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김만덕, 아마존의 눈물, 선덕여왕의 공통점?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7:44

<김헌식 칼럼>김만덕, 아마존의 눈물, 선덕여왕의 공통점?

 2010.03.29 14:23

 




[김헌식 문화평론가]거상 김만덕의 스토리 발굴에는 따로 그 주역이 있었다. 하지만 그 주역은 각종 자료와 소스를 제공하고는 드라마 제작에서 배제되었다고 한다. 영화 판이건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건 흔한 일이다. 서울 시내 한 세미나 현장에서 어느 문학평론가는 자신이 참여한 문학상 심사에서 장편 소설 < 미실 > 을 당선작으로 삼았기 때문에 드라마 < 선덕여왕 > 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국회에서 열린 한 소모임 회의 에서도 자신이 미실을 발굴했기 때문에 드라마 < 선덕여왕 > 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드라마 < 아이리스 > 의 경우에는 그 초기 원작의 틀을 만들어놓은 작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러한 콘텐츠의 성공 이후에 그 원저작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만다. 물론 여기에서 원저작은 소설이 아니라 기획 아이디어다. 

방송사의 교양 프로그램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 아마존의 눈물 > 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독립피디의 자문이 핵심이었다. 제작진은 독립 피디를 여러 차례 만나서 핵심적인 정보들을 다 취하고, 지적 보상은 물론이거니와 자문 사실을 프로그램 어느 곳에도 적시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저작권에 대한 새삼스런 논란이 있었지만, 향후 안정적인 제도적 성과와는 관계없이 유야무야된 측면이 강하다. 

물론 본래 자료와 원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이에게 모든 공을 돌릴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창작이기 때문이다. 자료그 자체로는 창작의 영역에서 대중적 관심이나 주목 그에 따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노고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는 필요하다. 그 본인도 그렇게까지 생각하거나 대가를 바라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예의도 차려지지 않는 것이 한국의 문화콘텐츠제작 환경이다. 

이는 문화콘텐츠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이건, 정부기관이건 많은 아이디어를 무명의 사람들에게 얻는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통해 결과물을 낼 때면 원래 결정적인 제공을 했던 이들은 거세된다. 이러한 점은 당장에는 별로 문제가 안 되지만 장기적으로 이상한 문화적 기형을 낳는다. 단순히 착취와 피착취의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창조적인 아이디어 발상의 문화가 축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아이디어라도 그것의 원형 창안자가 철저하게 그 권리와 권한을 보장 혹은 보호를 받는다면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즉 미미한 창조적 아이디어들이 풍성하게 될 때라면 그것은 창조의 문화가 확립되는 것이다. 창작에서 원형이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고, 그것을 완성하는 스텝은 더 풍부하다. 

서울시에서는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자문기획위원의 아이디어만 취하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권한을 그 아이디어의 주체자에게 부여한다. 중간에서 편취하는 행태를 없애고, 동기부여를 내재적으로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모로 생각해볼 점을 제공한다. 

수많은 정책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경우가 있는데, 원래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들은 완전히 가려지고 배제된다. 즉 그것을 추진한 사람의 공적으로만 기록된다. 그 공적으로 담당자는 승진을 하거나 나름 조직내의 보상을 받는다. 이는 공공부문보다는 민간기업이 더 심할 수도 있겠다. 

때로는 아웃소싱이나 시민참여, 고객의 동참이라는 미명으로 이루어지지만, 지속적인 관계성과 조직적 관리보다는 자원착취적이며 오래가지 못하고 만다. 무엇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과 실현이 한계에 이르고 만다. 

이러한 점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에서는 창조학교라는 것을 만들기도 했다. 영재학교라는 것도 정말 많이 생겼고, 앞으로 더 많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창조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은 단순히 창조를 위한 교육이나 발표가 아니라 그것들에 관한 보장이다. 창조적인 발상이 내재화 일상의 체화의 수준에 오르려면 그 사소한 창작적 행위에도 그에 대한 오리지널리티을 확고하게 보호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그것을 실현하여 그에 대한 보상을 적절하게 선순환의 구조 속에서 얻을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바에야 문화콘텐츠의 발전뿐만 아니라 정책적 진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벤치마킹이라는 이유로 아이디어 편취주의가 만연하여 창조적인 나라, 창조적 도시를 만드는데 장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