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헌식(정보콘텐츠학 박사, 중원대학교 특임교수, 사회문화평론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등장하면 으레 기성 세대에게는 불리하고 미래 세대에게는 유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일자리 문제에서 기성세대를 쫓아낼 수 있다. 그런데 미래 세대에게는 아예 그 기회를 제한하거나 박탈할 수도 있다. 연기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무명의 신인이 갑자기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되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아이돌 출신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대개는 기성 배우의 어리거나 젊은 날을 연기하면서 인지도를 쌓거나 존재감을 알리면서 성장해 간다. 예컨대 두 편의 드라마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이들의 변화를 보여준다. 순수하던 그들이 어떻게 악마 같은 짓을 하게 되었는지 극명하게 대비 되기도 한다. 특히 정수진(김희애)의 젊은 대학생을 연기한 배우가 눈길을 끌었다. 송수이 배우는 전대협 문선대로 활동하다가 의장과 사랑에 빠지고 공안검사에 고문을 당하는 연기를 리얼하게 해냈다. 전혀 다른 이미지와 마스크를 가졌지만, 충분히 정수진의 젊은 청춘의 시절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만약 인공지능을 활용해 김희애의 20대를 구현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배우의 캐스팅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김희애가 현재와 과거의 두 배역을 독점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젊은 날은 인공지능이 가진 배역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유명 배우들이 당장에 배역을 과/독점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장기적으로 인공지능이 자신의 연기를 좌우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등장인물의 아역이 많이 등장하는 드라마로 ‘커넥션’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저강 고등학교 동창들이 서로 공모하기도 하고 쫓고 쫓기는 관계가 되는 스토리인데, 고교 시절의 등장인물에 신인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 캐릭터는 대표적으로 장재경(아역 조한결), 오윤진(아역 김민주), 원종수(아역 박시윤), 박준서(이현소), 박태진(아역 백재우), 정윤호(아역 김재훈), 정상의(배준형), 허주송(조민구) 등이다. 그 외에도 많은 아역이 등장한다. 박준서의 사망 사건을 수사하는 장재경(지성)이 진실을 파헤치는 가운데 과거의 동창생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회고 장면을 통해 설명하기 때문에 이를 상당 부분 아역 배우들이 소화한다. 물론 현재의 등장인물 연기를 하던 배우들과 얼굴 모양새나 스타일이 다른 경우도 눈에 띄지만, 싱크로율은 괜찮다. 이런 배역을 통해서 신인들은 더 좋은 연기자가 되는 자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그들의 미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아역 배역의 효과를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들의 존재를 알릴 수도 있고, 훈련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시청자에게는 신선한 뉴페이스를 접할 수 있기에 더욱 몰입을 배가시킬 수 있다. 그 배우들이 마음에 든다면 관련 정보를 검색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를 드라마 ‘살인자 ㅇ난감’의 배우 손석구의 모습처럼 인공지능이 담당한다면 이런 효과들은 줄어들 것이다. 배우 연기는 했는데 정작 자기 얼굴을 잃어버린 아역이라면 존재 이유가 의심된다. 예술가는 어쨌든 자기 이름과 마스크를 통해 브랜드 가치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통한 기존 배우의 아역 형상화는 신인 배우들의 설 자리는 잃을 것이고 아울러 시청자들은 더는 궁금해할 배우가 없어질 것이다.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스마트 모바일 시대에는 화제성도 중요하다. 뉴페이스를 통해 화제성을 증대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다. 기존 시청자에게 익숙한 배우들을 캐스팅하되 새로운 배우로 시청자의 외연을 확장 시킬 수 있다. 그런데 섣불리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이런 효과를 기할 수 없다. 물론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제작비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작비가 아니라 이용자 그리고 팬의 반응이다. 더구나 신인 배우들은 캐스팅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아무리 인공지능이라고 하지만 기존 배우의 초상권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자칫 신구 모든 세대에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를 소외하고 배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 세대에게 기회를 주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100세 시대의 기성세대의 살길을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