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연차...장자연 공통점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3. 23. 21:01

 

박연차 리스트와 장자연 리스트는 연예인과 정치인의 공통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연예인과 정치인의 공통점은 모두 스폰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스폰서의 공통적인 점은 대개 무엇인가라는 점이 있다. 정치인에게는 나중에 이권을 바라고, 연예인에게는 서비스를 바란다. 여기에서 서비스는 대중문화 상품이 지니는 좋은 작품이나 연기가 아니라 물리적인 서비스다. 특히 여자 연예인에게는 성 접대라는 단어가 흔히 붙는다. 잠자리 즉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다. 정당한 후원이 아닌 바에야 모두 반칙이다.


흔히 정치인은 돈 앞에 영혼을 팔고, 연예인은 몸을 판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모두 틀렸다. 둘 다 영혼을 판다. 몸을 파는 것은 이전에 이미 영혼을 파는 것이다. 아니 더 하나가 있다. 모두 생명을 파는 것이다. 정치적 생명을 팔건, 활동의 생명을 팔건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정작 자신의 진짜 생명까지도 단축시킨다.


스폰을 받는 이유는 고비용 때문이다. 고비용 정치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말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럼 연예계는 어떠한가.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화려한 연예 생활에는 그 아우라를 위해 많은 품위 유지비가 들어간다. 무명의 기간이 길거나 또 다른 장래를 위해서 그 비용은 개인 혼자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것이다. 물론 개인의 욕망 그 자체를 채우기 위해서 스폰을 이용할 것이다.


고비용을 들이고도 얻는 것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문제는 능력 있는 신인들이 스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고비용의 구조다. 여기에서 비용은 단순히 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영혼까지도 담보로 잡혀야 하는 고질적인 시스템이다. 실력과 재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이들에게 달겨드는 스폰서는 돈과 명예, 권력만을 내세우는 문외한들인 것이 문제다. 그들의 스폰으로 승자의 순간을 기다리며 비상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비상(飛上)은 비상(砒霜)이 된다.


고 장자연씨의 자살 사건을 두고 문건 속 리스트가 연일 매체의 중심에 있다. 리스트의 몇 명만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인식, 제도적, 시스템의 모순이 생명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화려한 불빛은 불나방의 생명을 빼앗는 것처럼 화려한 조명아래 대중연예계는 수많은 생명을 빼앗으면서 마치 모든 이들의 영생과 꿈을 이루어주는 것처럼 허장성세를 부린다.


사회 경제적인 양극화 현상이 심해져서 그런지 승자 독식이라는 말이 매체에 자주 오르내린다. 승자독식은 많은 자원을 특정한 이에게 집중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승자가 모든 것을 혼자 먹어치운다. 본래 먹는다는 것은 자기 것으로 만드는 소유의 의미가 크다. 100명이 같이 골고루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떡을 혼자 차지하면 99명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골고루 나누어갖지 않는 문화에서는 착실하게 결실을 축적하기 보다는 대박의 환상이 횡행하게 되고 근실한 노동은 천대받는다. 독식의 달콤한 열매는 크고, 그것을 손에 넣지 못하는 처지는 매우 비참하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자가 되기 위해 반칙도 일삼게 한다. 실력보다는 편법이 더 우선되기 쉽다.


이런 승자 독식이 강한 곳이 대중연예계다. 많은 스타 지망생들은 스폰이라도 잡기를 고대하고 열망한다. 스폰을 통해 대형스타로 파이를 독식하는 꿈을 꾸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그들이 갖는 것은 스폰서의 달콤한 독이 묻은 돈이다. 조금씩 먹은 수은에 어느새 중독되어 있는 자신을 되돌아보면 너무 늦다. 처음에는 승자가 되기 위한 약간의 고통으로 생각하지만, 결국 영원한 고통이 된다. 자신의 정당한 노동으로 얻지 않는 달콤함 뒤에 독이 없는 경우는 없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승자라고 여기는 이들은 스폰을 통해 접대를 당연시 하는 인식이 굳어졌다. 기형적인 성공 과시 문화 가운데 하나가 여자연예인 스폰 문화다. 마치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다. 과거 지난한 과정을 보상받는 기제가 된다. 해당자들은 우리만 갖고 그러냐고 하지만, 잘못된 문화적 행태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 원래 그런 권력자들을 이용하는 것도 문제다. 그것에 영합하는 것도 무감각해져 있다. 정책 효과에도 의문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단속이 그 불법성이나 인권 문제에 대한경각심과 인식을 전환시켰듯이 이번 사건은 이러한 당연시 되는 풍토에 대한 일갈이며, 일벌백계의 사례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문제는 왜 기형적인 스폰서 문화가 발생하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 대중연예계의 시스템 구조는 약자들이 강자에게 착취되는 구조를 고착화 시키는 점이다.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표준계약서나 등록제, 불공정 관행 타파가 이루어지기 위한 법적 노력은 중요하다. 또한 공정하지 않은 상황을 명분삼아 이용하는 행태도 문제다.


악순환의 구조적 착취는 생명에 대한 착취다. 승자의 독식의 구조를 용인하거나 묵인하는 한에서 악순환은 반복된다. 스폰 문화를 그것을 용인 방관 영합하는 행태가 된다. 승자가 되려면 어쩔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그 심리적 배경에 있다. 그럼 이러한 구조에서 승자는 행복할까? 화려한 스타들의 영생은 달려드는 수많은 불나방들의 생명으로 연명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승자의 저주와 같다. 1등에게는 천국이 열릴 것 같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것이다. 설령 1인자가 되어도 그 끝은 무엇인가. 그것은 승자의 저주이며, 고 최진실씨의 자살 사건은 승자의 저주인지 모른다. 혼자만의 승자가 아니라 강자와 약자, 스타와 무명이 같이 살 수 있는 상생의 수평적 승자의 문화가 연예 매니지먼트계에 형성되어야 한다.


고비용 저효율의 낭비적인 현재의 연예 기획과 스폰서 문화로는 한국 대중문화가 도약할 수 없으며, 한류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수많은 영혼과 생명을 갉아먹으며, 유지되는 연예시스템은 공정한 시장의 룰이 지켜지지 않는 기형적인 반칙의 경제와 같다. 무엇보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과제와도 같다. 우리 정치가 선진사회의 견인차로 이행해 가는데 필요한 것이 편법과 반칙을 일삼는 스폰 문화를 바꾸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정치가 무소불위로 이권을 챙겨줄수있는 정치 독식의 시대는 갔다. 정치인이건 연예인건 진정한 스폰서는 대가없는 팬과 스타의 관계, 지지자와 대표자의 관계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