선보인다.

얼마 전 엄마에 대한 여러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눈길을 끌었는데, 이번에는 아버지에 대한 콘텐츠도 많아졌다. 김현승 시인의 시처럼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하기 때문일까.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나올법한 콘텐츠들이다.

'아버지 열전 시리즈'에서 연극 < 세일즈맨의 죽음 > , < 굿바이 대디 > , 뮤지컬 < 매직 릴리-기러기 아빠 > 는 모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워낭소리´는 아버지의 이야기고, 김정현의 < 고향사진관 > 이나 윤지강의 < 송아지 아버지 > 도 역시 그렇다. 각종 CF에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자녀들의 학비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결국 이를 통해서 말하려하는 것은 가족의 소중함이다.

대중문화의 주도층이 10대나 20대가 아니라 이제 중년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단순한 첫사랑이나 가족주의나 찾는 중년의 감수성은 현실에서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다. ´내사랑 금지옥엽´(KBS2)과 ´가문의 영광´(SBS)같은 드라마나 보는 것이 중년은 아닌 것이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더 좋아하는 이들은 젊어진(?) 중년 여성들이었다. 영화 '쌍화점'에서 조인성의 엉덩이를 보기 위해 찾은 이들은 중년 여성들이었다. 영화 ´미인도´의 선전에도 중년의 뒷심이 작용했다. 뮤지컬 '진짜진짜 좋아해'의 관객은 70% 이상이 40, 50대 중장년층이다. 뮤지컬 '맘마미아'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40대 이상 중년 여성 의류 구매율 31%까지 상승했다. 정장 스타일만이 아니라 트렌디한 의류까지 다양한 장르의 패션이 선호되어 이미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평가다. 최근 팬클럽 문화에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빅뱅의 이모 팬이야 이해할 수 있는데,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삼촌 부대가 나타난 것이다. 중년들이 야광봉을 들고 아이돌 그룹 공연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예능프로그램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중년의 엔터테이너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판의 시선도 있다. 중년이상층이 사회경제적 기반으로 문화 영역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상대적으로 10대와 20대 문화가 위축되게 해서 미래의 문화적 잠재 역량이 소진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 대표적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문화적 착취라고도 한다. 특히 복고의 열풍이 텔레비전만이 아니라 공연예술양식에도 물밀듯이 포진하고 있는 점은 이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인지 모른다. 어려운 경제상황과 고실업시대에 우려되는 점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단순히 중년을 위한 추억을 파는 상행위는 경제학적으로나 문화론 관점에서 최악이 된다.


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