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국가 만들기

[문화로 읽는 세상] 김헌식 박사"`제2의 설리` 막자…처벌과 문화적대응 병행해야"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0. 6. 15. 07:59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김헌식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매주 금요일,

문화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짚어보고 개선 방안을 생각해보는 코너를 마련합니다.

<문화로 읽는 세상>, 김헌식 문화평론가(박사)와 함께 합니다.


▷평론가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가수 겸 배우 설 리가 이번 주 내내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요. 국민청원도 여러 건 올라왔다고 하는데 어떤 청원들인가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진리법을 만들어달라"는 청원이 대표적입니다. 네이버나 다음카카오와 같은 포털사이트나 언론사 기사만큼은 댓글 실명제를 적용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대형 포털 내 기사에서만큼은 댓글 실명제를 활용하자”라고 한 것입니다.

`인터넷 실명제 도입`이란 제목의 청원글도 "설리가 악플러들에 의해 자살을 선택했다. 아니 살인을 당했다"면서 "더 이상 최진리씨와 같은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인터넷 실명제가 필요합니다.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이 죽지 않기를 바란다"며 실명제 도입을 청원했습니다. 또한 처벌 수위를 높여달라는 청원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인터넷 실명제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인터넷 실명제는 사용자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등록해야 인터넷 게시판이나 본문에 글을달거나 올릴 수 있는 제도로 게시물 작성을 위한 일종의 인증제입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디지털 글쓰기가 급속히 늘던 1990년~2000년대 초 악플과 명예훼손 등이 범람하면서 정부가 고안한 제도입니다. 이에 따라 2002년 이후에는 공공기관 및 포털사이트 게시판을 중심으로 인터넷 실명제가 의무화됐는데요.

2003년 정보통신부가 모든 인터넷 게시판에 실명제를 단계적으로 도입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시민단체의 표현의 자유, 정부 여론 검열 등의 우려로 반대에 부딪혔는데요.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론사 사이트에 적용하는가 하면 2007년 7월부터 이용자수 10만명 이상 사이트에 가입한 후에 댓글을 적을 수 있는 부분적 실명제가 도입되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실명제는 헌법재판소에 위헌 판결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유가 뭔가요?

▶악플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도입은 되었지만 2012년 8월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를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 했습니다. 인터넷 실명제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실명제 때문에 얻는 공익 역시 미미하다는 판단도 있었는데요. 언론의 자유까지 침해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때문에 포털 뉴스 등에 적용되었던 실명 등록제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룹 카라 출신의 구하라가 악플 때문에 고통을 받다가 자살 시도를 했고 샤이니의 종현도 악플에 시달려 그것이 우울증에 영향을 미쳐왔다고 한 바 있습니다. 설리의 사망을 계기로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는데 20만명 이상 동의할 경우 청와대가 내놓는 공식답변에도 관심이 집중됩니다. 악플이 과연 표현의 자유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비판도 여전한 상황입니다.


▷헌재의 판단과는 별도로 국회에는 관련법안이 계류중이라는데 어떤 법안이 있나요? 그리고 법의 한계도 여전히 있겠죠?

▶국회에서 `악플방지법`, 일명 설리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칭 대안신당은 악성 댓글 작성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거나 인터넷상 실명제를 도입하자고 했습니다. 2017년 12월 국회에서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을 발의해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꺼냈습니다. 발의의원은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하는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해 댓글에 대한 본인 확인 조치 도입이 필요하다"는 취지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사후 처벌을 생각한다면 실명제만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인터넷 주소(IP) 추적 등을 통해 악플러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명제는 모든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으로 보편적인 해결법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중국 러시아만 시행하고 있습니다.

해외 업체와 형평성 문제도 있습니다. 국내에만 댓글 실명제가 시행된다면 해외 서비스로 이용자가 몰리게 됩니다. 해외 사업자에 실명제를 시행못한다면 역차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실명제가 악플을 줄이는데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사실상 악성댓글은 연예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아닐까 싶은데 어떤가요?

▶15일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방통위가 6162명을 대상으로 사이버폭력 경험률을 조사한 결과 32.8%가 온라인에서 사이버폭력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 6.8%포인트 증가한 수치로 10명 중 3명이 사이버 폭력을 경험한 것입니다.

일반 시민이 악플 때문에 수사기관을 찾는 경우가 부쩍 늘었습니다. 개인 SNS만이 아니라 학교, 직장 게시판에 악플이 등이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0대부터 회사원 주부 등 가리지 않고 있는데요.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집요하게 가해지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SNS 과잉몰입, 의존증, 만능주의가 우려스럽다. 악플도 관심이고 자산이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것 또한 경계해야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도 문제인 듯 싶은데 어떤가요?

▶언론미디어가 설리를 자극적으로 성상품화 그리고 성 도구화로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소비해온 점이 있습니다. 사망 이후에도 이같은 일은 반복되었습니다. 선정적인 사진 등을 계속 사용했습니다. 해외 언론은 오히려 페미니즘 파이터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여성주의 관점을 부각했는데 한국은 이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자살보도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 5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은데요.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 것.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 등입니다.

이런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고 지금도 보도가 되고 있는 것은 분노할 만한 일입니다. 청원 게시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무책임한 언론에 대해서도 책임을 질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언론이 ‘파파게노 효과(Papageno effect)’를 통해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다는 데 이것이 뭔가요?

▶자살에 대한 언론 보도 자제를 통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입니다. 스티븐 스택 미국 웨인주립대 교수는 나이더크라덴탈러의 연구 결과에서 드러난 바가 있습니다.

파파게노 효과의 어원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파파게노`라는 인물에게서 유래했는데요. 파파게노는 연인인 파파게나가 죽은 뒤 같은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요정들이 나타나 파파게노에게 희망과 용기를 복돋아 줍니다. 요정과 같은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결국 파파게노는 자살을 하지 않고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이처럼 파파게노 현상은 절망과 시련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처벌과 문화적 대응이 같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강력한 처벌은 시행되어 선례를 남기지 않아야 합니다. 또 기획사의 멘털 케어 시스템도 중요하고 어린 연습생등이나 신인들 여성들에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문화로 세상읽기>,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cpbc 김유리 기자(lucia@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19-10-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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