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

개는 자기의지 따라 인간사회에 정착했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3. 3. 31. 11:00


[한겨레] ‘개의 탄생’에 관한 물음.

개는 인간이 가축처럼 울타리 안에

데려다 키운 늑대가 진화한 종인가, 아니면 개 스스로 인간 세계에 찾아

들어왔는가? 이런 색다른 물음에 대해, 미국 과학저술가 스티븐 부디안스키가

<개에 대하여>(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전하는 답은 흥미롭다. 그는 개가

‘제발로’ 걸어들어왔을 가능성 쪽의 손을 들어준다.

그 논거는 이렇다. 여러

화석 증거들을 살펴보건대, 사람이 개를 가축화한 건 1만년 전 무렵이다. 그런데

늑대와 개의 디엔에이 ‘진화의 시계’를 분석하면 개와 늑대가 다른 종으로

분화한 건 훨씬 앞선 10만년 전이다. 그러니까 개는 인간의 가축 이전에 이미

개였다. “인간 주위를 맴돌면서 살기로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늑대로부터

분리한 것은 바로 개들이었다. 개는 인간에게 고용된 존재도, 노예도, 초대된

손님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의지에 따라 인간사회에 정착한 존재였던

것이다.”(39쪽) 개의 진화적 유전자가 명령하는 개의 의지였다.

이 책의 중심

시각은 “개는 개일 뿐”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부디안스키가 1만년의 친교 시간을

지녀온 개와 인간의 교감을 부정하라고 외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그의

주장은 개에 투영하는 인간의 감정이입을 중단하고 개를 개로서, 개답게

바라보자는 쪽에 가깝다.

그래야만 주인을 기쁘게 하고 노하게 하는 개의 기이한

행동들은 사람의 눈에 그러할 뿐 개의 처지에선 자연스런 일로 비쳐질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개의 여러 기행 사례들에 대한 ‘견공 심리학적’ 해석들은

흥미롭다.

권력을 지닌 개나 주인 앞에서 복종의 표시로 오줌을 찔끔 싸는 개를

심하게 나무란다면 그건 순전히 인간의 오해다. 개는 더 큰 복종심을 표시하려고

더 자주 오줌을 쌀 수 있다. 진화론과 동물행동학의 시각에서 보면, 다양한 행동을

놀이로 재조합하기를 즐기는 개는 인간의 반응을 이끌어낼만한 독특하고 기묘한

행동들을 특별하게 유전시켜왔다. 있지도 않은 파리를 상상하며 달려들기, 자기

꼬리를 잡으려는 듯 뱅글뱅글 돌기, 물건을 질겅질겅 씹기, 물건 감추기 등이 그런

예이다. 아팠던 적이 있고 주인의 지극한 관심을 받았던 개는 꾀병을 피우기도

한다. 지은이는 개의 기행이 대부분 ‘관심 끌기’를 위해 비롯한 것이라면서,

이런 때엔 ‘완전 무시’ 작전으로 일관하는 게 상책이라고 조언한다.

“개는

개일 뿐”이라는 시각은, 순수 혈통을 좇는 인간의 욕망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강조된다. 지은이가 바라보기에, 순수 혈통을 위한 ‘동종 번식’의 풍토는

심각하고 위험한 지경이다. “동종 번식은 좋은 형질과 나쁜 형질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저 부모 세대와 동일한 복제를 반복할 뿐이다. …최근 순종 개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유전적 질병은 이런 식으로 과거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270쪽) “견종 경진대회 우승견만 고집하던 번식 전문가들이

나쁜 유전자를 가진 강아지를 잔뜩 만들어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한번쯤 되새겨볼만한다. 우리의 진돗개들은 어떨까.

‘똥개 만세’를 외치는

그의 예찬은 이런 점에서 유전학의 근거를 갖춘 것이다. “똥개는 여전히 개

유전자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팔팔한 생명체들이다. 주인은 없어도 인간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살아가는 개들이 전 세계에 몇 백만 마리는 된다. 게다가 잡종 강세

현상 덕분에 아주 건강하다. 대개는 성격도 좋다. 이들이야말로 진화의 전통을

잇는 ‘진정한 개’인지 모른다.”(293쪽)

개, 고양이, 말과 함께 생활하는

부디안스키의 <고양이에 대하여>(이상원 옮김, 1만3000원)와 <말에 대하여>(김혜원

옮김, 1만5000원)도 함께 출간됐다. 문명과 야생이 넘나드는 애완동물, 반려동물

또는 가축인 개와 고양이, 말의 진화와 동물세계는, 눈 씻고 다시 보면 거꾸로

인간의 심리와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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